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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아름다운 순례길 순교자의 골짜기 '천호성지'

나종화 객원기자 | 2011/09/12 20:51

[탐방] 아름다운 순례길 순교자의 골짜기 '천호성지(天呼聖址)'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 천호성지에서 만난 평화로운 아침! 불가(佛家)의 불립문자[不立文字]가 지상에 발현된듯. ⓒ20110827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1차원 여행
유명한 장소만을 골라 정신없이 헤메면서 카메라의 노예가 되어 인증샷만 하다가 남는 것이라고는 허접한 사진뿐인 여행.
이를테면 이집트 피라미드와 박물관을 묶어서 한나절에 끝내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을때 같은...

2차원 여행
나름 심취하여 그곳의 역사성과 미학을 실컷 음미하는 여행.
불국사에 한나절 머물면서 옛 장인의 손끝에서 빚어진 석물에 서려있는 신라의 향기를 느꼇을 때 같은...

3차원 여행
시공을 초월하여 그 장소나 역사물과 어느시간 그곳에 머물렀던 이들의 삶을 만나는 영적인 울림이 있는 여행.
제주 올레길에서 영혼이 울리는 것을 경험했다는 어떤이의 글을 읽었는데 나는 그 것을 아직 맛보지 못했다.

이것은 다분히 자의적인 분류법으로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같은 경우 게걸스럽게 인증샷을 하고 다니는 천박한 1차원 여행에서 때론 풍경과 유적으로 부터 감동을 받는 2차원 여행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지만 지적인 능력과 영적인 능력을 갖추고 3 차원의 여행이 주는 진미를 맞보고 싶은데 이번 천호성지를 둘러보면서 그 향기 쯤은 느껴보지 않았나 싶다.

▲ 새하얗고 예쁜 뭉게구름이 천호마을에 들어선 우릴 반겨주었다. ⓒ서울포스트

특별한 이슈가 있으면 몰라도 혼자 산에가는 것이 그리 마뜩하지 않다.
이번 주말에 함께 할 동행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연통을 넣었는데 에이스님도, 강쥐님도, 일산친구도, 하다못해 아내까지도 나름 이유가 있어 홀로 해야 하는 외로운 산행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친구 문사장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신세타령을 하는데
"그러면 나랑 같이 가자."

우리나라의 고문서를 번역하고 연구하는 학자들과 이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만든 연구모임인 사단법인 한국고전문화연구원 회원의 날 행사에 가자는 것이다.

그 모임의 초대 이사장을 지낸 문사장이야 당연히 가야 되는 거지만 나는 그리 내키지 않아서 애써 말머리를 돌렸다.
낯을 좀 가리는 편이라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도 부담스럽고 먹물들 행사가 얼마나 재밌겠냐 싶었던 점도 없진 않았다.

그때 마침 문사장이 변교수와 통화를 하더니 대뜸 전화기를 넘겼다.
그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 안오면 너 내 친구도 아니다. 제수씨도 모시고 와라 "
변교수는 고전번역부문의 대가로서 이 연구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대단한 학자인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볼땐 선비라기 보다는 한량에 더 가까운 친구다.

2011년 8월 27일 토요일

가지 않겠다는 아내를 설득해서 집을 나서 행사장이 있는 전북 완주군 비봉면 천호마을에 도착할때까지 이번 여행에 대하여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 전북내륙지역을 두루 돌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순례길 ⓒ서울포스트

아름다운 순례길

제주 올레길 이후로 "길"은 이 시대의 가장 인기있는 트랜드 중 하나다.
숨쉴 겨를 없이 달려온 한국 사람들에게 달팽이 처럼 느리게 걸을 수 있는 Korean style trail에서 만끽하는 평화는 대단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광역자치단체에서 작은 마을까지도 옛 길을 복원하고 있다.

전라북도는 2009년 11월에 전주.완주.익산. 김제 일원 무려 240 km나 되는 옛 길을 복원했는데 그 이름도 아름다운 "아름다운 순례길" 이다.

왜 순례길일까.
예수의 도를 전파하기 위해서 제자들이 걸었던 산티아고 트레일처럼 하늘의 도를 쫓는 수많은 구도자들이 이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저 옛날 고조선의 도인들로부터 시작하여 도선과 견훤이 이 길을 걸었고 혁명의 칼을 품었던 조선의 풍운아 정여립도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길을 걸었다.

