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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아콩카과 이야기

박근하 기자 | 2009/09/16 01:20

[여행기] 아콩카과 이야기
-SPN 서울포스트, 박근하 기자


▲ 아콩카과의 풍경. 두번째 캠프에 오르는 길.. ⓒ박근하 서울포스트

킬리만자로의 밤..
사하라 사막이나 알라스카의 밤하늘과도 비교 될 수 없었던 무수한 별들
그 은하수만으로고 땅 위의 모든것이 비춰지고
구름이 몰려와 하늘이 가려졌을때 암흑이 되었던 그 순간..

안데스의 새벽..
거대한 눈 폭풍이 몰려온다. 가까이 있는 봉우리에서 휩쓸린 눈사태는
웅장한 진동과 함께 세상 모든 것을 집어 삼키듯한 기세였다.
누군가는 자연을 경외감으로는 표현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겸손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은 자연일 뿐이고,
인간은 쏟아져 내려지는 눈보라를 보면서 인간 내면에 감춰있던 공포와 함께 감동을,
그리고 살아있는 순간을 깨닫게 되는것 뿐이였다.

그것이 내가 산을 사랑하는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산에 묻혀갔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죽음을 해발고도 몇 미터라는 숫자놀음으로 오해하고
빈정대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나는 안데스의 아콩카과를 마지막으로 산과는 작별을 고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과적으로 아콩카과에서 추방당했다.

아콩카과의 기점 도시 멘도사.
나는 이곳에서 2주일을 머물며 아콩카과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게 시작했다.
날마다 입산 허가서 사무실에 들려 얼마나 많은 등산객이 꼭대기까지의
입산 허가증을 받아가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다국적 등산가이드가 입산 허가서를 받으러 올 때면 점심을 대접하면서
아콩카과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곤 하였다.
내가 아콩카과에 오를 수 있겠냐는 질문에는 모두가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구박을 한다.

산의 정상을 오르는것.
이것은 기록 이외에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콩카과의 노말루트는 안데스의 험난함을 갖추지 않은,
7000M지대의 고산지대라는 것만 고려하지 않는다면 실제 복잡한 산악 전문 장비는 필요 없다는
것이 다국적 가이드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 아콩카과 정상에 오르고 주목을 받았던 콜롬비아 군인들.. 그들은 셋 다 모두 의족을 달고 있었다. ⓒ박근하 서울포스트

문제는 4400M에 위치한 베이스캠프에서 터졌다.
나를 진찰한 의사는 내가 지금 앞을 볼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하며
여기서 빛을 더 받으면 장님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 눈의 훼손된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다며 자외선에 의한 손상으로
밖에는 추측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내 눈의 빛 번짐 현상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받은 라섹 수술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는 흥분해서
아콩카과의 자외선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내 눈에 문제가 없다는 말에 "네가 의사야? 내가 의사야!"라는 말로 모든 것을 일축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라섹 수술을 모르는 고산 전문의에게 입산 허가서를 빼앗기고 말았다.

...나는 베이스캠프에서 그렇게 일주일을 기다렸다.
내 분통을 터지게 만든 것은 결국 의사와 나의 감정 대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진찰을 받은 마지막 날 내 담당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가 내 눈을 진찰했는데
그가 나에게 “better than yesterday, see you tomorrow."
(어제보다 나아졌군요, 내일 다시 봅시다.)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단 한번도 내 눈을 진찰한 적이 없었으면서 어제보다 나아졌다고..?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들은 나를 산위로 올려 보낼 생각이 없었던거다.
아마도 그들은 내 20일의 입산 허가 날짜가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슬슬 두통이 몰려왔다. 그것은 고산병에 의한 것이 아니라 등산 식량을 아끼기 위해
지난 며칠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던 탓이었다.
너무나도 분통한 마음에.. 나는 레인저에게 대들었다.
“의사는 도대체 무슨 권리로 내 입산 허가서를 뺏은거죠?
난 이미 꼭대기까지의 입산 허가에 1500Ps (우리돈 60만원)을 지불했는데..!”

