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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it] 그때 그 시절 코미디언이 그립다

구기차 논설가 | 2011/12/04 22:45

[Post it] 그때 그 시절 코미디언이 그립다
-SPn 서울포스트, 구기차 논설가


삭막한 사회와 고달픈 서민들에게 ‘행복전도사’ 역할
웃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며
코미디공부 많이 하고 떠난다며


사람은 생각하고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의 뇌는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로 웃음을 찾았다. 하여 생각과 일 이외에 웃음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까. 그래서 “웃음은 봄비와도 같다. 이것이 없었던들 인생은 사막이 되어버렸을 것”이라고 이희승 선생이 지적한바와 같이 웃음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생명에너지라 할 수 있다.

ⓒ자료사진
안방극장(TV)에서 1980년대 '네로25시'부터 2000년대 '사마귀유치원'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풍자(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적인 것을 빗대어 비웃는 것), 즉 사회의 현실을 담은 시사풍자개그가 그것이다.

46세의 젊은 나이에 돌연 세상을 하직한 개그맨 김형곤씨는 시사풍자 코미디의 새 장을 열었다. ‘잘돼야 될 텐데’ ‘잘될 턱이 있나’라는 유행어를 남겼고 ‘도둑놈은 못 잡아도 시위대는 잡아야 한다’고 웃겼고, KBS ‘유머1번지’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은 암울하고 답답했던 군사정권 시절 그의 시사풍자는 대중들에게 재미와 웃음과 엔도르핀을 자아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세상에 웃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돈을 벌려고 애쓰는 것도 결국 웃고 살기 위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돈 버는 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웃지 못하고 산다.’며 웃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올리자마자 돌연히 그는 저 멀리 떠났다.

동료들에겐 의리를 아는 다정한 친구인가 하면 정작 본인은 울면서 못생겨서 죄송하다며 남을 웃겼던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에피소드가 있다.

발기(勃起)와 발기(發起)에 관련된 이야기로 전자는 ‘갑자기 불끈 일어남’을, 후자는 ‘앞장서서 새로운 일을 꾸며 일으킴’을 이른다. 영어로 하면 전자는 erection이고, 후자는 promotion이다.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밀어주어 국회의원이 된 정주일(코미디언 이주일) 의원은 정계입문 직후 “발기대회(發起大會)를 한다기에 발기(勃起) 좀 해볼까 하고 가봤더니 정주영, 김동길 같이 발기(勃起)와 관계없어 보이는 사람들만 앉아 있더라”며 웃겼다.

“저는 정주영 회장이 만든 국민당에 들어가 경기도 구리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처음에는 당선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가는 곳마다 저에게 박수를 보내는 분들을 보면서 자신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저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많은 정치인들은 저를 코미디언으로만 대했습니다. 그래서 정책을 연구하기보다 상가 집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도 정치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4년 동안의 국회의원 생활은 저에게 엄청난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국회의원 출마를 포기했습니다. ‘4년 동안 코미디 잘 배우고 간다’는 말도 그래서 했던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날마다 편을 갈라 싸움질만 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떠난 지 5년이 다 되지만 아직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이주일씨는 적극적으로 의정활동을 했지만 자신을 여전히 코미디언으로만 바라보는 지역구민과 동료 의원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아 정치의 쓴맛을 톡톡히 보며 연예인으로서 정치 적응에 어려움을 느낀 그는 4년간의 의정활동을 끝내고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국의 보브호프가 되겠다던 ‘코미디 황제’ 이주일씨는 폐암과 투병하다 ‘금연하세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과거에는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등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거나 풍자하는 개그맨이 많았다. 당시 노태우대선후보가 공약으로 “나 이 사람은 코미디 소재로 다뤄도 좋습니다”라고 말해 방송에 시사풍자 개그가 나올 수 있었지만 지금은 ‘눈이 작아 눈을 크게 뜨는 것을 포기하고 웃는 것을 선택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개그 소재로 활용하는 개그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9만 원이 전 재산’이라고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의 목소리를 흉내 낸 개그맨을 초대해 술을 대접했다고 한다. 즉 슬리퍼를 신고 뛰쳐나와 이 개그맨을 맞았고 안방에서 자신이 즐겨먹는 음식을 내놓는 등 극진한 대접을 해 줬다. 평상시 과묵하고 잘 웃지 않던 박정희 전 대통령도 배삼용씨 쇼를 보면 웃었다고 한다.

최근 ‘사마귀유치원’에서 개그맨 최효종이 국회의원을 풍자했다가 무소속의 강용석 의원으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했다가 취하함으로써 되래 국민들의 웃음거리를 샀고 반면 최효종은 일약스타덤에 올랐다.

그러자 코미디언 김미화씨도 사실 정치 풍자 코미디는 윗선에서 싫어해 다들 꺼리는 편인데 감히 최효종이가 그걸 도전했다고 놀라워 하며 어찌 보면 강용석 의원이 그 코너를 지켜준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번에 큰 관심을 받은 터라 아무리 싫어도 윗선에서 쉽게 그 코너를 폐지하지 못할 테니까, 오히려 이번 일로 인해 정치 코미디 붐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사실 정치 코미디는 정권에 화가 나서 비판하고 싶은 마음을 개그맨들이 다 풀어주니 오히려 고마운 일 아닌가?. 즉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정권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여 오늘날 ‘안철수 현상’같은 올 것이 오고야 말았는지도 모른다.

그때 그 시절 고달픈 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삶의 용기를 심어주었던 코미디언 서영춘, 구봉서, 곽규석, 쟈니 윤, 남보원, 쓰리보이, 남성남, 남철, 배삼용, 이주일, 이기동, 김형곤 같은 코미디언이 다시 나타나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행복전도사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아,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구기차 논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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