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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리뷰)] 관악산의 소나무와 바위들, 연주대(3.21)①

양기용 기자 | 2011/05/13 03:39

[기획(리뷰)] 관악산의 소나무와 바위들, 연주대(3.21)①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 관악산 바로 알기(서북편 서울대쪽에서 과천쪽으로 본 사진)
ⓒ20110319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3.19일 등산, 3.21에 쓴 이 기사는 관악산에 대해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등산 당시도 이 중요성을 몰라 연주대를 포함한 제목을 썼으나 관악산은 왜곡돼 있고 방치돼 있는 산으로, 고치고 바로잡을 것이 너무 많았다.

이번의 리뷰는 연관성을 고려하여 한 데 묶는 차원으로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고 주마간산격이지만 나름대로 심도있게 발췌했다. 18세기에 쓴 이익의 성호전서(星湖全書)에 보면 영주대(靈珠臺),연주대(戀主臺),영주대(影炷臺),염주대(念主臺)를 혼용해 어디가 영주대인지 어디가 연주대인지 대학자조차 관악의 정상을 혼돈했을 정도다.

그때의 자료들이 이번 '특종 기획'에 중요한 단초역할을 해줬다. 5.12일 '[기획 - 관악산 바로알기] '특종'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다시 관악산을 올랐다. 세상은 관악산의 정상 위치부터 바로 알아야 한다.


▲ 관악산 바로 알기 ⓒ서울포스트


[탐사] 관악산의 모양좋은 소나무와 바위들, 연주대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관악산(冠岳山)'은 서울시 관악구와 금천구, 경기도 안양시와 과천시에 분포되었으며, 정상의 행정구역은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산10번지 대에 걸쳐있는 높이 632m의 산이다. 북한산 지역만큼 웅장함은 없더라도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꼭 무슨 모양을 닮아 마치 다른 물상들의 미니어쳐 를 연상케 한다.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松岳山, 松嶽山 488m), 파주의 감악산(紺岳山 675m), 포천의 운악산(雲岳山 936m), 가평의 화악산(華嶽山, 華岳山 1,468m)과 더불어 경기 5악(五岳)에 속한 산으로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며 그 줄기는 과천 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까지 이른다. 빼어난 봉우리와 기이한 바위가 많아 '소금강'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이라고도 한다.

▲ 남산 순환로에서 본 '삿갓'모양의 관악산. 우측 낮은 곳이 무너미고개다. ⓒ서울포스트 자료사진

▲ 관악산 정상부. 우측 쭈삣한 모양의 바위가 영주대(632m)의 '불꽃바위'다. ⓒ서울포스트

산정(山頂)은 세조가 기우제를 지낸 연주봉의 영주대(靈珠臺 령주대 632m 또는 영주대影炷臺)고, 주봉(主峰)은 '冠岳山' 표지석이 있는 연주봉의 연주대(戀主臺 련주대 629m)다. 멀리서 보면 '삿갓(관) 모습의 산'이라고해서 '갓 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연주봉에 있는 관악의 최고점이자 상징이며 실체인 영주대(靈珠臺 령주대 632m)의 '불꽃바위'는 쭈뼛쭈뼛하게 모난 것이 '불꽃의 심지 형상(影炷)'으로 풍수적으로는 '화산(火山)'의 모양이다고 단정하는 근거가 된다.
- 4.5일 추기(정정): 서울포스트 가 밑줄 부분을 얻기까지 과천시 지적,건설,관광과 등과 기상청,KBS에 문의했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고, 다른 자료에서 '산정에 기상레이더 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로 관악산은 최고지점부에 인공물과 불꽃바위가 혼재하고 있다. 본 기사는 많이 왜곡된 관악산에 대한 이의 제기 차원일 뿐, 정확히 적시할 근거는 아직 희박하다. 그러나 본질을 찾기위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조선건국때 무학대사는 관악의 불기운이 궁에 닿아 해를 입을까 걱정해서 지금의 무악재 쪽에 건의한 것을 정도전은 한강수가 불기운을 상쇄시켜준다고 해 이성계가 정도전 손을 들어 주었으나 이후 무학대사의 말에 무게가 실렸다.

