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기] 커피농장 이야기1
-SPn 서울포스트, 박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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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한 작은 마을.
나는 첫눈에 이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내가 찾은 커피농장에는 이미 이스라엘 바이러스가 번식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바이러스.
나는 이스라엘 여행자들을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군대문화, 키부츠 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여럿이 여행을 다니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고 한번 좋다고 소문난 장소들은 언제나 이스라엘 녀석들이 심하게 번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직하면 콜롬비아 곳곳에 <호텔 이스라엘>이라는 호텔들이 성행하는가 하면, 반대로 몇몇 호텔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선전하겠는가.
어디를 가든지 일단 바이러스 수준으로 번식했다고만 하면 밤새 레게 음악을 틀고 술을 마시면서 히브로 떠들어대는 녀석들이 이스라엘 여행자였기에 이곳 콜롬비아에서 여행자에게 필요한 언어는 영어나 스페인어가 아니라 히브(이스라엘 언어)라고 나는 투덜대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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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o! Where are you go?" (리오! 어디가는 거야?)
나는 커피농장에서 일하는 야드를 <짝퉁 이스라엘>이라고 불렀다. 콜롬비아 출신인 아버지와 브라질 출신의 어머니. 그리고 야드가 콜롬비아에서 태어났다면 한국식으로는 그는 분명 콜롬비아 인이었다. 아무리 그놈이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말이다.
“바이러스들이 없는 곳으로!”
내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싫어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야드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야드에게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시끄러운 이스라엘 패거리들이 정말 싫었다. 하지만 밤 12시가 넘은 시간. 어디로 가야할까. 문득 놀이터가 있는 언덕이 생각났다. 긴 계단을 한참 올라야 했지만 그곳이라면 불빛도 있고 시소에 앉아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마을의 야경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덕으로 가는 길에 두명의 아가씨와 함께 있는 안토니오를 만났다. 38살 노총각 안토니오는 홀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경영하는 있는 소문난 효자였다. 저녁마다 그의 식당에 가는 나를 보고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은 안토니오랑 결혼하라고 농담하곤 했었다.
“안토니오! 데돈데?” (어디가는거야 안토니오?)
“수에뇨!” (자러가는 길이야!)
“바모스!” (언덕에 가자!)
“노! 수에뇨!” (싫어! 자러 갈꺼야)
안토니오는 내게 바디 랭귀지를 섞어가며 짧은 단어로 대답했다.
“흥! 부에노스레체스!” (흥! 잘자!)
힘껏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섰건만 안토니오는 크게 웃으며 차오! (잘 가!)라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언덕에 나 있는 긴 계단을 올려다 보았다. 부슬비가 내렸던 오늘은 안개가 끼어 전등불조차 흐릿하게 보였다. 발밑을 조심하면 몇계단을 올라보았지만 계단 옆 풀숲에 나있는 풀벌레 소리와 함께 문득 귀신이 무서워졌다. 쳇.. 돌아가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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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와 마을로 가는 길에 안토니오를 만났다. 안토니오와 아까 그 아가씨들과 함께 언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오, 뚜 이르 까사? 수에뇨? 바모스!”
(리오, 농장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바래다 줄게.)
이놈.. 비만인 이유를 알겠다. 사실 졸린 게 아니라 분면 긴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혼자 걸을 수 있어.”
안토니의 표정은 실망으로 가득 찼고, 그 다음 순간 못마땅한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헤이 안토니오!”
위스키를 든 4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아미고?” (친구야?)
“세뇨리따! 무쵸 구스따.” (아가씨! 처음 뵙겠습니다.)
그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알렉카는 처음 보는 나에게 다짜고짜 위스키 병을 내밀었다. 살~짝 사팔 뛰기에 생긴 것도 상당히 험악했지만 에라이! 모르겠다. 나는 위스키를 들이키고 안토니오를 보며 외쳤다.
“바모스!” (다같이 언덕에 올라가자!)
“오우! 나이스!” (오우! 멋진데!)
알렉카는 술취한 영어로 연거푸 위스키를 권하며 나와 함께 언덕으로 뛰어 올랐다. 한밤중의 놀이터. 스페인 단어를 나열하는 한국인과 정체불명의 영어를 주절거리는 알렉카, 그리고 나를 보고 스페인어로 떠들어대는 두 명의 소년.. 한참을 떠들고 있으니 계단 아래 안개 속에서 안토니오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는 누군가와 심하게 다투고 있는 듯이 보였다.
