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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여행기] 노트북 도난사건

박근하 기자 | 2009/10/18 02:57

[남미여행기] 노트북 도난사건
-SPN 서울포스트, 박근하 기자



뜨거운 태양빛을 등진 채 또 다시 걸어가는 중이었다.
비쿠냐에서 국경까지는 90km. 버스도 다니지 않는 이 길을 히치하이킹 하고, 또 다시 히치하이킹 하면서 하루를 소비하고 있었다.

SAN SUAN(상환)! 상환으로 히치하이킹!

멀리서 승용차 한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있는 힘껏 팔을 흔들어 보았지만 엄청난 먼지만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는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걸어가 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일년치 장비와 텐트까지 구비한 가방은 너무 무거웠었고, 내 체력과 여행에도 깊은 회의가 느껴지고 있었다.
소형 짚차 한대가 스쳐 지나갔다. 힘없이 차를 바라보다 살짝 팔을 들어보니 100m는 앞서가던 차가 후진해서 돌아온다.

“상환! (아르헨티나 도시이름),오 아듀아나(또는 칠레 국경)!”
차의 뒷 좌석이 쉽게 열렸다.
사람 좋아 보이는 40대의 부부..
4명의 자식과 2명의 손자가 있다면서 지금은 제 2의 신혼여행을 즐기는 중이란다.
“오늘 아침부터 3대의 차를 갈아타고 이곳까지 왔어요. 아르헨티나로 가시나요?”
“아뇨, 우린 국경까지만 가요. 그곳에서 하루 머물고 돌아 갈 거예요. 국경에서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는 차가 많을 테니 다시 히치하이킹해서 가세요.”
시간은 너무 많이 지체되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오늘 하루만에 비쿠냐에서 국경으로, 국경에서 상환으로,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멘도사까지 히치하이킹을 해서 갈 수 있다는 꿈은 사라지고 당장 오늘밤 어디서 잘 것이냐가 눈앞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여권에 출국 도장을 찍어주면서 국경 직원은 말했다.

문닫은 시간의 국경. 야생 여우가 돌아다니니 밖으로 나가는 것은 금지당했다.

“아르헨티나 국경은 이미 닫혔습니다. 오늘 하루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떠나세요.”
국경 숙소에 짐을 풀고, 노트북을 충전하려다가 깨달았다.
노트북을 둔 작은 가방을 차안에 두고 내린 것이다. 오피스로 내려갔다.

“히치하이킹을 한 차에 노트북을 두고 내렸어요! 아르헨티나 국경이 여기서 먼가요?”
“160km입니다. 아르헨티나 국경에 전화해드리겠습니다. ...아! 그 사람들은 아르헨티나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국경과 국경사이에서 하루 캠핑하고 내일 돌아올거예요,”
“국경사이에서 캠핑이요? 경치가 멋진가 봐요?”
“....산이기는 한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국경사이에서 캠핑해보겠다는 사람들이지요.”
....세상에는 이해 할 수 없는 노년의 신혼여행자들이 많다.
한 시간 후 국경 직원은 다시 나를 불렀다.
“노트북을 차에 두고 내린 것이 확실한가요? 국경순찰차가 그 사람들을 찾아서 노트북을 물어보았는데 차에 없답니다. 그 사람들은 내일 돌아옵니다. 내일 만나서 직접 물어보세요.”
“...차에다 두고 내린 것이 확실합니다. 분명히 기억해요. 제 친구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요, 그래도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나요? 만약 그 사람들이 노트북을 가지고 있다면 내일 그 사람들 돌아올 때 국경이니까 물품검색을 하면서 확인할 수 있겠죠? 혹시 그 사람들이 마음을 바꿔서 아르헨티나로 넘어 갔을 가능성은요? 그 사람들 신분은 국경에서 확인했을테니 나중에라도 칠레 집주소를 알 수 있을까요? 캠핑지에서 지나가는 다른 사람에게 노트북을 팔거나 맡겼을 가능성은요? 혹시 국경 순찰차가 그쪽으로 지나갈 때 같이 가서 물어 볼 수는 없을까요? 차안에 가방을 두고 내린 기억이 확실한데다가 너무 중요한 사항이어서요. 직업이 기자입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8개월 동안의 남미에 관한 자료들이 모두 노트북에 들어있어요.”
“국경들 통과하는 여행자에게 물품을 맡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노트북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의심하게 될 테니까요. 오늘은 칠레 쪽에서 지나가는 순찰차가 없습니다. 아르헨티나 쪽에 있는 국경 순찰차에게 다시 연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히치하이킹 하느라 하루가 걸려버린 서너시간 거리의 칠레 국경.

