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차 논설가 | 2011/04/24 19:28

[Post it] 대니 보일의 신작 ‘127시간’은 實話를 映畵化
살고자 하는 의지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SPn 서울포스트, 구기차 논설가

주인공은 등산 중에 조난을 당해 즉 엄청난 크기의 바위에 팔이 끼어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갖고 있는 물은 고작 500ml 한 병이고 일조시간은 하루 15분 남짓에 불과하다. 밤에는 살인적 추위에 떨어야하고 날벌레들은 사정없이 달려든다. 정말로 꼼짝없이 죽게 될 위기의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자료사진

만약에 당신이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우선 목청을 높여 도움을 요청해본다. 다음엔 최대한 물을 아껴 마시고 그래도 물이 떨어진다면 오줌이라도 받아 마시며 연명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 돌아갈 수 있도록 생의 애착심이 커짐과 동시에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아무도 당신을 찾아오지 않는다면 게다가 먹을 물마저 바닥이 나고 심지어 바위에 짓눌린 팔이 상처가 심하여 썩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어떤 수법을 쓰고 어떻게 대처할 텐가?

실화 주인공인 미국 콜로라도 출신의 아론 랠스톤(당시 28세)은 2003년 4월에 유타주의 그랜드캐넌 국립공원을 등반하던 중 큰 바위가 굴러 떨어져 오른쪽 손목 아래 부분이 바위에 끼어 5일 7시간 동안이나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는 결국 자신의 팔을 자르고 8Km를 헤매며 천신만고 끝에 구조헬기에 구조된다는 실화로 대니 보일감독이 제목 ‘127시간’ 영화로 만들어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위기상황에 처해 있을 때 가장 어려운 싸움은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부패된 자신의 팔을 무딘 칼로 자르기까지 착잡한 심정과 더불어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랐을까?

생각해보면 손목이 바위에 깔린 것도 자신 탓이고, 팔을 자른 것도 자신의 선택이다.

산악인 아론 랠스톤은 손목을 잃었어도 아직도 산을 찾는다고 하며, 등반 중 전개되는 상황을 바로바로 기록에 남긴다고 한다.

하여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제목 ‘127시간’은 아론 랠스톤의 실화를 바탕으로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한 조난된 남자주인공의 극한상황을 그린 것이다. 즉 실제 127시간은 이 남자주인공이 고립된 채 보낸 시간을 극화 한 것이다.

여기 실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론 랠스톤은 힘든 일주일 일과가 끝나는 주말 그랜드캐넌으로 트레킹을 떠난다.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인 그에게 지도상의 길은 지루했다. 그래서 등반가답게 훨씬 위험하고 인적도 드물지만 자신만의 루트를 이용한다.

위험에 중독된 사람들은 스스로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일까. 아론도 예외는 아니다. 즉 수십 번도 더 와본 그랜드캐넌이고 운동으로 단련된 몸에 약간의 상처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신체와 경험이 모든 위험을 대처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그래서 그는 행선지도 알리지 않고 특별한 보호 장구나 안전용품도 없이 위험천만한 트레킹을 즐기는 것이다.

▲ 아론 랠스톤 ⓒ자료사진

헤드폰을 끼고 신나는 째즈를 들으며 산악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중 우연히 두 명의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게 된다. 아론은 길을 잃은 초짜 트레커 여성 둘을 자신만의 루트로 초대해 즐거운 파티를 연다.

암벽 사이에 깊게 난 크레바스를 따라 움직이던 그들은 몸을 지탱하던 손을 놓고 아래 고인 물을 향해 머리끝이 쭈뼛쭈뼛 서는 듯한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들도 아론도 다이빙을 거듭하며 맘껏 즐긴다.

그런데 그때 자신만만에 차있던 아론은 발을 헛디뎌 추락하고, 추락하는 과정에서 바위가 굴러 떨어지고 바위와 절벽 틈새에 오른팔이 끼고 만다. 그러나 침착하게 베테랑답게 그는 가방을 열고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들을 찾아본다.

등산용 칼, 캠코더, 500ml의 물 한 병, 자일, 무딘 칼, 하지만 막상 다 끄집어내도 그를 직접적으로 구해줄 만한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졸지에 아론은 꼼짝없이 바위 틈새에 갇히고 만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휴대폰도 없다. 연락을 달 길이 막막하다. 이제는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살 아 나갈 만한 방법이 없다.

친구, 연인, 가족을 떠올리며 과거와 현재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사고 전에 만나 자신과 함께 다이빙을 즐겼던 트레커들과의 시간을 생각하며 친구들과 질펀했던 파티를 떠올리며 캠코더에 실린 가족들의 사진을 보다가 잠이 들면 지나가던 등반 객에 의해 요행히 구출되거나 엄청난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꿈을 꾸면서 그 상상 속에서 온갖 감정들을 기억해내고 간절한 꿈속에서나마 탈출의 쾌감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캠코더를 켜놓고 자신을 상대로 토크쇼를 펼쳐 봐도 밧줄을 이용해 몸을 조금 더 편하게 한다 해도 상황은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다. 그는 손이 바위에 낀 채 100시간이 넘게 그러니까 4일이 넘도록 꼼짝 못하고 갇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론은 어떻게 살아 돌아왔을까? 팔을 자르지 않는다면 도저히 벗어날 길은 없다. 물론 다른 방법들도 있을 수 있다지만.

결국 아론은 5일째가 되던 날, 생의 애착심이 전신에 엄습하며 드디어 결심하게 된다. 더 이상 버티기도 힘들고 어찌했던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바위에 낀 팔목을 자르기로 결심한 것이다.

마치 생명에 위협을 느낀 도룡뇽이 꼬리를 떼고 도망가듯이 말이다. 잘라진 팔을 감싸고 그곳을 뛰쳐나온 그는 물부터 찾아 마시고 지나가던 등반 객을 향해 구원을 요청하며 혼절하고 만다. 아론은 이렇게 구조돼 127시간 즉 5일 7시간만의 조난 끝에 결국 살아남았다.

파충류처럼 과연 살기 위해서 자신의 팔을 스스로 자른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도 의사도 아니면서 마취제도, 잘 드는 메스(수술용 칼)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죽을힘이 있다면 살 수도 있다는 것처럼 삶은 때때로 자기 몸을 스스로 자를 정도의 고통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와 비슷한 조난은 아니지만 비록 아론은 살길을 스스로 찾았지만 생사의 갈림길을 헤매며 극한상황에서 천우신조로 살아돌아온 사람들이 실제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즉 1967년 양창선(당시36세)씨는 충남 청양 구봉광업소 출입구가 무너져 125m 지하 갱 속에 15일(368시간) 동안이나 갇혀있다 극적으로 구조됐다.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콘크리트더미에 깔려 11일 동안이나 옴짝달싹못하고 갇혀 있던 최명석(남, 당시20세)씨와 13일 동안 갇혀있던 유지환(여, 당시17세)씨, 17일 동안 갇혀있던 박승현(여, 당시19세)씨는 삶과 주검을 넘나들다 구조의 손길이 다 다행히 살아났던 것이다.

(구기차 논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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