“붓다! 안토니오! 뚜 세메루시알?”
(젠장! 안토니오! 쇼핑이라도 하는거야?)
안토니오는 계단을 올려보며 친구 하나하나를 가르키며 내게 외쳤다.
“아미고 겡아! 아미고! 아미고! 아미고! 노 아미고!”
(내 친구 근하야! 다른 얘들은 다 내 친구지만 쟤만은 내 친구 아니야!)
“씨 안토니오! 뻴렘 알렉카?”
(알았어 안토니오. 알렉카와 싸우기라도 한거야?)
“겡아! 겡아! 아미고! 아미고! 아미고! 노 아미고!”
(근하! 나머지 애들은 괜찮아. 하지만 알렉카만은 내 친구 아니야!)
심각하게 화내 듯 소리치는 안토니오게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씨 안토니오, 요 씨. 뚜 무초 아미고.”
(알아. 안토니오 너만 내 진정한 친구라는거.)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안토니오는 계단을 힘들게 올라와 몇 번이나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다짐하고 다른 녀석과 심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안개가 자욱한 밤이었다. 마을의 불빛은 흐릿하게 비치고 있었고, 넓은 놀이터에서 녀석들은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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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거푸 위스키를 들이켰다. 커다란 위스키가 절반 이상 비워졌지만 아무려면 어떠냐. 그 정도로 취할 나도 아닌데. 나는 농장을 장악하고 지들끼리 히브(이스라엘어)와 떠들어대는 이스라엘 떼거리들 때문에 기분이 잔뜩 상해있었다. 그들은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농장 일꾼 야드까지 유창한 히브로 빼앗아 갔다.
“유! 유! @$%^솔라?” (너! 너! 혼자야?^$#q@$$)
“솔라!” (혼자야.)
나는 어느새 험악한 외모로 자꾸만 들이대는 알렉카가 싫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꾸만 인사를 하며 내 뺨에다 뽀뽀를 하고 있었다. (*콜롬비아에서는 뺨을 가볍게 대는 것이 인사이지만, 남자들이 인사하는 척 진짜 뽀뽀를 하는 것도 보통은 가벼운 농담에 속한다..)
“요 보이 미오 까사!” (나 내 숙소로 돌아갈거야)
“데 돈데$%^$^$%&”(어디라고?)
“까페 팜! 미오 까사!” (커피 농장! 그곳 숙소로 돌아 갈 거야!)
빠른 걸음으로 따라오는 그를 피하다가 나는 언덕길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악!”
비명을 지르는 내게 다가와 나를 일으켜주더니 갑작스레 나를 껴안았다. 그의 손은 내 셔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Don't!" (건드리지마!) 나는 울부짖듯 소리치며 그를 밀쳐냈다.
절뚝거리며 풀숲을 벗어났을 때 발목의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리오! 아미고! 아미가!” (친구! 우린 친구잖아!)
알렉카는 다시 나를 붙잡고 껴안으러 달려들었다. 나는 몇 번이나 밀치고 헛 주먹질을 하면서 도망갔고, 그는 몇 번이나 나를 붙잡아 풀숲으로 끌고 갔다. 나는 힘껏 그를 밀쳐내며 발길질을 해대며 언덕 위 친구들을 향해 힘껏 소리 질렀다.
“아미고! 아미고! 요 보이 까사!”
(친구들아! 나 내 호텔로 돌아갈거야!)
“노소뜨로소&%E#%&” (함께 가자! 내가 데려 다 줄께!)
“안또니오! 아미고! 안또니오!”
(내 친구 안토니오는 어디있어? 안토니오!)
“$%^&*&$% 노 프로블레마 안토니오”
(안토니오는 문제없어! 걱정하지마! 숙소까지는 내가 데려다줄께!)
나는 언덕을 올려다보았지만 심한 안개와 함께 반 병이상 들이킨 위스키는 내 시력을 상당히 저하시키고 있었다. 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뛰어 내려온 붉은 티셔츠를 입은 소년의 팔을 붙잡았다.
뎬장.. 이름이 뭐였더라? 이 소년은 나를 지키기에 너무 작아보였다. 어쨌든 안토니오가 친구라고 했던 소년이 아닌가? 한쪽 팔은 소년을 붙잡고 한쪽 팔은 알렉카에게 빼앗긴 채 안토니오와 농장을 울부짖으며 언덕을 내려왔다. 앞이 보이지 않고 술에 취한 와중에도 발목의 통증은 심하게 다가왔다.
