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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 김포 조각공원과 문수산성 유적지

나종화 객원기자 | 2011/06/15 19:27

[문수산] 김포 조각공원과 문수산성 유적지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 등산로 초입에서 만난 일본 작가의 작품, 내 맘대로 붙힌 제목은 꿈꾸는 잠자리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등잔밑이 어둡다

맘만 먹으면 편하게 갈 수 있는 장소일 수록 소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있다.
나 역시 가까운 북한산 보다는 한라산을 더 멀리는 히말리아를 동경하면서 주변의 볼만한 장소중 아직 한번도 못가본 곳들이 많다. 타지 사람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곳인데도 말이다.

이를테면 서울의 안산.인왕산은 여태 미답지다.
꼭 가보고 싶어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세계 문화 유산인 종묘만 해도 그렇다.
엎드리면 코닿을 자리에 있는 상암동 하늘공원 건너편 노을공원도 출퇴근때 먼 발치에서 인사만 나누고 있는 형편이다.
사무실에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겸재 정선의 그림에 등장하는 한강변의 절경 궁산의 소악루도 맘만 먹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는 원당 종마장도 실은 무척 가보고 싶은 곳이다.
김포반도 끝트머리 애기봉 가는길에 있는 김포 조각공원은 조형 미술에 대한 심미안이 없는 탓도 있었지만 아예 무시하고 지나가곤 했다.

가까운 곳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것 같지만실은 어두운 등잔밑처럼 깜깜 무식인 경우가 더 많다.

▲ 조각공원에서 문수산으로 건너가는 구름다리 ⓒ서울포스트

2011년 6월 6일

불현듯 문수산성에 올라 강화를 바라보고 싶었다.
오랜만이라 이곳을 가끔 들르는 에이스님께 가는길과 주차 장소를 묻고 집을 나섰는데 동행한 일초선배가 김포조각공원에서 부터 시작하는 코스를 소개하여 그쪽으로 길을 잡았다. 조각공원도 구경하고, 문수산을 탐방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조각공원에서 문수산성까지 거리는 약 3 km 천천히 걸어도 한시간 반이면 충분한 거리인데다 문수산 서편과 달리 그리 가파르지도 않고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도 충분히 오를 수 있겠다.

▲문수산성에서 바라본 염하(鹽河) ⓒ서울포스트

▲ 이암에 조약돌이 박혀있는걸 보면 강이나 바다가 융기된 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서울포스트

▲ 문수산 정상에는 장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유적지를 복원하느라 정상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정상 조망은 포기해야 한다. ⓒ서울포스트

▲ 복원중인 문수산성 ⓒ서울포스트

문수산의 풍수적인 의미

속리산에서 갈라지고 꺽어져 (回龍) 안성과 이천 수원을 지나 청계산. 수리산. 소래산. 철마산.계양산.가현산을 거쳐 달려온 한남정맥이 김포반도와 강화도 사이를 흐르고 있는 강이면서 바다인 한 염하(鹽河)앞에서 멈칫하여 솟구친 곳이 김포에서 가장 높은 문수산이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즉 산은 물을 넘지 못하지만 잠룡(潛龍)이되어 강화도로 건너간 한남정맥은 예외다. 그래서 강화의 고려산.혈읍산 그리고 우리민족의 영산으로 일컬어지는 마니산의 뿌리는 문수봉이라 할 수 있다.

자맥질 하기전 폐에 숨을 잔뜩 들이쉬는 것 처럼 문수산은 한남정맥이 김포반도의 지기(地氣)를 힘껏 빨아드려 부풀어 오른 형국이니 그 기운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이렇게 기가 응축된 문수산에 올라 강화를 안고 거칠게 돌아가는 염하를 바라보노라면 가슴속에서 호연지기가 샘솟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일까.
프랑스가 조선을 침공한 병인양요 당시 바로 이 문수산에서 조선의 하위직 무관인 한성근이 당대 세계 최 정예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해병대를 기습공격하여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한군대 해병 2 사단이 여기에 둥지를 틀고 있다.

▲ 홍예문 가운데 霓자는 무지개 예 또는 무지개 역으로 읽는다.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 문수산성에서 바라본 김포반도 일대, 경인운하가 개통되면 김포는 섬이나 다름없어진다. 김포도(金浦島) ⓒ서울포스트

▲ 김포 조각공원은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에 조성되어 있어 2 km의 숲길을 산책하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포스트

강화 행궁 도피를 위한 마지막 보루 문수산성

숙종 임금은 여인들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색당파의 와중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우유부단한 왕으로 사극에서 그려지곤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명실공히 조선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지는 영정시대의 기반은 숙종때 다져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경제와 국방에 분야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조선의 임금중 한사람이었다.