“...하지만 여기서는 의사의 의견에 따라주는 것이 규칙입니다.
그는 아마도 아가씨가 아는 것 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을거예요."
"저는 그 사람 의견에 동의 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이 무슨 법인가요?"
"법은 아니죠, 법은 분명 아닌데.. 그래도 의사가 규칙입니다.”
“...그러니까 법은 아니라는 거죠?”

“예. 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에 따라주는 것이 규칙이에요..”

...나는 베이스캠프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갔다.
그들은 한창 회의 중이었다.
몇주전 이 회사 소속 가이드가 네명의 등산객을 데리고 산을 오르다가 조난을 당하고 셋이 죽었다.
그날은 새벽부터 눈보라가 쳤다고 한다. 최종 캠프의 모든 등산객들은 그날의 등산을 포기하고
텐트안에서 날씨가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렸는데
유독 그만이 네 명의 등산객을 데리고 무리한 산행을 결행하였다.
그건 누가 생각해보아도 자살 행위였다.
하지만 그가 무리한 산행을 결정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끝끝내 내게 함구하였다.

회의가 끝나자 친구들은 내게 말했다.
“리오! 우리는 내일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헬리곱터를 타고 올라가니까 네가 원한다면 네 등산장비
들을 최종캠프에 올려 줄 수도 있어. 나는 네가 의사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아마 넌 충분히 오를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고,
원칙적으로 베이스캠프 위에서는 더 이상 입산 허가서가 필요하지 않으니까.
의사는 네 건강 상태에 관해 충고 할 수 있을 뿐
네 행동을 통제 할 수 있는 권한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의사는 처음부터 아무 권한도 없었다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래도 다음날 아침까지는 의사의 진찰을 받고 올라가 주겠다는,
그래도 최후의 순간까지 화해의 기회를 마련해 주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사 녀석이 괘씸했다. 그렇다면 나를 놀렸던 만큼 나도 철저히 무시해 주리라.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등산 장비를 꾸려 첫번째 캠프로 올라갔다.

그리고 며칠 후...
두번째 캠프에서 텐트 자리를 찾다가 나는 레인저와 마주쳤다.
나는 그에게 의사에게 내려가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역시 대답만 했을 뿐, 내려 가지 않았다.
아콩카과 정상에 도전하는 날..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아콩카과 정상까지 평균 10시간.
하지만 이것은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이 10시간이 걸렸다면 나는 12시간이 걸릴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남들보다 1시간 먼저 출발하리라.
실제로 우르스나 와이나포토시에서도 결국 꼴지로 6000M 산 정상을 밟지 않았었던가.
물론 그곳은 낫으로 얼음 절벽을 찍어 오르며 등산하였고,
정상에 도전했던 사람들이 모두 장신의 백인 남자들 뿐이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렇게 4시간을 올라갔다.
그리고 오르면서 생각했던 것은 예상과 달리 그날의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이정도 속도라면 필시 8시간으로 단축될지도 모르리라.
.그리고 마지막 조금 위험한 바위길을 올랐을 때.. 나는 당황했다.
...분명 여기가 꼭대기인것 같은데..?
캠프를 떠나온지는 대략 4시간..
여긴 분명 아콩카과 정상이 아니었고, 아무리 컨디션이 좋다한들 벌써 아콩카과 정상까지 도달했을
리도 만무했다. 하지만 아콩카과의 길은 단순하고 유일해서 날씨 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한은
길을 잃을려고 해도 잃을 수가 없다는 것이 다국적 가이드들의 정보가 아니였던가.

봉우리 뒤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였지만 저곳은 다른 봉우리로 이어진 또 다른 루트일지도 모를 일.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나의 오판으로 예상치 못한 위험을 초래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여기서 그만 내려가기로 판단했다.
세번째 베이스캠프를 지나 지름길로 내려왔다.
내 텐트는 두번째 베이스캠프에 있었다.
외딴 길에 텐트가 있고, 텐트안에 불빛이 보였다. 사람들의 속삭임이 들었다.
텐트안에서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어딘가요?”
“바로 저기가 두 번째 캠프고요, 우린 여기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아가씬 누군가요?”
“아.. 바로 저기군요! 길을 잃었는지 알았어요. 다시 올라가야겠네요.
아까 정상에 오른다고 꼭대기에 올랐는데 아콩카과가 아니었어요. 제가 길을 잃었나봐요.
그건 무슨 봉우리였을까요?”
"아콩카과로 가는 길은 하나 밖에 없어요. 아마도 가는 길목의 봉우리였을거예요.
길을 잃은게 아니라 거기서는 다시 뒤쪽으로 내려가야해요”
“우린 마침 코코아를 먹으려던 참인데.. 한잔 드시겠어요?”
“예.. 고맙습니다.”