문이 열리고 커다란 침대가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내 숙소가 아니었다.
알렉카는 호텔을 외치며 붉은 옷의 소년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나는 소년을 더욱 힘껏 붙잡고 발목의 통증을 호소하며 울부짖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이 호텔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는 소리지르며 붉은 옷의 소년을 잃지 않는 것 뿐이었다.
내가 취했다고만 생각하는 호텔 사람들이 달려 나왔지만 스페인어를 못하는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지 알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붙잡고 “아프다”고 소리 질렀다.
호텔 사람들의 잔소리에 밀려 알렉카는 할 수 없이 나를 근처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발목의 통증을 호소하며 커다랗게 울부짖으며 병원으로 따라가 화장실로 도망갔다. 알렉카가 이미 주변 사람들한테 “친구"라고 말하고 있는 있는 상황. 이 상황에서 누굴 의지할 수 있을 것인가? 붉은 옷의 소년? 의사? 무엇보다 정신을 차리고 시력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물을 틀고 힘껏 세수를 했지만 여전히 앞은 보이지 않았고 놀란 몸은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진정하기 위해 화장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입에서는 울음이 흘러 나왔다. 날이 밝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미가!” 알렉카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병원 화장실 문은 잠기지 않는다는 것이 생각났다. 다시 그를 힘껏 밀쳐내고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 붉은 옷의 소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는 내 발목을 이리저리 비틀어보더니 이상 없댄다.
“I have very sickness. really no prablum?”
(나 지금 무지하게 아파요. 정말로 문제 없어요?)
“노 쁘라블러마”(이상 없어요)
뎬장할.. 적어도 환자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의사의 기본자세 아니었던가? 술에 취해 넘어져서 병원에 와 난동을 부리는 환자를 그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진정제 주사를 들고 왔다.
헉.. “No! No! It's O.K" (노! 노! 괜찮아요. 진정제 필요 없어요!)
나는 붉은 옷의 소년을 붙잡고 병원을 나왔다. 다행히 시력은 어느정도 회복되고 있었다. 거리의 상가에서는 내일 장사할 밀가루 반죽을 준비하고 있는 아줌마가 보였다.
“까사! 까사!” (내 숙소로 돌아갈거야!)
“노! 노! &*$% ^” (넌 내 친구야! 우리집으로 가자!)
“노! 노! 까사! 까사! 아미고! 잉글리쉬 아미고!”
(싫어 싫어! 영어를 할 줄 아는 친구가 있는 숙소로 돌아 갈거야!)
얼마나 소리를 지르고 얼마나 난동을 부렸을까.
밀가루 떡을 준비하는 아주머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알렉카와 붉은 옷의 소년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알렉카는 아줌마의 잔소리를 무시한 채 오토바이를 끌고 와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라고 붉은 옷의 소년에게 명령했다.
“오토바이 타지마! 쟨 친구 아니야!”
붉은 옷의 소년은 뒤돌아서서 강한 손동작을 보이며 내게 속삭였다.
“영어가 통하는 내 숙소로 돌아 갈거야!”
나는 힘껏 소리 지르며 붉은 옷의 소년을 붙잡으며 울음을 터뜨렸고, 밀가루 떡을 준비하는 아주머니와 상가 사람들 몇몇이 화난 표정으로 알렉카에게 잔소리를 하셨다. 알렉카는 화난 표정을 지으며 모터바이크를 타고 나와 아주머니, 붉은 옷의 소년에게 욕설을 퍼부우며 사라졌다.
“글라시아스” (고마워) 소년에게 업힌 채 나는 그에게 속삭였다.
“데나다”(천만해요) 소년은 조그맣게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섯 발자국을 채 못가서 나를 내려놓았고, 준비운동을 하고 다시 나를 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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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 5시. 샤워를 하고 잔디밭에 놓인 쇼파에 앉아 내 다리를 살펴 보았다.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알렉카를 걷어차려다가 헛발질을 한 왼쪽 발목은 부어 있었고, 오른쪽 무릎은 바지가 찢어진 채 피로 얼룩져 있었다. 무엇에 찔렸는지 상처가 깊었고 여기저기 심하게 피멍이 들어있었다.
간밤에 너무 소리 지르고 울어버린 탓인지 더 이상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찬장을 열었다. 야드가 아끼는 핫초코를 훔쳐서.. 진하게 타서 마셨다. 그리고 다시 정원으로 나섰다. 평화롭게 언덕을 구경하면서 잠이 오기를.. 그리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박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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