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된 앳된 소녀의 좌충우돌 중국유학기(1)
오전 7시에 수업 시작해 저녁 6시 수업 끝나는 중국 중학교
-SPn 서울포스트, 이규은 리포터
2009년 8월 초 중국에 들어와 벌써 6개월정도 지났으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그렇게 불과 몇 일 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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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을 쓴 '이규은'은 대한민국 충남 아산시에서 중학교1년 재학중, 엄마를 따라 중국으로 유학을 떠난 13세 앳된 소녀이다. ⓒ서울포스트 |
처음 입학했던 그날이 생각난다....
지금 있는 이곳은 중국 安徽省 合肥市다. 옛날에는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널리 알려진 도시는 아니다. 지난 9월초에 중국의 모든 학교가 다 개학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집에 있었다.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중국이다. 이런 나라에서 중국 학생들도 다 받아주지 못하는 판국에 외국인 학생까지 받아 줄 학교를 찾는다는 것은 힘들었다.
그 당시에 기숙사 창밖을 내다보면 내 또래의 학생들이 친구와 함께 학교로 향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다. 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학교를 갈 수 있는 건지,.. 겉으로는 학교 안가서 좋다며 한국 친구들을 놀리기도 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실망감에 빠졌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기숙사에서는 조금 멀지만 '合肥 第60中學校'에서 우리 입학을 허가해 주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침대 위에서 방방 뛰며 행복한 꿈에 젖었다. 나도 중국에서 학교 생활을 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다음 날, 시내에 나가서 교과서와 필기도구 그리고 학교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교복을 입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실망했다. 이곳 중국에서는 교복을 입지 않는다. 교복을 대신해 학교 체육복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 있을 때 입었던 예쁜 넥타이와 치마가 생각이 나서 나는 시무룩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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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비 제60중학교 정문이다(사진:이규은) ⓒ서울포스트 |
첫 날에 엄마와 함께 등교를 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 보는게 느껴졌다.
“아니 왜 저렇게 사람을 쳐다 보는거야?”
사실 우리가 이 학교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와 피부색도 비슷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리도 없었다. 엄마와 함께 등교한다는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졌었나 보다.... 키도 크고 마르고 안경을 낀 얼굴이 무척이나 자상해보였던 교장선생님과 잠시 만난 후 우리는 학년부장을 따라 교실로 향했다.
한국과는 다른 교실구조에 난 잠시 당황했다. 커다란 아파트에 온 것처럼 교실 문들이 일자로 나열되어 있었다. 게다가 어디가 야외인지 실내인지 구분도 잘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다 신발을 신고 있었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신기한 교실구조에 잠시 멍해있던 내가 애써 정신을 차리며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학년부장 선생님께서 간단하게 나를 소개해 주었다. 수학선생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던 일인지 반갑게 웃어 주었다. 선생님 이름은 胡恩华(호은화)였다. 정말 잘 생긴 것 같았다. 선생님이 그렇게 쳐다봐주니까 이거 원 감사해서,........
나는 아이들의 집중된 시선에 뻘춤하게 보고 서 있다가 학년부장 선생님이 가리키던 그 자리로 가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때서야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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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 앞에 주욱 나열된 보행자만의 거리이다(사진:이규은) ⓒ서울포스트 |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말도 전혀 통하지 않는데다가 내가 아는 사람도 한명도 없다. 오빠는 나와 학년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반으로 배정 받았고 엄마는 이미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교과서에는 온통 모르는 복잡한 수학식들과 한자만 쓰여 있고 그렇다고 엎드려 잘 수도 없지 않은가. 아이들의 눈길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모른 척하고 칠판만 멍하게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 후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아이들이 하나 둘씩 내 자리로 모이기 시작했다.
나를 대하기가 약간 어색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헤헤 같이 웃어주자 아이들도 그런 내 모습에 안심이 되었는지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중국어 공부를 좀 했으니까 웬만한 말은 알아듣겠지? 하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게 착각이었다.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한마디도 알아듣지도 못했고 한마디도 제대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你叫什么名字? "名字? 네 이름이 뭐니?
이 말은 한국에서 여러번 들었기 때문에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李閨恩”
서툰 중국어로 내 이름을 말해주었더니 이름을 어떻게 쓰냐고 손으로 써 보라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공책에 적어주었더니 아이들이 서로 자기 공책에 한국이름과 중국이름을 적어달란다. 나는 손이 아팠지만 웃으며 그 공책 하나하나에 내 이름을 써주었다.
수업시간 때마다 아이들은 모두 자리에서 다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나도 혼자 앉아있을 수 없어 얼떨결에 따라했다. 중국은 선생님들과 학생들 간의 예절을 참 중요시하는 것 같았다.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들도 보기 드물었고 선생님들 또한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나 수업 중 떠든 학생들을 때리지는 않았고 말로서 간단하게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렇게 아이들의 수업태도가 바른지 같은 중학생으로서 그동안 했던 내 행동들이 너무나도 부끄러워졌다.