나는 무거운 방설용등산화를 벗고 가방 안에서 테니스 운동화를 꺼내 갈아 신었다.
나에게 코코아잔을 넘겨주던 아주머니는 갑자기 땅에 놓여진 더블부츠를 빼앗았다.
“아가씨 의사가 찾고 있다는 그 아가씨 맞지요? 무전기로 연락이 왔어요.
한국인 아가씨가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고 산에 올랐으니 발견하면 내려 보내라는..
아가씨는 우선 의사한테 가서 눈을 진찰 받아야 합니다.”
“이봐요 아주머니.. 제 눈에는 아무 이상 없다구요. 그냥 모른척 해주시면 안돼요?”
“안돼요. 전 레인저들에게 연락할테니 아가씨들은 그 사람들 따라가서 우선 의사의 허락을 받으세요.”

나는 아주머니와 한참을 실갱이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콩카과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레인저가 오는데는 얼마나 걸리지요?”
“아마도 20분정도,”
“...내려오는 길은 10분 거리 아닌가요?”
“지금 연락 할 거예요. 그들도 자고 있을 테니까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몇시인가요?”
“3 시반 정도... 텐트 안으로 들어와 기다리실래요?”
“아뇨 괜찮아요.. 20분 정도라면.. 그냥 여기서 기다리지요.”
나는 그렇게 텐트밖에서 4시간을 기다렸다.

...발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레인저들이 20분이면 온다는 말을 믿고, 무선 연락으로 곧 출발하겠다는 무전기 목소리만
믿고서, 몇 번이나 다시 취해진 무선연락의 대답만을 믿고서,
4시간을 눈 덮인 텐트 밖에서 테니스 운동화 한 켤레로 그들을 기다렸다.
레인져가 잠시 발을 녹일 시간을 줘도 좋을진대, 그는 내 허리에 밧줄을 묶더니
시간이 없다면서 넘어져도 좋으니 걸으라고 말했다.
어이가 없었으나 그런일로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긴... 시간을 걸어 내려왔다.
다리 힘이 약한 나로서는 가파른 산의 지그재그 내리막길이란..
의사는 나를 마중 나왔으며, 발이 아프다는 말에 내 발을 진찰하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나를 추방하겠다고 말했다.

“이봐요! 의사!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나를 추방하죠? 나도 당신 의견 무시한게 잘못이라는 알아요.
하지만 당신 역시 내 얘기는 듣지도 않았고...”
“당신은 아콩카과에서 죽을 뻔 했단 말입니다! 정말 당신 뻔뻔하군!”
“뭐가 죽을 뻔 했다는 거죠? 내 눈에는 아무 이상없어요. 나는 최고의 컨디션을 가지고 있었..”
“나는 당신과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내려가서 얘기하시죠!”

....더 이상 의사하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아콩카과에서 추방되었고,
멘도사로 가자마자 국립 공원 안과로 가서 안과 전문의에게 내 눈의 빛 번짐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내 눈은 라섹 수술로 인해 빛 번짐 현상이 있을 뿐, 의사의 추측대로 자외선으로 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였고, 안데스에서 해발고도 6000M지점의 고산을 여러 번 등산했어도 그 이상의 이상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나는 국립병원에서 안과 전문의의 소견서를 받아 아콩카과 사무실을 다시 찾았으며 관광센터에서는 옆 사무실의 관광객 경찰에서 내 사건은 넘겨버렸다. 아콩카과에 돌아가기 위해서 나는 또 그렇게 일주일을 허비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아콩카과 사무실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누군가가 불러서 뒤돌아보니
다국적 등산가이드인 데이비드다.

“리오! 어찌 된 일이야?”