하늘의 은총을 극동아시아 작은 나라에 전하려는 소명을 가진 프랑스 신부들도 물건너고 산을 넘어 이길을 통해서 들어왔을 것이며 무수한 천주학쟁이들 또한 그들을 따라 이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동학의 비조 최시형이 녹두장군 전봉준을 만나러 온길도 이길이었으며 시퍼런 결기를 품은 전봉준과 손화중 김개남도 이 길을 걸었고 그들과 함께 하는 수많은 동학쟁이들 또한 혁명의 햇불을 높히 들고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면서 까지 이 길을 걸었다.

하늘로 뜻을 읽은 강증산과 김일부도 천지 개벽의 소식을 도탄에 빠진 민중들에게 전하기 위해 이 길을 걸었고 어느날 홀연히 깨달음을 얻은 소태산도 이글을 걸으면서 수많은 제자를 모았다.

위대한 시인 김지하도 전봉준과 강증산 그리고 김일부가 갔던 길을 되짚으면서 남녁땅 뱃노래를 노래했다. 그래서 이 길은 세계적인 순례길 스페인의 산티아고 트레일보다 훨씬 더 풍성한 역사와 영성을 품고 있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례길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방문한 비봉면 천호 마을은 아름다운 순례길 중 3 구간으로 천호성지를 비롯한 여러 가톨릭 성지와 많은 유적들이 있어 이것을 모두 둘러볼 수 있는 품안길 이라는 성지순례길이 별도로 조성되어 있다.

ⓒ서울포스트
▲ 하늘나라의 호리병 모양? 천호 성지 일대 ⓒ서울포스트

하늘이 뜻이 땅에 이루어진 순교자의 골짜기

호리병 모양의 천호산(天壺山) 깊은 골짜기에 처음에는 수십 나중에는 수백의 도망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중에는 조선의 옷을 걸쳤지만 곱슬머리에 푸른눈의 서양인도 있었다.
그 도망자들은 옷차림은 비록 남루했지만 누구나 할것 없이 선비처럼 행동거지가 단정했으며 먹거리가 부족하여 굶기를 밥먹듯 하였지만 아무도 다투지 않고 내 입에 들어갈 것도 기꺼이 나누었고 수척했지만 여유가 넘쳐흐르는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백정 출신도 장사치 출신도 있었지만 아무도 상스러운 말을 쓰지 않았으며 남녀노소와 반상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였고 힘없는 병자와 노약자를 정성것 보살폈다.

그들이 바로 충청도 서산 등지에서 박해를 피해 비봉면 천호산 골짜기로 숨어들어온 프랑스 신부를 포함한 천주학쟁이들이었다. 언제 관군에 잡혀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운명이었지만 그들이 머무는 동안 천호산 골짜기엔 하늘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끊이지 않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과 다름 없었고 하늘의 성스러운 뜻이 날마다 이 땅에서 이루어졌다.

1866년 전국에서 8천명의 천주교도가 처형당한 병인박해의 광풍도 예외없이 이곳에 불어닥쳤다. 천호산 골짜기에서 천국을 이루고 살던 천주교도들도 굴비두룸처럼 엮여 산 너머 여산원이나 전주감영에 끌려갔는데 삶과 죽음의 경계는 너무나 단순했다. 하느님을 부인하면 살고 하느님을 인정하면 죽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같이 하느님을 인정했다.
한 관리가 그 참혹한 고문중에서도 여유로움과 미소를 잃지 않는 그들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참혹한 죽음의 땅을 천국으로 여기는 저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 순교자들의 유해는 하늘의 뜻에 의해 그들이 천국을 일구었던 이곳 천호산 골짜기로 되돌아 왔다. 그래서 이곳을 천호성지라 부르게 된것이다.

▲ 천호 성지의 아름다운 순례길과 품안길 이정표 ⓒ서울포스트
▲ 천호 마을 입구 ⓒ서울포스트
▲ 천호마을에 있는 호남 교회사 연구소와 고전문화 연구소 분실이 있는 김진소 신부님의 거처 ⓒ서울포스트

어르신 큰 어르신 김진소 신부님

우리는 먼저 이 모임의 좌장이신 김진소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당신이 거처로 삼고 있는 호남교회사 연구소부터 찾았다.

