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나들이] 법정스님이 머물던 '길상사'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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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스님이 머물던 '길상사' ⓒ20110925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
쑥대머리
중년 여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마당 건너편에 있는 별채를 향해 치마자락을 휘날리며 앞장서 걸었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곳은 나처럼 한둘이 찾아오는 단촐한 손님을 받는 용도인 듯 기방치고는 아주 작은 방이었는데 수묵화가 그려진 병풍이 한쪽 벽을 꽉 채우고 유난히 붉은 옻칠을한 텅빈 교자상이 주인인냥 방 한가운데를 떡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석에 놓여진 북과 장고가 홀로 앉아있는 객을 찬찬히 쳐다보고 있어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공간에 적막감까지 가득채워져 시간이 멈춘듯 답답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런방에 객을 덩그러니 놓고 나간 중년 여인이 한 아줌마와 함께 들어와 열심히 상차림을 했다.
어차피 혼자 먹을 음식인데 굳이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며 흥미롭게 바라보데 여인이 갑자기 일손을 멈추고 호기심을 주체 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던지며 물었다.
" 참말로 여가 뭣허는 집인지 알고나 왔오? "
그 질문은 이 집 대문에 들어섰을때 이미 받았던 터였다.
그땐 술한잔 하고 싶어서 왔다고 간단하게 얼버무렸는데 좀더 자세한 설명을 해줘야 그녀의 궁금증이 풀릴 것 같아서 그녀가 따라준 맥주를 단번에 들이킨 다음
실은 외항선을 타다가 휴가를 받아 귀국했는데 보름후에 다시 바다로 나가야 할것 같아서 내친김에 여행을 하던중 이집엔 아직 기방의 전통도 살아있고 음식맛도 좋고 무엇보다 쑥대머리 잘하는 소리꾼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여인은 다소 과장된 표정과 몸짓을 하면서 인사치례를 하였다.
" 워매 그라요잉~ 대단한 풍류남이 오셨구만이라우 "
" 근디 으쩌까잉 그 소리꾼은 불러야 오는디 지금 연락해도 시간이 쫌 걸릴텐디.
말동무라도 하시게 이쁜 아이하나 들여보낼까요."
그것도 괜찮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짐짓 점잖을 빼면서 거절했다.
" 뭐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요. 술한잔 하면서 기다리지요. "
이집 주인인 중년 여인과 마담이라는 삼십대의 여인이 들낙거리며 음식도 챙기고 대작을 해주어 많이 무료하지는 않았지만 한 시간이 훨씬 넘도록 그 소리꾼이라는 여자는 기척이 없었다.
" 저 ~ 근디 거기 아직 안와요 ? "
" 아따 성미도 무쟈게 급허시구만이라우.
오늘은 우리집에 일이 없어서 준비도 안했는디. 그쪽이 부르는 바람에 머리도 허고 옷도 입고 해서 늦는다요. 쪼끔만 기다리시요. "
그 후로도 한참 있다가 문 밖에 작은 술렁거림이 있었다.
순간 왔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밖을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중년 여인과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필시 그 소리꾼 여자인듯 싶었다.
" 아따 아짐 나 안해. 우쯔고 남자 혼자 있는 방엘 들어가냐고 글고 한 사람 앞에서 소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얼척없것오. "
" 너 볼라고 서울서 여까징 내려와부렀다고 안 허냐.
그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얼굴이라도 한번 비춰줘라"
미닫이 문이 열리고 중년여인이 먼저 들어오는데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리고 그 소리꾼 여자가 어두운 표정을 하고 뒤따라 들어와 엉거주춤 서 있었다.
나도 함께 일어서서 가볍게 목례를 했지만 그녀는 아예 눈조차 맞추려 들지 않았다.
사장이 강권하다시피 하여 마지 못해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그녀는 한일자로 입을 다문채 병풍속에 있는 먼산만 바라보았다.
소리꾼을 다둑거리던 여인이 " 아이고 나는 모르것다. 알아서 해라." 하면서 방에서 나갔다.
당연히 그녀도 따라 나갈 줄로 알았는데 미동도 하지 않고 그자세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방안엔 혼자 있을때 보다 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내가 먼저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때 신음을 하듯 " 아이 내참" 이라는 말이 신음처럼 새어나왔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물었다. " 북이나 잡을줄 아시요? "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있다가 도리질을 쳤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쪽진 머리에 이목구비가 가즈런했다.