숙종은 선대 효종과 달리 정벌이나 공격위주의 국방력이 아니라 방어위주의 국방력을 강화하여 청나라의 견제를 피하는 한편 외침에 대비했다. 그런 정책의 일환으로 축성된 문수산성을 살펴보면 바다에서 침범하는 적을 대비한 성이 아니라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경우 강화도의 행궁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도강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보루로서 요즘의 대전차 방어선같은 기능을 염두에 두고 쌓은것으로 여겨진다.

당대에 축성되었거나 정비된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의 경우를 볼때 아마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같은 수모를 더이상 겪고 싶지 않은 숙종의 지독한 안보 컴플렉스 때문에 탄생한 산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 숲속의 스트리킹!, 나의 심미안은 여기까지다. ㅎ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병인양요와 문수산성

이 성을 축성할 당시만 해도 지구 건너편에 있는 프랑스와 조선은 서로 0.1%의 연관성도 없던 나라였다.
이곳에서 프랑스와 조선이 전쟁을 치룰 꺼라는 것을 뉜들 짐작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점에서 문수산성은 역사의 의외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다.

흥선 대원군은 애초부터 천주학에 대해 그다지 적대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인과 큰 며느리도 천주학쟁이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가 천주학에 대해 극렬한 탄압정책을 편것은 당시 수구세력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입장에서 그들에게 같은 편이라는 증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였을 꺼라고 생각하는데 8000명의 천주교도들을 처형한 것은 흥선대원군의 대표적인 실정중 하나일 것이다.

서구 제국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정신적인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조선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나토가 가다피에게 연일 폭탄을 퍼부어대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조선을 아시아의 미개국으로 여겼던 그들은 군함 몇척 끌고 가서 함포 좀 쏘아대면 번쩍 손을 들꺼라고 여기고 청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를 조선으로 출동시켜 한강 양화나루 지금의 당산철교 부근까지 들어와 "니네들 말 안들으면 한방 먹여줄텨 " 으름짱을 놓는다. 그런데 뭘 믿는 구석이 있는지 조선은 의외로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이에 프랑스는 "이놈들 안되겠다" 싶어서 7척으로 구성된 막강 순양함대에다 최정예 해병대 병력 600명을 싣고 와 강화도를 기습 점령하고 조선을 압박했다. 미국의 핵 항모전단이 네이비씰을 태우고 와서 파푸아뉴기니 같은 나라를 위협하는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러면 깨갱하고 손 들어야 한다. 그런데 조선은 문수산성을 비롯한 통진과 양화진에 막강한 방어진을 구축하고 어디 한번 해보자고 달겨든다.

프랑스군은 " 햐 이놈들 봐라 " 하고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100여명의 정찰병력을 문수산성 부근에 상륙시켜 본격적인 진공 작전을 전개할 태세를 취하던 중 조선의 소대장급의 하위직 무관이 이끄는 소규모 병력에게 매복공격을 당하고 부리나케 퇴각한다. 이때 무려 27명의 사상자를 내게되는데, 천하무적 네이비씰이 낮에는 농부였다가 밤엔 무자헤딘이 되는 탈레반에게 당한격이다.
전라도 속담으로 미꾸라지에 뭣 물린셈이니 프랑스군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는가. 큰 군함들을 염하강에 세워놓고 문수산성을 향해 함포세례로 분풀이를 하여 개미새끼 한마리 살지 못하도록 초토화 시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문수산성에 양헌수를 비롯한 지원 병력이 소리없이 집결하여 전열을 가다듬는다.
기록에 의하면 700여명 쯤의 예비병력으로 총도 제대로 쏘아보지 못한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었다 한다.
다만, 여기에 심산 유곡에서 호랑이를 잡던 포수들도 상당수 자원하였다.

어쨋든 이들은 염하를 건너 강화도로 잠입하는데 성공하고 정족산성에 교두보를 설치한 다음 우습게 보고 덤벼드는 프랑스군에게 인정사정 없이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결국 프랑스군은 미개국 조선군의 불가사의한 괴력에 놀라 줄행랑을 치게되는데 어떤책은 세계 전쟁사에 거의 없는 케이스라고 기술하고 있다.

문수산성은 병인양요에 있어 정족산성 못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곳으로서 원형 복원을 추진중이라 하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 창포는 꽃이 분명 노란색인데... ⓒ서울포스트

김포 국제 조각공원

김포조각공원은 DMZ 지척에 있는 월곳면에 통일을 주제로한 세계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들이 2 km 남짓한 숲길을 따라 전시되어 있다. 조각공원과 평화누리 트래킹 코스를 연계하여 강건너 북한땅이 선명하게 보이는 애기봉까지 전망대까지 걷거나 문수산성 유적지 탐방을 겸한 산행을 할 수 도 있다. (2011/06/06, http://ecotrip.co.kr)

▲ 후박나무로 알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아니네. ⓒ서울포스트

▲ 조각공원 화단에 핀 꽃들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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