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望祥 (해수욕장)
咫尺仙娥一望祥(지척선아일망상)
manyooin | 2006/01/03 00:24
망 상
鄭徹(정철)
咫尺仙娥一望祥(지척선아일망상) 눈앞에 아름다운 무지개 상서로운 조짐인가 했더니,
碧雲迷海信茫茫(벽운미해신망망) 푸른 파도 흩날리는 구름에 믿음도 허망하다.
如今悔踏眞珠路(여금회답진주로) 이번 진주(삼척)길은 암만해도 후회되니,
錯使行人也斷腸(착사행인야단장) 길손으로 하여금 착각케 하여 단장의 고통 주는구나.
정철(1536~1593):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가사문학의 대가.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어려서부터 왕가로 시집간 누이들로 인해 궁중출입이 자유로워 경원대군(후에 명종)과 친했다. 그 후 을사사화(명종1년)에 연루된 아버지를 유배지 배소를 따라다녔고, 특사(명종 6년)이후 고향 창평(昌平)으로 이주, 고향 선유(先儒)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후에 조정에 입사하여 율곡(栗谷) 이이(李珥) 와 우계(牛溪) 성혼(成渾)등과 교유하며 자연 서인(西人)의 핵심 멤버가 되다.
선조13년(1580년)부터 3년간 강원, 전라,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하며 이때에 많은 시 작품을 남겼다. 선조22년(1589년) 정여립 모반사건을 사건을 계기로 서인의 영수(우의정)로서 상대당인 동인을 철저히 추방하여 동인들의 많은 원성을 사는 계기가 되다.
후에 세자 책봉문제로 선조의 노여움을 사 파직되어 진주, 강계로 유배되다.
임진란(1592년)시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고 이듬해 사은사로 명나라를 다녀온 후 동인과의 알력으로 사직하고 강화도 송정촌(松亭村)에 우거하며 말년을 보냈다. 문집으로 (송강집),(송강가사)등이 있다.
1)선아: 월궁 선녀 항아(姮娥). 이 시에서는 바다에 걸쳐있는 무지개를 의인화 하였다.
2)진주: 강원도 삼척(三陟)지방의 옛 지명.
이 시에는 송강과 한때 정을 주고받았던 관기와 얽긴 묘한 이야기가 있는 시이다.
그 옛날 송강이 강원관찰사로 재직 시 이곳 진주(眞珠:지금의 삼척)로 지방순시를 나온 적이 있었고, 그 때 순행지(巡行地) 관청 삼척부(三陟俯)에 소속되어 있던 어떤 관기의 수청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 수청관기의 자태와 용모가 아마 출중했던 모양이리라.
이에 송강은 그녀의 미색에 그만 혹하여 그녀와의 질펀한 사랑에 그만 빠져 버렸고 그때 받은 인상이 상당히 강렬하게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 뒤 송강이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송강은 그 때 그 기억을 되살려 내고는 그 기녀의 행방을 묻자 관기는 이미 그 지방의 유력 인사의 소실이 되어 버린 뒤인지라 송강이 그녀를 못내 그리워(?) 그 녀의 남편과의 일 대면을 원했기로 삼척 부사는 지방 인사들과의 시연(詩宴)으로 그녀의 남편을 초청했고, 그런 자리에 그녀의 남편은 한양 높으신 양반의 호출에 행여 화를 당할 세라 염려하여 돈으로 산 글줄이나 아는 그 지방 선비로 대타를 내세웠고 이를 알아 본 송강 역시 그의 본심의 전달이 잘못 된 것을 깨닫고는 그저 잘 살라는 씁쓸한 한마디를 전하고는 그리고 이 시 한수를 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그때 그 시연이 벌어졌던 장소가 바로 지금의 망상 해수욕장 있는 망상리(望祥里) 근처라 전해진다. 하여서인가 망상(望祥)은 망상(妄想)으로 끝난 슬픈 연애 후일담이 전설의 고향처럼 들려오는 그런 한편의 시인데,
그곳 망상이 그러한 연유로 지명이 되어 오늘의 망상리 망상해수욕장이 되었다는 믿기지 않은 이야기도 같이 전해온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