▲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붙은 '광화문'과 '해태'상 ⓒ자료사진
조선이 화를 입을 때마다 관악은 홀대를 받았다. 한양 남쪽의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면서도 도성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고, '불'의 산이라는 이유로 그 탓을 몽땅 떠안아야하는 운명이었다. 대원군이 경복궁(태조4년인 1395년에 창건,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탔고, 고종2년인 1865년에 복원 4년만에 완성)을 재건할 때는, 관악산 꼭대기에다 우물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龍 룡)을 거기에 넣어 화기를 진압하도록 했고, 주봉인 연주봉에 아홉 개의 방화부적(防火符籍)를 넣은 물항아리를 묻는 등 외형적인 상처를 주기도 했다. 경복궁 안의 해태상이나 남대문 건축이나 그 옆 남지(南池)라는 연못도 같은 맥락에서라고 한다.

지금도 서울의 상징은 '해태'고 광화문광장을 해치마당(Heachi Madang, Haechi Seoul)이라고 해, 해태 상은 시청 등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해치(獬豸, Haechi'의 의미는 '시비와 선악을 알고 판단하는 상상의 동물' 또는 '바다의 신', '불을 끄는 상상의 동물'로 현재 우리가 흔히 쓰는 해태(獬豸)의 원말이다. 2008년 5월 시민과 외국인의 의견을 수렴하여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선정됨.)

그러나 관악은 1969년 그 불꽃형상 바위 근처에 기상관측소가 설치돼 완전히 불이 진화된(?) 산이 되었다. 정상과 주변은 케이블과 철재 계단, 펜스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매우 혼란스러운 산으로 방치돼 있다. 년간 500만 연인원이 찾는 산을 이처럼 관리하는 것은 현재도 관악의 불기를 제압할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나라 산에 반들반들한 돌로 세워진 정상 표지석들과 태극기를 달아 놓은 쇠봉대는 일제의 쇠말뚝 박기와 같은 행위로 봐야 한다.

이번 관악산에 대해 알아 보자니 현재 정상은 잘못 알려져 있고 높이도 중구난방이며 행정구역도 어디 몇 번지인지 알 수 없다. 가장 높은 지점은 산정인 영주대(632m)이지 주봉인 연주대(629m)가 아니다. 그러나 이 역시 불분명한 것이 18세기에 쓴 이익의 성호전서(星湖全書)에 보면 영주대(靈珠臺),연주대(戀主臺),영주대(影炷臺),염주대(念主臺)를 혼용해 어디가 영주대인지 어디가 연주대인지 대학자조차 헷갈리게 해놨다.
어쨌든 불의 산이라는 유래만은 확실해, 사슴벌레 집게처럼 생겨 동전 하나 올릴 수 없는 기상관측소 옆 '불꽃바위' 끝이 영주대(632m) 정상일 수도 있다. 주 릉선에 있어 예사 산이 아님을 보여주는 이 독특한 몽키 스패너 같은 바위는, 정상으로 잘못 알려진 연주대(629m)보다 분명히 높다(=기자 주관).


조선과 현재까지의 풍수역사로 봐 신하의 산이라는 관악(임금의 산은 북악)이 궁에 미친 영향은 북한산 보현봉 그 이상이다. 이미지에서 당당한 '검객의 칼' 같은 보현봉과 관악산이라는 삿갓 쓴 '자객의 칼' 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모양새다.

IT시대에도 관악의 불기운이 무섭긴 무섭나보다. 풍수로 전후관계를 재미삼아 복기하자면 남대문이 전소(2008.2.10)되었던 그 이후 당시 궁의 주인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비운을 맞았다. 관악의 화기를 막고자 청계천을 복원해서 물을 채운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이 되었다. 또 2008년부터 광화문 현판을 한문으로 내걸고 광장을 걷어내 '해치마당'이라는 해태상과 주변에 물이 들게 한 오세훈 시장의 꿈은 무엇일까.

일련의 일들이 야사 정도지만, 관악의 해를 막고자 한 행위들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풍수지리의 해석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풍수를 믿고 그것을 피하려거든 관악을 관악대로 인정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일이다. 특히 내팽개쳐진 '불꽃바위'는 잘 보호해야 할 관악의 상징이다. 한수 이남의 제일 산을 푸대접했던 응징이 두려우면, 우선 불분명한 지리적 표기부터 바로잡고 산모양을 심히 해치는 철탑과 건축물 등을 없애고 인공물은 자연의 모습으로 환원해야 한다. 화복은 우리들이 만들 뿐, 관악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관악이다.