그리고 얼굴빛이 약간 거무잡잡해서 서부영화에 나오는 강인한 인디언 여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북을 끌어다가 치마폭에 올려놓고 북채를 한참동안 만지작 거리더니 깊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다시 북을 물렸다.
순간 괜한 객기를 부려서 여기까지 찾아와 그녀를 저렇게까지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무척 미안하다는 생각과 함께 후회가 밀려들어 어차피 산통은 깨진거고 이 사태를 깔끔하게 마무리 해야겠다고 맘먹었다.
" 그 쪽 소리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내가 그쪽 입장을 많이 곤란하게 한것 같네요.
미안헙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
내가 생각해도 말끝이 떨린것 같았다.
그 말을 들은 그녀가 의외로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었다.
" 아니여요. 내가 더 미안허지요. 나도 이런 일은 첨이라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것어요.
어쨋든 제 소리를 들으실려고 멀리서 오셨다 허니 고맙지요. "
순간 일말의 희망이 머리속의 혼돈을 뚫고 꽃처럼 솟아났다.
" 그러면 말입니다. 이럭게 허시죠.
소리는 안들려주셔도 상관 없으니 부담갖지 마시고요. 거기도 여기가 객지라고 들었는디 객지까지 찾아온 친구라고 생각하시고 편안 마음으로 여기 있는 맥주나 한잔 하고 일어서면 않되것어요.
그냥 갈려고 하니 마음이 참 그러네요."
말이 막힘없이 술술 흘러 나오는 것을 보니 뭔가 잘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녀의 표정이 많이 누구러진것만은 분명했고 내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근디 그쪽이 나보다 더 어린것 같은디 ... 나 나이좀 먹었거든요."
그리고 말투엔 장난기 까지 섞여 있었다.
이때다 싶어서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따져보니 역시나 그녀가 두살 위였다.
"객지 벗 십년 이라고 그냥 친구 헙시다."
그녀는 대학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대생같은 모습으로 깔깔거리며 웃더니 " 까짓것 친구하지 머"
맥주를 두어잔씩 나누다 보니 처음에 기절할 것 같은 어색함이 언제였는가 싶을 정도로 분위기는 금새 쾌활해졌다.
내가 바다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와 먼 나라 이야기를 들려줄땐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빤히 쳐다보면서 얘기속으로 빨려들어갔고
그녀는 몇 차레나 박장대소 할 정도로 소리꾼된 내력을 들려주었다.
참으로 예인으로서 끼가 철철 넘치는 친구였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이때부터 라디오에서 민요나 노래가락이 나오면 그렇게 좋더란다. 그래서 초등학교때부터 본격적으로 소리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소리 신동이라는 소리도 듣고 상도 많이 탓단다.
일년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이 고장에 자기가 배우고 싶어하는 대목에 있어 우리나라에서 최고 기량을 자랑하는 소리선생이 이고장에 계셔서 내려와 있는 중인데 이집에서 가끔 불러주어 소리품을 팔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소리께나 아는 이고장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하면서 담력까지 기르고 있는 중이니 일거 양득이라 했다.
불러주는 손님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고장의 유지 어른들이나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고 나처럼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비슷한 또래의 젊은 놈이 그것도 별채 골방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었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대책이 서지 않더라는 것이다.
나는 북과 북채를 글미에게 안겨주면서
" 아따 그러면 인자 한자락 뽑아보시요. "
" 술마시고는 소리해본 적이 없는데 으쩌까이 ~ "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몇 차레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잠시후 얼굴에 불그스레한 술기운이 보이긴 했어도 북채를 쥔 그녀는 완전히 딴 사람으로 바뀌어 얼핏 신이 내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이윽고 그녀의 목청에서 구성진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방은 때로 바다가 되고 때론 산이 되고 폭포수가 되었다.
바다위에선 바람과 파도가 희롱하는 듯 산위에선 천둥과 번개가 일어서는 듯 나는 그 넘실대는 파도와 천둥과 번개가 내리꽃이는 바다위의 일엽편주인듯 그녀의 잦아질듯 솟구치고 느리다가 빨라지는 소리위에서 출렁거렸다.
" 쑥대 머리이~~ 귀신형용
적막 옥방의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 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구운 보고지고~
오리정 전별 후로 일장수서를 내가 못 봤으니
부모 봉양 글 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는가? "
휴~~ 여기까지만 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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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바람이 된다. 풍류
자유는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고상한 욕망이다.