반가운 마음에.. 그리고 부끄럽고 억울한 마음에.. 나는 데이비드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49살의 데이비드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내게 말한다.

“미안. 리오... 네가 너에게 아콩카과에 대한 정보를 줄 때, 네가 아직 어리고 조그맣다는 걸 간과한 거 같아. 미안.. 정말 유감이야. ...리오..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산에서 내려오다가 사고를 당하지.
그들은 언제나 산꼭대기만 생각하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산에 오르는데 모두 쏟아 버리거든.
내려올때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고 말아. 사람들은 산에 오른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진짜 정상은 산 꼭대기가 아니야.
산에서 내려와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 무사히 돌아오는 순간.. 그 순간이 진정한 정상인거지..
우리는 그때 산을 올랐다고 말할 수 있는 거라고..
정말 유감이야. 리오.. 산에서 혼자.. 얼마나 춥고 무서웠었니?”

“...데이비드, 무슨 말이에요? 춥고 무서웠다니? 난 눈에 이상이 있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산에
올랐다가 추방 당한 거라구요. 도대체 산에서 무슨 말을 들은 거죠?”

“의사의 소견을 무시했다가? 그 얘기는 대충 들었어. 그리고 넌 산속에서 널 찾아다니는 레인져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녔고, 마지막 날 산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추위에 온몸이 얼어 있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 정신이 나가 있어서 레인져들이 밧줄로 묶어서 데려 와야 했었다고..”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아콩카과에서 추방당했을 때 사인했던 서류이다.
“당신은 아콩카과의 법에 의해 1년간 아콩카과에 돌아 올 수 없습니다. 여기에 사인하십시오”
“이건 무슨 내용이죠? 전 스페인어를 읽지 못해요. 내용을 모르는 서류에 사인을 할 수는 없어요.”
“저도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닌데.. 대충 읽어드릴께요. 당신은 한국인으로 ...누구누구입니다. 2008년 몇월 몇일 의사는 당신에게 눈에 이상이 있으니 산에 오르지 말라고 충고했고, 만약 당신이 산에 오르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 초래 될 수도 있다고 충고 했습니다. 몇월몇일 당신은 의사의 진료를 받지 않은 채 베이스 캠프에서 사라졌고, 몇월몇일 두번째 캠프에서 레인져를 만났으나 베이스 캠프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월며칠 당신은 아콩카과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발견 되어 무전기로 연락이 취해졌다... 대충 그런 내용입니다.”

...의사의 소견을 무시했다는 정도로 추방당할 정도라니..
무언가를 설득하고 변명해보고 싶었지만 그들의 태도는 너무나도 진지했다.
나는 내가 너무 경솔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고 산에 오른 것은 명백한 내 잘못이었고, 그들의 진지한 태도를 보았을 때 추방을 피할 길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스페인어로 된 서류에 사인을 하고 아콩카과에 추방당한 채 멘도사로 돌아왔다. 하지만 눈에 이상이 없으면 아콩카과에 돌아갈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에 이스라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국립병원 안과전문의의 소견서를 받았고 라섹 수술에 대해 전혀 모르며 안과 전문의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아콩카과 의사의 오진을 잡고 늘어졌을 뿐이었다.

나는 그동안의 사정을 데이비드에게 설명했다.
그는 눈살을 찌뿌렸다.

“나는..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리오.. 만약 네말이 사실이라면.. 네 말이 사실일 수도 있지. 아콩카과는 한해에 평균 한 두명이 죽는데 올해는 이미 6명이나 죽었거든. 잘은 모르지만 아콩카과의 올해 팀은 자신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그것들을 보여주는 소문과 서류가 필요할거야. 하지만 잘 모르겠어.. 그 좋은 산 사람들이..”