김진소 신부는 한국 교회사 연구의 기틀을 마련한 인문학자로서 특히 호남지역의 교회사 발굴과 연구에 그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와 신의 가호로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질 뻔 했던 천호마을을 비롯한 여러 성지를 발굴하고 순교자들의 행적을 밝히는 한편 그들의 유해를 찾아내어 이곳을 성지화 시키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김진소 신부는 이조말 천주교 박해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번역하기 위해 고려대학교 조광명예 교수와 함께 변주승 교수를 도와 한국고전문화연구소를 탄생시켰다. 그래서 변주승 교수와도 사제지간을 넘어선 부자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몇 년전 김진소 신부님의 출판기념회와 칠순잔치에 초대되었을때 전주에서 한번 뵌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은퇴한 신부님을 스승과 아버지로 여기는 대학교수.사업가. 예술가. 농민등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무수히 많은 제자와 자식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 연세에 대단하신 주량에 또 한번 놀랐다.

서재엔 마침 신부님과 조광 교수님이 함께 계셨다.
큰 절을 올렸어야 하는데 손님도 많고 해서 엉거주춤 하다가 대충 인사를 드리고 마는 무례를 범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학계의 태산백두이신 조광교수님께 직접 뵐 수 있었다는 것이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 스님의 호 천산을 따서 천산제라는 당호를 가진 마을 주민들이 지어준 손님방 ⓒ서울포스트

변주승 교수의 부친은 몇 년전에 별세하신 호남의 대표적인 한학자이신 산암(汕巖) 변시연(邊時淵)선생님이다.
당초 산암 선생님은 아들이 신부님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노구를 이끌고 이곳을 방문해서 이심전심으로 김진소 신부님의 높은 뜻을 헤아리게 되어 신부님께 천산(天山)이라는 호를 선물하셨다고 한다.

ⓒ서울포스트

失之本無 得之本有 잃었다 한들 본래 없었던 것이요. 얻었다한들 본래 있었던 것이다

선(禪)의 종가로 일컬어지는 임제종의 대표적인 텍스트인 벽암록의 한 귀절로 절깐의 편액에서나 볼 수있는 글귀가 김진소 신부님 손님방입구에 걸려있다.

김진소 신부님은 가톨릭 사제라기 보다는 스님에 가깝고 신부님이 계신 이곳 호남 교회사 연구소도 사제관이라기 보다는 절깐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스스로도 일반 스님들이 산중이라면 당신을 들중이라 말한다.

▲ 이건 뭘까. 나중에 신부님께 여쭤볼 일이지만 이웃님들께도 해석을 부탁드리는 바이다. ⓒ서울포스트
▲ 손님으로온 9살 먹은 놈(쬐끄만놈)이 천산제 동자역할을 하고 있는 6개월 된 순둥이(삽쌀개)를 갖잖다는 듯 바라본다. ⓒ서울포스트
▲ 무려 1만권이나 된다는 김진소 신부님의 장서, 호남교회사 연구소와 고전문화연구소 도서관 구실을 하는 곳이다. ⓒ서울포스트

많은 천주학쟁이들이 천호산 기슭에 모여 살면서 골짜기 이곳 저곳에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공소를 마련했다.
도망자 신세에 어찌 번듯한 성당을 건축할 수 있었겠는가.
움막 공소도 있었고, 동굴 공소도 있었다.
그중 비교적 골짜기 아래에 있는 천호 공소만큼은 제법 번듯한 건물이었다고 전한다.
천호공소는 최근에 한옥으로 복원되었고 실제로 미사도 드려지고 있다.

▲ 천호 마을에 있는 한옥 성당인 천호 공소 ⓒ서울포스트
▲ 마치 대갓집 안마당 처럼 여유로운 천호 공소(성당)의 앞마당 ⓒ서울포스트
▲ 한옥 성당 천호 공소의 아름다운 예배당 ⓒ서울포스트

천호공소에 머무는 동안 햇볕이 쨍쨍 내려쪼이는 화창한 하늘에서 소나기가 퍼부었다.
하늘의 은총인냥 여겨져 햇살과 더불어 쏟아지는 소나기내리는 것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서울포스트

일요일 아침 미사를 알리는 아름다운 종소리가 천호산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바로 천호공소의 포탄으로 만든 그 종소리였다.