풍류(風流)는 그것을 표현하는 가장 멋드러진 말이다.
매인데 없이 바람처럼 흐르고 구름처럼 떠도는 운수납자(雲水衲子)로서의 풍류를 누리기 위해 스님이나 도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명산을 찾아 맑은 바람을 만나 세속의 홍진을 비우는 것 정도는 우리같은 범인들도 가능하다 .
또한 정갈한 기방에서 어느 가인의 가슴 저미는 쑥대머리를 들으며 한 잔술로 마른 마음을 적시던 술자리 또한 옛 사람들은 풍류라 했다.
그런 그런 의미에서 북장구 소리 울려 퍼졌던 기방 대원각이나 목탁소리. 범종소리 울려퍼지는 길상사의 공통점을 굳이 찾으라면 그것은 풍류다.
그래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가인 김영환님이 대원각을 우리시대에서 가장 존경받는 문인이었던 법정스님에게 떠 맡긴 것은 이곳이 영원한 풍류공간으로 남아있기를 소망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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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로 이끈 포토 명상집 [ 이토록 행복한 하루 ]
지난주 일요일날 누님댁에 놀러갔더니 서가에 꽂혀있는 [이토록 행복한 하루]라는 길상사의 4 계를 담은 사진집이 눈에 띄었다. 아내와 누님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나는 그 책을 보았다.
이책은 동아일보 이종승 사진기자가 길상사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렸는데 사진 한장 한장에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많은 이야기가 숨쉬고 있는 그곳 길상사를 직접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항암치료때문에 불편하시지만 불교에 귀의하여 마음의 평화를 쫓는 누님도 의기투합하여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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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얼굴의 관세음보살상
길상사 마당앞에 단아하게 서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보니 비로소 법정스님이 다녀갔다는 것이 실감나서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만약 1000년후 이 시대의 조각품 중 최고의 걸작을 꼽으라면 틀림없이 화강암을 쪼아서 생명을 드러낸 길상사 관세음보살상일 것이다.
탁월한 미학적 안목을 가진 법정스님의 영감과
최종태 작가의 재능이 어울어져 돌속에 잠자고 있던 생명이 살아난 것이니 최고의 걸작이 아니겠는가.
저 관세음보살상에서 나는 우리나라 처녀의 원형 순이를 보았다.
대원각 기생 월향이로 살게된 순이가 햇살 맑은 어느 가을날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 앉아 골똘히 고향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관세음보살이나 마리아보다 그 순이가 훨씬 더 성스럽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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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과 절제의 문화공간이었던 기방
혹자는 기방을 요즘 룸싸롱같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상은 유사하지만 그 본질이 갖고 있는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즉 문화가 있고 없음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흥청거리는 술판, 질펀한 음주가무에 무슨놈의 도가 있고 장안의 온갖 파락호와 장삼이사가 출입했던 이곳에 품격이 어디있냐고 반문 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질펀 했어도 거기엔 요즘 예배당이나 절깐보다 엄격한 도가 있었고 제아무리 파락호라도 여기선 행동거지를 삼가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한국 전통 기방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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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를 둘러보다가 갑자기 김영환 선생이 법정께 이집을 드린것이 옳은 판단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여긴 법정의 향기가 풍길 수 없고 법정을 닮을 수 도 없는 집이기 때문이다.
법정께선 단 하루도 이집에서 묵지 않으셨다.
차라리 김영환 당신 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가인에게 이곳을 맡겨 온전한 기방의 품격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였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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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멸종된 한국 호랑이처럼 기방은 이땅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혹시나 싶어 지방에 출장갈 일 있으면 혹시나 싶어 물어보지만 가장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전라도쪽에서도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 80년대 이후에 식당으로 탈바꿈 했거나 그 너른 고대광실과 정원들이 죄다 고층빌딩이나 아파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생( 게이샤)문화를 전통문화의 아이콘으로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강남에서 몇집이 흉내는 내고 있지만 단언컨데 거긴 기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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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도심 한 복판에서 이런 평화로운 공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어디냐.
그 평화를 이곳을 찾는 모든이에게 보시한 김영환 선생은 그 어떤 예술가보다 더 예인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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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진 골짝 어느 별채에서 그녀의 구성진 쑥대머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아 걸음을 멈추고 귀기울였던 길상사 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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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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