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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속살 붉은 겨울불꽃 '연탄'...다시 활활 타고 싶다

전국 20만 극빈계층, 연탄 한 장에 찬 겨울 지새운다
이종납 칼럼니스트 | 2010/11/02 22:24

속살 붉은 겨울불꽃 '연탄'...다시 활활 타고 싶다
전국 20만 극빈계층, 연탄 한 장에 찬 겨울 지새운다
-SPn 서울포스트, 이종납 칼럼니스트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연탄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안도현님의 '너에게 묻는다' 시 한 편을 기억한다. 지금도 찬 겨울이 오면 군고구마나 오뎅, 호떡이 생각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온돌을 뜨끈뜨끈하게 데웠던 연탄 때던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탄에 얽힌 사연이나 추억이 오롯이 떠오르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 만들어진 연탄을 차에 실고 있다. ⓒ오늘의한국 양기용

연탄을 때던 그 시절...집집마다 김장들여 놓을라, 연탄들여 놓을라.살림을 책임 진 어머니의 손길은 그 어느때보다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집안 어느 구석 한쪽 켠에 시커먼 연탄 몇 백 장 정도는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을 봐야만 월동준비를 다 마친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곤 했던 시절도 있다.

겨울내내 별로 놀잇감도 없던 아이들은 타고남은 연탄재를 잘게 부셔 눈 쌓인 골목길에 뿌리거나 던지며 놀이를 즐겼고 골목마다 얼어붙은 길바닥 미끄럼을 막는데는 연탄재가 최고였다. 한편으로는 당시 일간지 사회면에는 연탄가스 중독사고로 일가족이 죽었다는 소식이며 탄광매몰 사건은 단골메뉴의 하나였고 연탄값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서민들은 물가가 올라 못살겠다면서 울상을 지었다.

이렇게 연탄에 얽힌 애증이 많았지만 그래도 팍팍한 서민들의 삶에 유일하게 따뜻함을 선사해 준 것도 연탄 한 장이었다. 이제는 그런 애증조차도 가질 수 없을만큼 연탄문화도 시간과 세월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60년 초까지만해도 당시 우리나라 대표적인 연탄생산공장이었던 대성연탄, 삼천리표 연탄이나 삼표 등을 비롯해 400여개의 연탄공장이 가동을 했다. 골목마다 연탄배달만 전문적으로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가구도 많을 정도였다.

해마다 연탄값 올려, 서민복지 요원해

65년에는 3분의1 수준인 130여개로 공장 수가 줄었고 66년부터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면서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80년대 후반에는 도시가스가 보급되었고 90년대 초에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강원도를 비롯한 탄광마저 문을 닫는 등 폐광시대를 맞았다.

▲ 10월 말부터 월동을 위한 연탄생산작업에 들어간다. ⓒ오늘의한국 양기용

2008년 말 현재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50여개 업체만이 명맥을 유지해 가고 있고 서울에는 이문동 삼천리 공장과 ㈜고명산업 두 곳만이 남아있다. 전국적으로 연탄사용가구수도 급격히 줄어들면서 90년 초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700만 가구 이상이 연탄을 사용해 오던 것이 해마다 줄어들더니 95년을 기점으로 1백만 이하로 뚝 떨어졌다.

2000년 초부터 현재까지 20만 가구 정도만이 연탄을 사용하며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금천구에 위치한 46년 역사를 지닌 (주)고명산업도 지난해에는 12만t정도 약 3,300만장 정도의 연탄을 생산해 서울지역 가정으로 배달되었다. 올해도 작년 수준과 비슷할 것으로 보고 지난달 말부터 연탄생산에 들어갔다.

▲ 신희철 전무 ⓒ오늘의한국 양기용
33년째 이 연탄공장을 지키고 있는 신희철(57) 전무는 "한때 잘 나가던 때는 직원이 60명이 넘을 정도로 일손이 바빴지만 지금은 성수기라고 할 수 있는 겨울철이 와도 젊은이는 한명도 없고 60-70대에 접어든 일꾼들이 시커먼 탄가루를 뒤집어 쓰면서 연탄배달을 하고 있다"며 씁쓸한 표정이다.

신 전무는 "지금 남은 직원이 28명뿐인데 저들도 하나둘 퇴직하고 나면 더 이상 일꾼을 구하기도 힘들고...."하며 혀차는 소리만 연신 내뱉는다. 신 전무는 "그래도 지금까지 힘든 일을 함께 해준 저분들한테 고맙게 생각하고 우리가 배달한 이 연탄으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니 자부심도 느끼다"고 말한다.

아직도 전국적으로 20만 이상 가구가 연탄 한 장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서민복지를 외치는 정치권이나 정부에서는 해마다 연탄값을 올려 서민들에게 부담을 더해 주는 등으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연탄산업에 인정사정없는 철퇴를 가하고 있다.

안도현님의 또 다른 시인 '반쯤 깨진 연탄'에서는 이런 날이 오고야 말 것이란 것을 예견했는 것일까?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중략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 서울시내에는 연탄생산공장이 2군데밖에 없다. ⓒ오늘의한국 양기용

▲ 손이 부족해 미처 다 실지 못한 연탄은 다시 잘게 부셔져 재생산에 들어간다. ⓒ오늘의한국 양기용

▲ 60대에 접어든 이들이 연탄을 차에 실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오늘의한국 양기용

▲ 연탄생산공장 내부 ⓒ오늘의한국 양기용

(이종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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