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박근하랑 여행가자

[남미여행] 베네수엘라의 위조지폐

박근하 기자 | 2010/02/05 03:45

[남미여행] 베네수엘라의 위조지폐
-SPn 서울포스트, 박근하 기자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콜롬비아에서 베네수엘라로 넘어오는 길에 버스에서 만난 아나네 집으로 갔으니 작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베네수엘라처럼 국내 사정이 불안하고 여행자가 적은 나라에서는 국경에서 여행자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빠른 정보인데 이번에는 그 과정이 생략 된 것이다.
무엇보다 환율을 아는 것이 급선무라 일단 은행으로 들어갔다.

베네수엘라 젊은이들의 거리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가 내일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베네주엘라 돈이 너무 많이 남았어요. 3000페소를 팔고 싶은데 몇 달러 정도 받을 수 있을까요?”
“은행에서는 달러를 팔지 않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서 환전하거나, 거리에서 환전하세요.”
“사람들 얘기가.. 거리에는 위조지폐랑 범죄가 많다고 해서요. 은행에서 안전하게 환전하라고 하던데요..?”
은행 직원은 조심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정책상 은행이나 공공기관에서는 달러를 팔지 않습니다. 위조지폐 가 있긴 하겠지만... 일단 조심해야겠지요. 하지만 보통은 거리에서 환전을 합니다. 베네수엘라 치안은 외국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최악은 아니니까요.”
“그건 당신이 같은 베네수엘라 사람이니까 그렇지요. 범죄자들에게 있어 외국인들은 그냥 봐도 돈 많은 바보들로 보이잖아요.”
“하하. 그렇군요. 아가씨는 조심하셔야겠네요. 어쨌든 환전소로 가십시오. 환전소를 중심가에서 오른쪽 골목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은행을 나와 골목을 들어가기가 무섭게 환전상들이 달려든다.

“깜비오? 깜비오?” (환전? 환전이 필요하세요, 아가씨?)
그대로 골목을 지나쳐 호텔가로 들어섰다.
“100달러만 환전 해주시겠어요?”
“실례합니다. 아가씨. 혹시 이 호텔에서 묵으시나요?”
“아닌데요”
“죄송합니다. 이 호텔 고객이 아니면 저희는 환전해 드릴수가 없습니다.”
“한번에 많은 돈을 환전하겠다 해도 어려울까요?”
“6000달러 이상 환전하실 거라면 카지노로 가십시오. 이곳에서 모든 호텔들의 환전은 300페소 일겁니다.”
이른 아침에 나왔는데 이미 정오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늦은 저녁에 집에 돌아가게 되리라.
중심가로 돌아갔다.

“100달러를 환전을 하고 싶어요. 얼마인가요?”
“얼마를 원하세요, 아가씨?”
“300페소.”
“한번에 많이 환전할 생각 없나요? 훨씬 더 좋은 환율로 드리지요. 그런데 일단 돈부터 보여주시겠어요?”
“아니 먼저 300페소부터 가져오세요.”
어딜 가나 사기꾼들.
이런 것도 여행의 일부분이라 가끔은 거리 사기를 즐길 때도 있지만 가끔은 지겨워질 때도 있다. 100달러를 400페소로 환전해 줄 테니 있는 돈을 몽땅 바꾸라고 꼬시는 놈과 내 돈을 위조지폐라 우기는 놈들. 10여개의 환전소를 돌았을까.. 인자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금은방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환전을 하고 싶은데요. 혹시 여기서도 환전이 가능한가요? 100달러를 바꾸고 싶어요.”
“허허.. 100달러라면 300페소를 드리지요.”
“네.. 할아버지 바꿔주세요.”
할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누군가를 부른다.

...귀찮고 뻔한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소년은 내 돈을 받아들자 마자 “일단 이 돈이 진짜인지 지폐 감별기가 필요 할 것 같아.” 라고 테이블에 내려놓는 순간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지폐는 소년이 돈을 들었다 놓은 사이에 한눈에도 위조지폐로 보이는 B급 종이가 되어 있었다.
“이봐! 네가 바꿨잖아! 내 돈 어딨어!”
“무슨 소리야, 내가 바꿔치기하는 거 봤어? 봤어? 봤냐구!”
“좋아! 그렇다면 경찰을 불러! 경찰이 분명 어디선가 내 진폐를 찾아내겠지!”
실랑이를 시작한지 1시간이 넘어서야 8명의 경찰이 왔다.
“아가씨, 이 사람들이 위조지폐 바꾸는 것을 보았나요?”
“전 위조지폐를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요. 분명 줄 때 진폐를 넘겨줬으니 이곳 어딘가에 분명 제 진폐가 있을 거예요. 뒤지면 어딘가에..”
경찰이 찾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 또 아까 사무실을 오락가락했던 사장님과 주변 구경꾼들.. 그들 역시 수상하다.

산위에서 내려다본 베네수엘라의 풍경

“아가씨는 오늘 많은 환전소를 돌아다녔잖아요. 분명 다른 어디선가 바꿔치기 당한거예요.”
“이봐요. 제 직업이 기자거든요. 아프리카, 중국.. 위조지폐 수십 번은 겪어 봤다구요. 아무려면 이런 B급 지폐에 속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잖아요. 그럼 아가씨의 돈은 어디에 있죠? 어차피 100달러.. 아가씨한테 그렇게 큰 돈도 아니잖아요. 남의 장사 방해 말고 빨리 사라져요!”
“..그렇군요 할 수 없네요. 그러고 보니 그것보다는 좋은 기사거리가 되겠네요.”
“그럼 경찰 아저씨.. 이 사람에게 전화해주시겠어요? 베네수엘라 신문기자인데, 요즘 무슨 특집만든다고 했으니까 좋은 기사거리가 도리거예요.”
나는 베네수엘라 정치 잡지를 꺼내고 어느 기자 이름 밑에 써있는 핸드폰 번호를 들이댔다.
나는 디카를 들고 건물 복도와 간판 사진을 찍었다.

