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충북 괴산 - 선유동 계곡과 박온섭 선생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괴산군청에서 청천면으로 가는 길은 거친 산악들이라서 반도의 동편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도로의 포장은 어느 지역보다 잘 돼 있다. 김종호 내무부장관(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출신, 6선 국회의원 역임) 덕을 봤다는 소리도 들리니, 지역발전에는 역시 인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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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양계곡 하류 ⓒ양기용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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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포스트 |
청천면 송면리에 당도하니 상복차림의 어르신 한 분이 미리 나와 계셨다.
"상중에 저희들이 결례를 범하나 봅니다."하니, 1년 전에 돌아가신 모친의 3년상을 치르고 있다고 하신다. 박온섭朴蘊燮 선생. 예사로운 일들이 아니다.
자료집을 한 보따리 준비해 오셨다며 그 길로 선유동계곡으로 가자신다. 70줄이시라는데 쉼없는 입담-지역 소개-에 펄펄 날라 계곡을 거슬러 올라 가신다. 젊은 우리는 숨을 헉헉거리며 훈련 깨나 받았다.
계곡을 거의 올라간 즈음에 휴게소 한 곳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으셨다. 메기매운탕에 막걸리가 달다.
괴산 청천면도 속리산 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하며 경북 문경군과 접경지역이다. 한국전 이후 빨치산 활동근거지로 이용돼 선생의 형제분도 그때 희생되었다고 하신다. 독학으로 향토 학자가 되셨고 제5대 충청북도의회 의원을 끝으로 지금은 우암 송시열 선생 사당 건립(화양서원, 만동묘 등)을 계속하고 계신다.
▶ 화양계곡華陽溪谷(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 화양동계곡華陽洞溪谷, 화양구곡華陽九谷, 화양동구곡華陽洞九谷
속리산 북쪽에 신선들도 부러워할 계곡이 있다. 대표적인 곳은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이 그 절경에 반해 머물렀다는 선유계곡과 화양계곡. 특히 화양계곡에는 암서재, 화양서원 등 조선후기 노론의 대표 문인 송시열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화양계곡은 송시열이 관직에서 잠시 물러난 50대 때 중국의 무이구곡을 닮았다 하여 9곡의 이름을 붙이고, 가장 경관이 수려한 제4곡 금사담 암석 위에 암서재라는 이름의 사당을 짓고 머무른 곳이다.
먼저 제1곡 경천벽은 계곡 초입에 있다. 제2곡은 맑은 물에 구름이 비치는 담이라 하여 운영담, 제3곡에 최근에 복원된 화양서원華陽書院이 있다. 금사담을 지나 오르면 만동묘萬東廟도 볼 수 있다. 제9곡을 지나 5km 정도의 선유동계곡까지 한걸음에 이어진다.
(아래 사진들은 선유동 계곡에서)  |
| ▲ 선유동 계곡 '선유동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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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룡폭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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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온섭 선생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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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암 ⓒ서울포스트 |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어느 임금보다도) 가장 이름이 가장 많이 회자된 사람으로 무려 3000회가 넘는다고 기록돼 있다. 우암은 성리학의 대가로 조선 후기 지배사상을 확립한 최고의 학자이며 동시에 세도 정치가로 그의 높은 학문을 공자, 주자에 빗대어 송자라고도 부르기 한다.
힘이 장사였다는데 83세의 나이에 장희빈이 낳은 왕자에게 세자책봉 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귀향살이 후 사약을 받고 죽을 정도로 성격이 곧고 강직하였다. 효종과 함께 북벌을 준비하는 등 항상 권력의 중심에 있어 파란이 많았고 기호학파인 그 때문에 영남학파인 영남의 선비들이 200년간 기를 펴지 못했다고.
아까 간과한 송시열의 화양계곡, 그리고 우리가 잠시 머물고 있는 선유계곡은 퇴계 이황이 9개월간 머물렀다는 곳으로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하여 이름 붙여진 곳.
이제 보니 충북 괴산은 조선 근대사의 역사가 생생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는 충청도가 영남과 상당한 대립관계에 있던 지역임도 알 수 있다.
선유계곡은 화양계곡의 상부에서 아래로 흘러 보은 속리산(법주사)에서 시발하는 달천과 합류하고, 강원도에서 충주호를 경유한 물줄기와 합쳐져 남한강으로 흘러간다. 또 보은 속리산(만수계곡)에서 발원한 한 물줄기는 대청호를 거쳐 금강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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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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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국암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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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좌), 박온섭 선생, 박영무 시인 ⓒ서울포스트 |
▶ 선유계곡仙遊溪谷(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 선유동계곡仙遊洞溪谷, 선유구곡仙遊九谷, 선유동구곡仙遊洞九谷
선유계곡은 퇴계 이황이 9개월간 머물렀던 곳으로 신선이 내려와 노닐어 이름 붙여진 선유동문仙遊洞門에서 시작된다. 제2곡 경천벽, 제3곡 학소암은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곳으로 층층이 쌓인 바위와 그에 얽힌 소나무가 울창하다. 계곡 중간 지점에 이르면 신선들이 깊은 산세에 둘러 앉아 불로장생의 영약, 금단金丹을 먹었다는 제4곡 연단로가 나온다.
와룡폭에서 바둑판같은 기국암(碁局岩), 거북모양의 구암(龜岩), 은선암(隱仙巖)까지는 연이어 있다. 은선암에는 관찰사 조명정觀察使 趙明鼎이라고 새겨져 있다.
선유계곡이라는 이름은 경북 문경에도 있고 경남 산청에도 있다. 아마 선유仙遊란 뜻은, 용추龍湫라는 이름의 계곡처럼 보통명사로 봐야한다.
개인적 체험으로 계곡의 깊이와 최고의 장관은 주왕산 계곡이다. 그 웅장함과 폭과 깊이, 상부의 소의 형태는 가히 절경이다. 그러나 기록된 역사가 남아 있는 곳 중에는 이 화양계곡이 상당한 의미가 있을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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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선암, '鼎明趙 使察觀'이라고 새겨져 있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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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자가 있던 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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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단로 ⓒ서울포스트 |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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