늘상 느끼는 거지만 한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이런데서 결정된다. 초조하게 앉아있으려니까 여권과 직원은 사무실의 컴퓨터를 내주면서 업무가 끝난 시간이니 한국의 친구들에게 이메일이라도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한다. 하지만 그날의 잔업을 처리하면서 그가 계속 다른 사람의 컴퓨터를 계속 빌리는 것으로 보아 결코 남아도는 컴퓨터는 아니었으리라.
물품 검색팀의 누군가가 저녁을 먹으로 숙소로 가자고 제의했다. 나를 위해 발휘하겠다는 요리솜씨는 인스턴트 치킨 스테이크와 가스렌지에 데운 빵.. 이틀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음식이 남아돈다고 무조건 먹으랜다. 숙소는 가장 좋은 방으로 배정 받았다. 관리팀 사람들은 노트북에 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무조건 마음 편하게 앉아 있으란다.

저녁에는 관리팀 아저씨네 아이들과 탁구를 쳤다. 이곳에서 8일간 혼자 일하는 게 싫어 아이들을 데려왔다는데 8살 꼬맹이의 탁구 실력은 상당했다.
야채와 고기가 잔뜩 들어간 스파게티를 얻어먹고, 부엌을 몽땅 청소했다. 힘들어서 쇼파에 쓰러져 있는데 탁구를 치던 직원들이 나를 보고 웃더니, 관리팀의 직원들은 모두 모래 교체되니 다시는 청소하지 말랜다. 웬수들..

그 날 저녁.
여행지에서는 신분이 확실한 공무원들하고만 친구하라고 주장하는 여권과 직원이 나를 찾았다.

“칠레에 대한 감상이 어때?”
“칠레? 좋지. 사람들 좋고, 사막 풍경 아름답고, 먹을 거 풍부하고. 국경 직원 친절하고. 나중에 여행자들이 물으면 추천해줘야지.
‘휴가는 칠레 국경으로 가세요. 방 공짜이고, 바람은 시원하고, 직원들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하하. 고마운 말이군. 근데 리오, 나쁜 소식이야. 순찰대가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그 사람들은 노트북이 없다고 했어.”
“......”
내일 그 사람들이 돌아오면 검색 팀이 노트북을 찾아줄 수 있을 거라 위로했지만 메모리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여행을 하다보면 한두 번 도난당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나는 농담처럼 말해오지 않아왔던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나는 왜 카피해 둔 메모리를 따로 분리해두지 않았을까..?
다음 날 아침 국경 경찰 사무실에서 빈둥대고 있는데, 무선연락이 들어왔다.

국경이 열리기도 전. 아침 일찍 날아든 또 다른 히치하이커들.

“찾았습니까? 오늘 노트북이 돌아올 수 있을까요? 내일이요? 부탁합니다. 오늘 이쪽으로 오는 여행자에게 맡겨주세요.”
“좋은 소식입니다. 노트북을 찾았습니다. 신원확인을 쉽게 하기 위해서 아르헨티나에서 넘어오는 마지막 여행자에게 맡길 겁니다. 저녁 5시나 6시경에 노트북은 돌아올 것입니다.”
“확실한건가요? 그러니까 지금 제 노트북을 경찰이 가지고 있는 거죠? 와우! 역시 차안에 두고 내렸던 거였어요. 뒷좌석에서 찾았겠죠?”
경찰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처음부터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트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고요. 국경순찰대가 가서 검색을 요구했습니다. 노트북이 나오면 절도죄라고 했더니 화를 내면서 내어줬다고 하더라구요.”
“......”
“...그 사람들은 오늘 돌아오나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가능하다면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돌아오면 절도죄로 처벌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나는 나에게 친절했던 그들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꼭 절도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가방을 뒷좌석에다가 두고 내린 건 저였구요. 히치하이킹을 했으면서도 부주의했던 건 제 잘못이지요. 그 사람들은 차 뒷좌석에서 제 노트북을 발견하고 분명 행운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길에서 돈을 주운 것처럼요. 그 후 노트북이 없다고 거짓말은 했지만 분명 절도라는 생각은 못했을테지요. 어제까지만 해도 정말 좋은 친구였습니다. 제 무거운 짐을 보고서도 차에 타라고했구요, 하루 종일 히치하이킹을 하느니라 배가 고팠겠다면서 바나나를 주었지요. 그리고 국경에서 자게 되면 식당이 없다면서 남은 바나나를 모두 주고 갔어요. 그 사람들은 아이들을 모두 키운 기념으로 제2의 신혼여행을 즐기는 중이었어요.”
“하지만 분명 경찰한테 거짓말을 한만큼 절도죄가 성립됩니다. 원하신다면 그 사람들 전기고문도 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저기요? 칠레국경에는 전기의자가 있나보죠?”
“...없습니다.”