ⓒ서울포스트

비봉면 사무실에서는 농촌과 인문학의 아름다운 동행 이라는 슬로건의 한국고전문화연구원과 비봉면 평치마을의 협약식 체결이 이루어졌다. 사실 이들은 지난 10여년간 김진소 신부님을 중심으로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던 사이였는데 이 마을이 완주군에서 실시하는 파워빌리지에 선정됨에 따라 공식화 된것이다.

완주군수(좌측 첫째)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고전문화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조광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 좌측 셋째 )와 평리마을 주민 대표가 협약을 체결했고 마을 주민과 더불어 한국고전문화연구원 회원들이 이를 축하해 주었다.

ⓒ서울포스트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가운데 비봉면 사무소 옆에 있는 비봉 갈비탕 마당에서는 마을 주민과 고전문화연구원 회원들이 모여 축하연을 갖고 우의를 돈독히 했다.

한국고전문화연구원은 연구에 종사하는 학자들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후원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업가. 변호사. 의사. 예술가. 사회운동가등 다양한 직종의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국립 창극단의 왕기석 명창도 이 연구원의 임원으로서 회원자격으로 이 행사에 참여했다.

이날 회원들의 애장품 경매 행사가 있었는데 맨 마지막 순서로 왕기석 명창의 소리 경매가 이루어져 명창의 격에 맞는 무대가 갖추어지지 않은 열악한 상태에서 열창을 들려주어 회원들과 주민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왕기석 명창과 딸 그리고 제자는 토마스 쉼터에서 열린 회원간의 뒤풀이에서도 연주아 소리를 선사하여 참석자를 감동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
"와 국악이 이렇게 감동적인줄 몰랐어요" (평소 국악에 관심이 없던 아내)

현재 취약계층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 고전 문화 연구원은 내년에 왕기석 명창과 더불어 " 소리로 여는 세상 "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인문학과 국악의 만남을 시도할 예정이다.

ⓒ서울포스트

행사 말미에 풍등 날리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텔레비젼에서 본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체험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아내와 함께 경건한 마음으로 풍등에 기원을 실어 하늘로 날려보냈다.
수많은 희망과 기원을 담은 풍등들이 하늘높이 날아올라 천공의 별이 되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사람들은 그 빛이 사라질때까지 자리를 떠날줄 몰랐다.

숙소인 토마스 쉼터에서 본격적인 회원들의 뒤풀이가 이어졌다.
알콜 도수가 가장 낮은 모주를 계속 마셨더니 그것도 술이라고 제법 취기가 올라온다.
바람을 쐬려고 밖으로 나와 정원을 거닐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니 비게인 하늘 한켠이 열려 그 틈새로 빛나는 석류알인듯 무수한 별들이 반짝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 토마스 쉼터 정원의 아침 ⓒ서울포스트
▲ 봉선화 꽃에 둘러쌓인 토마스 쉼터의 장독대 ⓒ서울포스트
▲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변주승 교수 내외 ⓒ서울포스트

변주승 교수
친구지만 그를 존경한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자로서 연구에 매진하고 한국 고전문화연구원을 운영하면서 지난 세월을 눈코뜰새 없이 보내면서도 언제나 넘치는 유머로 주변사람들을 편안하고 여유롭게 해주며 엄청난 추진력과 열정으로 한번 시작하면 반드시 결실을 얻어내는 친구 그런 능력이 있었기에 조선 왕조실록 번역 이래로 가장 큰 국학 사업이었던 여지도서 국역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다.

본인과 부인 그리고 아들이 모두 고려대학교 사학과 출신이라는 재미있는 이력을 가졌다.
초등학교 6학년 늦동이 딸까지 그 학교 같은 학과에 입학한다면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주승아 넌 말이여 사업을 했으면 돈 숱해 벌었을 것이다. 교수스타일은 영 아닌것 같어"
"나도 그런 생각 안해본 것은 아닌디, 만약 사업을 했다면 엄청난 사기꾼이 되야불었을 것이다. 히히"

문사장 그리고 변교수와 더불어 순교자들이 잠들어 있는 경건한 골짜기를 향해 가면서 그런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런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누면서 품안골 순례에 나섰다.