▲ 황사가 자욱하다. 관악산은 거대한 산의 축소판 모양들이 많다. ⓒ서울포스트

▲ 무슨 모양들을 '양각'한 느낌의 바위군 ⓒ서울포스트

▲ 서북쪽에 모양 좋은 소나무들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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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분재모양을 한 소나무의 기상과 생명력
관악산 최고 명품송 일지 싶다. 멀리 삼성산 국기봉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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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일(토) 산우 일행은 서울대 공학관쪽에서 몇 해 전 역시 나홀로 초행길에 두 번 연주대를 밟은 루트인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자운암능선 코스를 탔다(북서쪽에서 오르는 이 길은 관악산 정상까지 최단거리로 거의 직선 코스). 당시엔 관악사지 갈림길에서 북측으로 오르는 능선(릉선) 서쪽에 좋은 바위들을 넘었지만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 길이 이제 알아보니 무너미고개(관악산과 삼성산 분기점)에서 최정상능선인 팔봉능선을 타는 코스다.


관악산의 특징적인 것 하나는 서북편에 분재같은 모양 좋은 소나무가 제법 많다는 것. 이번 산행에서는 소나무 몇 그루와 오밀조밀한 바위 그리고 파이프능선으로 내려오면서 발견한 남근석이다. 물론 관악산 하면 주 릉선의 '불꽃바위'와 기둥 모양의 길쭉한 바위가 연주대를 이루고 그 위에 연주암의 '응진전'이 앉아있는 모습이 단연 압권이다.

파이프릉선은 워커힐(hill),피자힐(hill),햄버거힐(hill) 처럼 엄청난 의미가 있는줄 알았다. 전쟁 때 모 장군이 파이프담배를 멋지게 물었다든지, 담배파이프처럼 생겨서 명명된줄 알았는데 흔히 빠이뿌 라고 말한 전기선 배관이 지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군용 삐삐선도 깔려 있는걸로 봐 군부대와 연관있는 모양인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면 빨리 철거해야 할 일이다.

릉선(능선)을 내려와 계곡쯤에 진입했는데 이정표처럼 터억 버티고 있는 것이 한눈에 봐도 남성성기 모양이다(도봉산 여성봉에는 녀성성기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함). 산객들은 사진 찍느라고 올라타거나 안고 란리(난리)법썩이다. 여성들은 이 바위 앞에서 입이 쩍 벌어지는 함박웃음에 서프라이즈한 표정을 짓는 것이 어색한 조우보다는 나은 걸로 인식돼 있다.

사진을 찍고 지나치는데 뒷모습을 눈여겨 본 일행의 말이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앞에서 보니 훌륭한 거기시 모양인데, 뒤에서 보니 'ㅈ'도 아니네..."
뒷모습을 찍진 않았지만 정말 편평한 표지석재 정도였다.

그렇다. 나이 먹을수록 사물(사람)의 앞과 뒤, 겉과 속을 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하고 자신의 외심일체를 조화있게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남근석 하니 떠 오른 게 있다. 지난 정부 때 국회의사당 뒷마당에 그 모양을 세워 놓은 것을 김형오 의장 때 없앴다. 국회의사당은 자체가 상여 모양이다고 하고, 그 자리는 조선시대 때 궁녀들의 공동묘지였다고 해, 근자에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처녀귀신을 봤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전해졌었다. 국회가 난장판인 것은 귀신들 때문이어서 한을 달래주고자 심어 두었다는데 개신고 장로 대통령과 의장 때 꼴불견으로 간주해 소위 말한 그 진혼석을 뽑아 버렸다.

근데 산에 있는 남성바위나 여성바위는 우아하하!! 하는 기쁨을 준다는 데 이견이 없으니 이 어찌 해석해야 할꼬?

▲ 비어있는 옛 관악사 터 ⓒ서울포스트

▲ 연주대에 있는 연주암의 '응진전'은 관악 감상의 백미. 아래는 관악문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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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관악사 빈 터에서. 연주대에 있는 연주암의 '응진전'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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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튼실하게 생긴 남근석 - 많이 봐 온 것 중 가장 놀라우나 자연산은 아닌듯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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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뒷마당에 있던 남근석. 날개 띤 우주왕복선 같다. ⓒ자료사진

聖스러운 것은 性스러운 것이고, 性스러운 것은 聖스러운 것

창조론으로봐도 인간의 탄생은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삶을 규명하려는 자체가 묘한 일이어서 결국엔 무, 공에 이르게 된다.
뫼비우스 띠 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聖스럽다는 종교에는 섹스교가 있다. 그것을 통해서 절대 선에 이르는 방식이다나?
중국에서의 소녀경은 (한동안 우리나라 여고에서 성교육 교재로 채택한 해프닝이 있을만큼) 경전의 경지에 올라있다. 인도 등지에서 유행하는 밀교도 그렇다. 차크라 시스템도 몸속 에너지의 순환에 착안한 성에너지의 극대화다.