순간 사무실 소년의 인상이 험악해졌지만 그 역시 여유 있게 받아니다.
“네. 할 수 있으면 해봐요.”
“참.. 경찰 아저씨. 이 사람에게 전화해 주시겠어요? 베네수엘라 신문기자인데.. 요즘 무슨 특집 만든다고 했으니까 좋은 기사거리가 될거예요.”
나는 가방 안에서 움베르트에게 받은 정치잡지를 꺼낸 후, 내 기자증과 함께 그의 이름 밑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건네줬다.
“베네수엘라 경찰은 협조해 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도 당당하게 이루어지는 사기와 범죄에 대해 차베스가 신경 많이 쓰고 있다고.. 아.. 제가 직접 신문사로 할께요. 가게 전화기를 써도 되겠죠? ”
“무슨 짓이얏!”
테이블 위에 놓여진 전화기를 드는 순간 험악해진 소년은 내 손에서 내 손목을 쳐서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아얏! 이게 무슨 짓이죠? 경찰! 이런 모습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셈인가요? 어쨌든 할 수 없군요. 제가 스페인어를 제대로 못해서 아무래도 친구를 불러 오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요. 경찰 아저씨 핸드폰 있지요? 신문사로 전화 좀 해 주세요. 사실 우리도 마감 일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8명의 경찰들은 모여서 뭔가 열심히 떠들어 댔다. 위조지폐 범인을 찾고 싶어도 증거가 없다느니.. 내가 이미 여러 환전소를 돌았으니 내 말만은 믿을 수가 없다느니..

웃기고 있네. 사기꾼들이 경찰 앞에서 이렇게까지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은 이들과의 싸움에서 여러 번 경찰이 물먹었거나, 아님 경찰도 얘들과 단합했다는 얘기다. 어느 쪽이든 무능력한 경찰이기는 마찬가지.
소년은 내게 말했다.
“좋아, 그럼 협상하자. 우리는 네가 내 가게 앞에서 소란 피우는 것을 원치 않아. 그리고 넌 내가 바꿔치기 했다는 증거가 없지. 은행 환전가인 200페소를 주겠어. 이쯤에서 사라지는게 어때? 이 정도면 많이 양보한 것 같은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곳 거리 환전가는 최소 300페소 이상일거라 생각되는데?”
“물론.. 하지만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200페소를 제안했으면 나는 정당한 돈을 제시 한 거야. 이쯤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경찰도 화내지 않을까?”

자기들끼리 돌아서서 쑥덕이는 경찰들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어차피 경찰을 믿을 수는 없을 테고, 움베르트를 부른다 할지라도 그가 실제로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 100달러를 돌려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위조지폐로 바꿔치기 한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될 테니 결코 없다 할 테고, 현지 돈으로 받자니 은행 환전가인 200페소가 맞는 얘기 일 것이다. 그렇다고 경찰들에게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결국 여기서 타협하고야 말았다. 200페소를 받고 경찰들을 쳐다보며 한마디 빈정거렸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중심가에서 이렇게 조잡한 위폐가 돌아다니지는 않아요. 유독 베네수엘라 여행자들이 순진한 건가요, 아님 베네수엘라 경찰들이 한가한 건가요?”
“그렇겠지요. 북한산 위조지폐에 익숙한 아가씨에게 있어 이 정도는 애들 장난감이겠군요.”
개 새끼들. 이 한마디로 나는 경찰들도 진실을 알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함정수사 한 두번만 펼쳐도 위조지폐 사기들이 이렇게나 뻔뻔해지지는 못 할 텐데.. 아무리 경찰들조차 거리에서 삥 뜯기로 유명한 베네수엘라라지만, 국가 공무원의 최소한의 양심이 있지. 200페소를 받아들고 경찰들과 인사를 한 후, 거리로 나섰다. 아침부터 “환전하세요”를 외쳤던 아저씨는 나를 따라오며 내게 말했다.
“원래 저 건물에 유독 위조지폐가 많아요. 다음번에는 이쪽 건물로 오세요. 친구분들도 데려오세요. 전 예전에 경찰을 했었는데 지금은 조그마한 고미술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답니다.”
그는 지갑에서 오래 된 경찰신분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100달러에 얼마하나요? 제 친구는 어제 600페소에 환전했다고 자랑하던데..”
“600페소 드리지요. 친구 분도 데려오세요.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한번에 많이 바꾸세요. 많이 환전하면 환전할수록 높은 가격을 드린답니다.”
그의 수작을 슬슬 받아주며 역으로 걷고 있는데 한떼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환전상과 사람들이 눈빛을 주고 받는 순간, 나는 그들이 조금 전 거리에서 나를 지켜보았던 사람들임을 직감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기에 자신들도 사회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
반미감정의 악화로 모든 외국인 상대의 범죄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베네수엘라 국민들.
훗날 움베르트는 베네수엘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교육의 수준이 낮고 경제가 어려울 수록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을 상대로 나쁜짓을 해도 된다고 믿으니까요.
그것이 베네수엘라가 점점 고통스러워지는 결정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박근하 기자)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 seoulpost.co.kr]
서울포스트 태그와 함께 상업목적 외에 전재·복사·배포 허용

Copyright ⓒ 서울포스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