데이비드와 헤어져 나는 숙소로 뛰어갔다.
호텔 주인을 붙잡고 내가 사인한 아콩카과 추방서의 내용을 해석해 달라고 했다.
추방서를 읽어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이건 전문용어들이라 내 영어실력이 그다지..”
“정확한 내용은 필요 없어요... 대충 무슨 내용이 있는지만 말씀해 주시면돼요.
분명 이 서류에는 뭔가 거짓말이 씌여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에는.. 당신은 한국인으로서.. 누구누구입니다.
2008년 몇월몇일 의사는 당신에게 눈에 이상이 있으니 산에 오르지 말라고 충고했고, 만약 당신이 산에 오르면 당신의 일행까지도 일행에 빠뜨릴 수 있다고 충고 했습니다. 몇월몇일 당신은 의사의 진료를 받지 않은 채 베이스 캠프에서 사라졌고, 몇월몇일 두번째 캠프에서 레인져를 만나 산에서 내려갔으나 그 날 저녁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몇월며칠 자정 경에 어느 등산객이 당신을 발견했는데 그의 이름은 무엇이고 국적은 어느나라이며 누구누구입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당신은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신에게 산을 내려가라고 충고했지만 당신은 듣지 않았습니다.

몇월며칠 당신은 어디어디에서 발견 되었고, 혼자서 산을 헤매다가 길을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당신을 발견한 아콩카과의 일꾼이 즉시 레인져에게 무전기로 연락하였고,
레인져들이 당신을 데리러 왔을 때는 추위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사물을 주변 사물을 인식하지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온몸이 얼어 스스로 걷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을 줄로 묶었고... ”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는 얘기였다.

...이것이였구나. 내가 그렇게 의사 소견서와 함께 억울함을 호소해도 모두들 내가 아콩카과로 돌아갈 수 없다고만 대답했던 이유가.. 그들은 모두 서류를 읽고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를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었다면 누가보아도 내 눈의 상태, 의사 소견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잔뜩 흥분한 상태로 형편없는 스페인어 실력으로 억울함을 호소했으니.. 그들이 나와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했음도 분명하였다. 나는 당장이라도 아콩카과로 돌아가 레인져들을 붙잡고 그들의 근무태만과 거짓 보고, 그리고 무슨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한바탕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것이 끝나버린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미 거짓 서류에 사인을 했고, 그 서류를 들고 아콩카과의 담당자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내가 추위에 정신이 나가있었다고 거짓 보고를 했던 경찰이 아콩카과에서 나에 대한 기록을 꾸미는 동안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키스를 하고 싶다는 둥 수작을 부렸다는 불평조차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경찰이 그런말을 하면 성희롱으로 잘린다고 화를 냈었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었고, 추방당하던 당시 내게 호의적인 척 서류를 작성해주던 경찰에 대한 불평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콩카과에 돌아가고 싶어하였던 그 시점에서의 솔직한 내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뭐.. 그런 얘기를 해봤자 나도 적당히 수작을 받아줬을 것이라는 오해와 함께 골빈 여자 취급을 받을 것도 뻔했겠지만..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억울함을 뒤로 하더라도.. 남의 나라 국립공원에서 추방당했다는 결과는 내 경솔함과 건방짐이 가져온 너무나도 아픈 기억이다.

나는 내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다는 이유로, 의사의 전문성과 권위를 무시했으며, 산을 내려가라는 레인져의 명령도 무시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 눈에 정말 이상이 없는 거라면 시간이 해결해 줬을지도 모르는 의사의 소견을 좀 더 기다려야 했다는 것을...

아마 지금도 베이스캠프의 수많은 친구들은 내가 조난당했다는 소문을 그대로 믿고 있으며, 나를 모르는 많은 등산객들은 내가 목숨을 구해준 의사에 대한 고마움을 모른다고 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나는 거짓된 기록과 거짓으로 해석해 주었던 추방기록을 볼 때면 화가 나고 부끄러운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진실로 아콩카과 국립공원을 싫어하게 되었으며,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콩카과에서의 뼈아픈 기억은 삶에 대한 충고로서 가슴속에 남게 될 것이다.

나는 평생 의사와 레인져들이라는 존재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마음 한구석의 억울함을 지울수가 없으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가 바라듯이 나 역시 꿈을 꾸며 여행을 한다. 스므살의 나를 서른살로 키워준것은 여행이었고, 슬픔을 보여줬으며, 삶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여행을 사랑했으며 여행이 길어지고 성숙해 질수록 아름다운 추억과 소중한 사람만이 늘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여행이란 삶과 같아서..
상처가 생기고,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돌아가고 싶지 않는 곳도 늘어나게 된다는 것을.

(박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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