이집트 로마 고대의 신화,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의 오랜 미술품에 여성와 남근은 기본적으로 등장한다. 유명 예술품에 드러낸 남성성기, 여성의 젖가슴들. 미켈란젤로의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제단벽화 - 최후의 심판'도 결국 덧칠했지만, 외설스러움을 들어 성직자들이 목욕탕이나 술집에 걸어라는 혹평이 있었다고 한다.

예수를 마지막까지 사랑한 막달라 마리아도 창녀라는 설, 롤스로이스를 70대 보유한 라즈니쉬도 명상을 통한 섹스를 최고 선으로 권했다가 에이즈전파범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중세수도원 뒤에서 아이의 유골이 무수히 발굴된 것도 낮에는 수녀로 밤에는 매춘으로, 카톨릭 기사들은 신부로 포주로 살았다는 증거다.

우리 나라도 얼마전 jms라는 사람도 있고 기타 예배당, 사찰에서 수도장과 모텔을 혼돈한 간음 사건이 심심치않게 나온다. 그들도 스스로 聖스럽다는 것은 性스럽다는 것을 몸으로 말해준 사례.

세상에는 남근을 숭배하는 종교도 있고 남근 모양을 파는 가게도 간혹보인다. 언젠가 성인용품 가게를 지나다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겼다. 십자가는 聖물이고 성인용품은 性물이 틀림없는데, 엄청난 크기의 남근 모형을 세워놓고 파는 종교용품 가게는 聖물을 파는 건가, 性물을 파는 건가? 하여간, 성스러운 것은 성스러운 것이고, 성스러운 것은 성스러운 것이다.  

연주암(戀主庵 련주암), 연주대(戀主臺 련주대)와 응진전(應眞殿), 관악사 터(冠岳寺址)

연주암 은 관악산 연주봉에 자리잡고 있는 연주대 남쪽 300여 미터 지점에 있다. 보광사에서 소유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 룡주사)의 말사이다.

연주대 는 1973년 7월 10일 경기도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고 경기 과천시 중앙동 85-2(산12-4)번지에 소재. 연주봉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약간의 석축을 쌓아 올려 지었다. 신라시대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이 관악사(冠岳寺:지금의 연주암) 창건과 함께 세워 의상대(義湘臺)라 이름 붙이고, 이곳에서 좌선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후 조선 1392년(태조 1)에 이성계가 무악대사의 권유로 국운의 번창을 빌기 위해 연주봉 절벽 위에 석축을 쌓고 대(臺)를 구축하여 그위에 암자를 지은 것. 지금의 건물은 3평 남짓한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조선 후기에 지어졌다. 이곳에는 석가모니와 나한들을 모시는 불당인 응진전(應眞殿)이 있다. 이 곳에 효령대군의 초상화도 보존되어 있다. 연주대는 바위 벼랑이 같은 간격을 두고 줄을 그어내린 듯이 침식되어 있으며, 뒤편에는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을 지닌 말바위[馬巖]가 있다.

연주암은 경기 과천시 중앙동 85-1번지에 소재. 본래 관악사(현재는 절 터만 남아 있음)로 1411년(태종 11)에 양녕(양령)대군과 효령대군이 충녕(충령)대군(후,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태종의 뜻을 알고 유랑하다가 그곳에 머물게 되었는데, 왕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괴로워 한 나머지 현재의 위치로 절을 옮겼다고 한다. '연주戀主 련주'란 이들 왕자의 마음을 생각해서 세인들이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또 고려 멸망 후 조선을 반대하며 고려에 충성을 다하던 유신들이 이곳에 모여, 멀리 개경쪽을 바라보며 고려를 그리워하여 '연주'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龍)

▲ 잘못 표기된 관악산 표지석. 이 표지석 뒤가 정상이 아니며 정상이 629m도 아니다.
관악산 정상은 영주대(影炷臺 불꽃바위 632m)다. ⓒ20110512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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