2시간째 수업시간이 끝나자 한 친구가 밖으로 나가야한다며 내 손을 잡아당겼다.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운동장으로 나오게 되었다. 운동장에는 많은 아이들이 줄을 맞춰 서있었는데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나와 운동장을 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특별한 사정이 있다거나 몸이 아픈 학생들은 각 반의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몸에 별 다른 이상도 없었고 이게 뭐하는 건지도 몰랐던 나는 졸지에 중국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 두 바퀴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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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샤브샤브같은 소고기 국이다(사진:이규은) ⓒ서울포스트 |
교실에 돌아왔을 때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부채질을 하며 땀을 식히거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등 벌게진 얼굴을 가리고 헥헥거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겨우 얼굴만 익히게 된 친구들과 같이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교무실 안도 구경했다. 한 친구는 오빠얼굴을 한번 보자고 해서 오빠 반을 찾아갔는데 오빠를 본 내 친구들은 오빠가 키도 크고 잘생겼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전 수업의 마지막 시간인 4교시를 마쳤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음악이 들려오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가방을 메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왜 집으로 가는거지? 점심은 급식실에서 먹지 않나?
친구에게 물어보자 친구는 집에 가서 밥을 먹고 1시 30분까지 다시 학교로 오면 된다고 했다. 나는 오빠의 반으로 가보았지만 오빠의 반 학생들도 역시나 모두들 집으로 돌아 간 후였다. 배는 고픈데 집으로 가기엔 시간이 없고 급식실에서 먹으려니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앞 步行街 (보행가:차량 통행이 금지된 보행자 거리)에 가서 오빠는 토마토 볶음밥, 나는 소세지 볶음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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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인데 옛날 우리나라 학생들이 배웠던 책과 같았다(사진:이규은) ⓒ서울포스트 |
토마토를 볶아먹는다니....조금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이상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중국 사람들은 야채를 생으로 잘 먹지 않기 때문에 토마토로 국을 끓여 먹는다. 예전에 엄마가 중국에서 배워온 요리라며 토마토 국을 끓여주셨는데 그때는 이걸 무슨 맛으로 먹나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제일 좋아하는 중국음식이 되었다.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몇 가지 군것질을 좀 더 한 후 교실로 돌아왔다. 나와 함께 밥을 먹었던 아이들은 한국인과 함께 밥을 먹었다는 사실에 우쭐해 하는 친구의 모습에 혼자 웃었다.
오후 수업시간 때 숙제를 도와주겠다며 내 자리로 모인 친구들과 함께 다시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국어(중국어) 과목인데 엄청나게 많은 한자들을 친구들의 공책을 보고 베껴 쓰느라 손이 너무 아팠다. 친구와 떠들거나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해도 화를 내지 않지만 숙제를 안해오면 무서울 정도로 화를 내기 때문에 숙제를 열심히 했다.
드디어 한 장 분량의 숙제를 다 마친 나는 그 숙제를 반장에게 내며 무척 뿌듯함을 느꼈다. 선생님께서 내 공책을 다 본 후에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글씨를 잘 썼다고 한참동안이나 나를 칭찬해 주셨다. 다른 선생님도 아니고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으니 괜히 기분이 더 들뜬 나는 살짝 수줍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선생님께서 또 내게 자기소개를 해 보라고 했다. 나는 어떻게 중국말로 말하면 멋질까 고민하며 선생님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셨다.
혹시 이 선생님이 한국어를 알아들으시나?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선생님을 쳐다보았지만 선생님께서는 시작하라는 의미로 고개만 끄덕이실 뿐이었다. 아무래도 아직 중국어는 어색할 나를 위한 선생님의 배려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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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과 함께 찍었다.(사진:이규은) ⓒ서울포스트 |
나는 기쁜 마음에 신나게 한국어로 내 소개를 마쳤다. 아이들은 처음 들어보는 한국어에 신기하다는 듯이 날 바라보고 있었고 또 몇몇 아이들은 무슨 뜻이냐며 옆 친구와 함께 수군대고 있었다.
이렇게 8교시를 마치자 학교의 모든 수업을 마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국에서는 오전 9시 10분에 수업을 시작해 아무리
늦어도 오후 4시 30분쯤에는 수업이 끝났었는데 중국은 오전 7시 40분에 수업을 시작해 저녁 6시 30분쯤에 끝난다.
겨울엔 날이 금방 어두워지는 까닭에 좀 더 일찍 끝내기도 한다는데 그래도 한국에 비해 무척이나 늦은 시간이다. 결국엔 아이들의 인사도 다 나누지 못한 채 학교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중국학교에서의 첫날...내일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계속)
(이규은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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