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울창한 숲과 조선 역사의 흔적 '배봉산(拜峰山)'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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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봉산과 배봉초등학교. 초등테니스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테니스 강교. 인근 휘경여중,휘경여고와 함께 배봉산을 뒤에 두고 중랑천과 건너 용마산(아차산 용마봉)을 바라보고 있는 터다. ⓒ20110910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배봉산(拜峰山 107m,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은 산이라기보다 언덕에 가깝다고 말할 정도로 야트막한 야산이다. 소나무가 별로 없고 대신 참나무,아카시아,물개금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도봉산, 예봉산 과 함께 앞자가 길게 발음되는 산이름이다.(도:봉산, 예:봉산, 배:봉산)
배봉(拜峰)의 유래는 봉우리가 도성(왕궁)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형상 이라는 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영조의 아들)가 봉분없이 묻힌 곳을 향해 날마다 배례했다는 설, 이곳에 왕실의 묘소인 영우원과 휘경원이 있어 나그네들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설, 배봉산 앞뜰의 동적전에서 왕이 친히 농사를 지으며 하늘에 풍년을 기원한 선농제와 관련 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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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봉산은 역사적으로 궁의 관심이 많은 산이기에 숲이 비교적 잘 보존되었을지 싶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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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자를 짓기 위해 잡은 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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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에도 나온 정조의 효심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서울포스트 |
영우원(永祐園)과 융릉(隆陵)
1968년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29-1번지 서울위생병원 뒤산에서 천릉문(遷陵文)이 발견되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봉분없이 여기에 조성했던 것.
조선 제22대 왕 정조는 뒤주에 갇혀 비참하게 죽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였다. 그는 1776년 즉위하자 바로 양주 배봉산 아래 있는 사도세자의 묘 수은묘(垂恩墓)의 이름과 그에 대한 존호 사도(思悼)를 각각 영우원(永祐園)과 장헌세자(莊獻世子)로 고쳤다. 다시 13년 후인 1789년(정조 13) 8월 영우원을 현륭원(顯隆園)으로 개칭, 그해 10월 현릉원을 현재의 화성군에 있는 화산(花山)으로 옮기면서 능을 왕릉의 규모로 조영했다.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1-1번지에 있는 융릉은 1899년 11월 장종(莊宗)으로 추존되고 이때 융릉(隆陵)이라는 능호를 받았다. 그해 12월에는 다시 장종에서 장조(葬祖)로 묘호가 바뀌었으며 장조(사도세자)와 비 헌경왕후 홍씨를 합장한 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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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경원(徽慶園)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綏嬪朴氏,순조의 생모)의 묘.
사적 제360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다.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시 배봉산(拜峰山 : 현재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산7∼8번지 일대, 휘경동 286-66) 아래에 있었으나 뒤에 세 차례나 이장하였다.
수빈 박씨는 1770년(영조 46)에 태어나 1787년(정조 11) 후궁 간택에 일등으로 뽑혀 수빈에 봉해지고 가순궁(嘉順宮)이라는 궁호를 받았다. 정조와의 사이에 순조와 숙선옹주(淑善翁主)를 두었고, 1822년(순조 22) 창덕궁 보경당(寶慶堂)에서 죽었다.
이에 현목(顯穆)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묘호(廟號)를 '휘경'이라 정한 뒤, 상지원(相地員)을 시켜 당시 경기도 양주군 배봉산 아래에 묘역을 정하고, 1823년 2월 27일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그 뒤 1855년(철종 6) 인릉(仁陵 : 순조와 비 순원왕후의 능)의 천장지(遷葬地)를 구하면서 휘경원도 천장하기로 하였다.
이 해 10월 6일 수빈 박씨의 묘소를 양주 순강원(順康園 :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의 묘) 우강(右岡)으로 옮겼다가 1863년 풍수지리상 부적당하다고 해 다시 양주의 달마동(達摩洞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동)으로 옮겨 예장하였다. 이어 또다시 1949년 7월 6일 서삼릉(西三陵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이 있는 경내로 이장하였다.
그런데 1907년에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慶嬪金氏)가 죽자 그 묘소를 수빈 박씨의 묘소가 있는 휘경원 경내 서쪽 기슭에 정한 뒤 산역(山役)을 시작해 장례를 치렀다. 여기에서 묘소의 명칭도 수빈 박씨의 원호(園號) 그대로 휘경원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현재 휘경동이 유래했다.
이 밖에도 배봉산토루지(동대문구 휘경동 산6-77), 경성공립농업학교(동대문구 전농동 90, 현 서울시립대학교) 등이 위치하고 있는 우리나라 근현대 문화유적의 보고(寶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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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봉산은 역사적으로 궁의 관심이 많은 산이기에 숲이 비교적 잘 보존되었을지 싶다. 생업관련으로 10여일 배봉산을 오가며 사진도 틈틈이 찍어 두었다. 배드민턴 동호회원들은 작년 태풍 곤파스 에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숲 1/3은 훼손되었단다. 아직도 넘어진 나무들이 많고 또 근래는 참나무잎마름병으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매일 기계톱에 잘려 나가며 방역중이다.
그러면서도 배봉산에서는 북한산 등 인근 산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 견해로는 잡목 제거와 가지치기로 남산이나 우리의 명산 북한산이 뚜렷이 조망되는 것도 매우 좋을듯하다. 이는 숲을 있는 그대로 방치하는 것보다 자연을 보다 근사하게 가꾸는 차원이다. 운동기구만 많은 공원이 아닌 서울을 구경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남산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을 두고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말을 할 것이다.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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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봉산 제일 명당에 자리한 배드민턴장을 비롯한 운동터과 약수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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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나무 거목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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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카시아 거목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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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이 넘었을 아카시아 나무가 쓰러져 있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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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물개금나무(?)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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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 사이로 보이는 용마산(아차산 용마봉)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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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 사이로 보이는 남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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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까스로 당겨 잡은 북한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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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육서울병원(위생병원) 공유지에 있는 참나무 숲속 '기도의 동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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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내 이승만 대통령이 식수한 단풍나무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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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내 참나무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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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내 등나무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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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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