어느덧 차들은 줄지어 들어오고..

다음 날..
아침 7시에 국경을 지나가는 차가 가장 많다는 정보를 들었으면서도 나는 늦잠을 자고 말았다. 부리나케 가방을 끌고 숙소를 나서니, 오늘 아침 히치하이킹으로 국경에 와서, 또 다른 차를 히치하이킹하고 있는 라이벌이 둘이나 있다. 칠레 놈 하나. 미국 놈 하나.
“어디까지 가시나요?”
“상환이요.”
“상환 다음에는요?”
“우리는 오늘 상환까지만 가요. 거기서 텐트로 하루 밤을 묵은 다음, 내일 라세레나로 돌아갈 겁니다.”
“오늘 히치하이킹으로 상환까지 가면 이미 밤이 되어 있을 텐데요? 내일 라세레나로 돌아가려면 새벽에 움직여야 할 테구요 상환에 가는 의미가 있나요?”
“우리는 진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라세레나(칠레)에 살고 있는데 주말을 이용해서 그냥 히치하이킹으로 상환(아르헨티나)까지 갔다가 히치하이킹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표에요. 라세레나에서 히치하이킹으로 여기까지 오는데 이틀 걸렸습니다. 월요일 오후에는 출근해야하니까 내일은 돌아가야 해요.”
...세상에는 정말 알 수 없는 여행자가 많은 것 같다.
얘들 머리속에는 뭐가 들었을까나?
(게다가 이 미국인 녀석. 전공이 한량이와 같은 물리학이다. 장래희망은 대학교수라는데. 고졸이라는 칠레놈의 비웃음을 사는 전공 망신을 시키는 바보 커플들이었다 ㅡ.ㅡ;;)

암튼 히치하이커들과 한참을 수다 떨면서 얘들이 싸온 과자를 먹고 있으려니 히치하이킹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은 이런데서 느끼게 된다. 차가 드문 곳에서도 뜨거운 태양 아래 힘들게 서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를 세우고 행선지를 물어보는데, 이렇게 차가 많고 외길인 곳에서도 과자를 먹으며 수다 떨다가 히치하이킹을 물어보는 나에게는 모두가 딱 잘라 “노!”라고 대답한다. 국경직원들도 나를 보더니 히치하이킹은 포기해야겠다면 내일 같이 라세레나로 돌아가자고 놀린다.

아르헨티나로 향하는 마지막 차들이 북적되는 오후 시간.
한대의 소형트럭이 아르헨티나 쪽에서 들어오더니 돌아서서 칠레 행 쪽 외딴곳에 멈춰 섰다. 칠레 쪽인가? 아르헨티나 쪽인가? 긴가민가하면서도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달려갔다가 당황하고 말았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내려서는 두 사람.
분명 나를 봤으면서도 무시하듯 여권과에 줄을 선다. 신분증을 기다리면서도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는 것이 나를 기억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디에 있어야 할 지 모르는 나에게 검색팀 직원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번에는 나쁜 사람을 만났네요.”
“하지만 저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는걸요? 제가 가방을 두고 내려서,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고, 하지만 도둑은 아니잖아요. 히치하이킹을 하는 저에게 차를 세워준 친절한 사람들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저 사람들한테 정말 미안하고, 노트북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지만 저 사람들의 거짓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까 경찰팀에서 하는 말을 들었는데, 당신의 생각도 있고 해서 절도죄로 처벌하지 않고 그냥 신분증을 돌려주기로 했대요. 원하신다면 한번 말을 걸어보세요.”
나는 한가해진 검색팀 사람들과 대화하는 척, 그들이 세워둔 차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많은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웃으면서 “올라! (안녕)”이라고 말하고 헤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본 그들은 표정은 순간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들의 험악한 표정에 내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차문이 닫히면 시동거는 소리가 들렸다. 소형 트럭은 한치의 여유도 두지 않은 채, 빠른 소리를 내며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는 나에게 검색팀의 직원들은 어깨를 두들기며 자신의 업무로 되돌아갔다. 나는 정말 울고 싶었다.

여름 휴가는 칠레 국경으로 오세요. 직원들은 친절하고 저녁 만찬은 맛있답니다.

안녕! 칠레 이야기!


(박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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