▲ 아침햇살에 맑게 빛나는 순교자의 천호산을 바라보며 상쾌한 기분으로 품안길을 걸었다. ⓒ서울포스트
▲ 울창한 숲속에 잠들어 있는 순교자들의 안식처를 보면서 비로소 옷깃을 여민다. ⓒ서울포스트
▲ 중세 수도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천호 피정의 집 아침풍경 ⓒ서울포스트
▲ 마치 봉쇄 수도원처럼 문이 굳게 닫혀있는 피정의 집 사흘간 묵언 수행을 하는 코스도 있다고 한다. ⓒ서울포스트
▲ 사제관 앞에서 만난 아름다운 모자상 ⓒ서울포스트

이 아침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장황한 기록을 남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곳은 한눈에 보아도 아침햇살이 맑고 중세풍의 피정의 집이 주는 분위기 탓도 있었겠지만 순교자들의 안식을 위해 하늘이 예비한 것 처럼 골짜기엔 신성한 기운이 넘쳐 흘렀다.

이곳을 담당하시는 신부님가 사제관에서 차를 마실때도 그런 느낌은 계속되었다.

이 땅 자체가 그런 기운을 품고 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하늘의 뜻이 그런 기운으로 넘치는 이 땅으로 순교자들을 이끌어 살아서 천국을 만나게 하고 십자가를 벗고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였으리라.

▲ 서로 막역한 친구같은 느낌이 드는 변교수와 신부님 ⓒ서울포스트

나는 기독교인인데도 사실 기독교의 건축과 신앙심이 투영된 문학작품이나 예술품들에 대해서 만큼은 오히려 불교에 대해서 보다 훨씬 문외한이다.

기독교인으로서 경건함을 실천하는데 부족함이 많지만 가슴속에 신앙심만큼은 팔팔하게 살아있다. 그래서 내 신앙심을 자극하는 어떤 아이콘을 만났을때마다 큰 감동을 받는다.

이를테면 모자상. 뛰어난 균형미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성당이나 수도원같은 건축물들을 보았을 때, 헨델의 메시아같은 웅장한 성가곡을 들었을때 그렇다. 이 모든 것들이 하늘의 도를 따르는 간절한 마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최근에 건축된 부활성당의 외관을 보고 예배당 내부를 둘러보면서 성당 지하의 죽은자들의 안식처이자 산자들의 기도공간인 봉안 경당에 머물면서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정원을 둘러보면서 오랜만에 영혼의 울림을 체험했다.
일행이 없었다면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 노아의 방주를 연상하게 하는 부할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De longe Dominus apparuit mihi: “In caritate perpetua dilexi te; ideo attraxi te in misericordia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예레미아 31: 3]
표석에 그렇게 씌어져 있었다.

▲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배당 ⓒ서울포스트
▲ 봉안 경당으로 ⓒ서울포스트
▲ 마음을 울리는 어느 인디안의 시 ⓒ서울포스트
▲ 봉안 경당의 기도실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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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은 외부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보존 유물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수백점도 넘는 부활성당의 보물들이었다.
박물관에 전시하여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신부님께서 들고 있는 유물은 700년 전에 만들어진 모자상이다.

ⓒ서울포스트

한참 동안 먹먹했다.
너무도 처연한 어머니의 슬픔과 사랑앞에서...

문득 그 옛날 이곳 천호 골짜기에서 스러져간 영혼들 왜놈들에게 살육당한 동학도들 동족 상잔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임을 당한 지리산 농민군과 군경들 스러져간 광주의 넋들을 생각했다.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이번 천호성지 순례여행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2차원에서 3 차원을 넘나들었던 여행이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순례길에서 순교자의 골짜기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귀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환대해주신 김진소 신부님과 조광 교수님을 비롯한 한국고전문화연구회 회원들과 완주군 비봉면 평치마을과 천호마을 주민들 그리고 천호공소의 수녀님, 토마스 쉼터의 신부님, 부활성당의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 귀한 자리에 기꺼히 초대해준 내 친구 문사장과 변교수에게도...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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