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덕유산] 설산기행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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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유산 - 눈폭풍을 헤집고 햇살이 번개처럼 꽂히던 찰라였다. ⓒ20091219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
2009년 12월 19일
안성에서 시작된 여명이 청원쯤에서 맑은 햇살로 터져 길조를 예고했다.
그러나 막상 무주에 이르자 바람에 실린 눈발이 중 늙은이의 머리카락 마냥 간간히 흩날릴 뿐 덕유산 눈 구경은 애저녁에 물건너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갔더니 눈이 있었을뿐 언제 눈을 만나자고 산으로 갔던가.
그리 위안삼고 무주리조트에 도착했는데 우와! 여긴 딴 세상 설국(雪國)이 펼쳐져 있었다.
곤도라가 쉴새없이 철천봉에다 쏟아놓는 스키족 사진족 관광객 등산객들의 달뜬 표정은 제 아무리 북태평양 동장군이라도 어쩌지 못하는것 같다.
하늘도 산도 나무도 온통 눈천지 철천봉!
우린 설산(雪山)에 들어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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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가는길 |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가는길은 눈에 취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산등성이 바람길을 타고 가려는 등산객 때를 놓칠새라 설산을 담으려는 사진가들 멀리서 눈 구경온 관광객들이었다.
대체 무엇이 이 대단한 인파를 체감온도 20도의 지독한 한기속 해발 1600미터로 불러 드리는가.
눈(雪)이다.
추위에 울다가 눈을 보고 웃는 한 관광객의 희안한 표정을 보았다.
눈엔 그런
마약성분이 있다.
향적봉에 살아 움직이는 건 오직 사람뿐이다.
군상들의 웅성거림은 결코 설산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버리고 비움이 만든 아름다움의 극치인가.
몸을 곧추세우고 눈과 바람을 묵묵히 받아드리는 나무들은 눈이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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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적봉에서 대피소 가는길 |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향적봉에 오래 머물러있기엔 갖고 있는것들땜에 고통스러웠다.
설산에선 죄다 비우고 버려야 바람과 함께 머물 수 있는갑다.
그런데 왜 한사코 생명이 정지된 설산(雪山)에 몸을 내 던지는가.
희말리아.알프스.킬리만자로.매킨리. 겨울 백두산과 그리고 이곳 덕유산에...
신을 만나기 위해서? 신은 난방이 잘된 따뜻한 예배당에 이미 계시지 않던가.
生命의 壁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산듯 죽은듯 분간조차 안되는 그 중음(中陰)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별 생각을 다한거다.
눈 때문에 머리속이 하얗게 되서 그랬지 싶다.
그런 용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Brain brind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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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적봉아래 대피소 |
어느 해 초여름이었을 거다.
설천봉 팔각정 앞에서 할머니 한분이 간간히 찾아오는 우리같은 관광객을 상대로 복분자술을 팔고 계셨다.
팔다남은 소주 네홉들이 10병 남짓을 죄다 사서 향적봉에올라 셋이서 그걸 나누어 마시고 저 대피소까지 내려갔던 기억이 선연하다.
그걸 죄다 토하고 난 다음 입안에 남아있던 불쾌한 단내의 기억도 함께 떠 올랐다.
설산에 올라서도 속세의 부질없는것들을 고스란히 안고 이 강추위에 떨고 있는 자신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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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목 |
눈과 바람 그리고 추위 때문에 대피소 취사실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먹는 즐거움은 포기해야만 했지만 싸하게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에 불을 붙히는 고량주라도 있어서 여한은 없었다.
대피소를 떠나 동업령으로 가는길 여기서부터는 첫길이다.
첫길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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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목에 상고대 그 위에 핀 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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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주목 뒷편에 나니아연대기의 설국행 통로가 있지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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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 이백년? 아니 천년!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한 아름다운 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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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목! 그 천년의 숨소리를 먹고 자란 가지들이 산호초처럼 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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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야 |
리프트나 곤도라를 타고 향적봉에 올라 동업령방향으로 내려가는 덕유산 산행은 등산(登山)이 아니라 하산(下山)인 셈으로 거저 먹기다.
그러나 이따금 맞파람에 싸대기를 맞고 뺨이 얼얼해지는 오늘은 아닌것 같다.
개활지였다.
세찬 바람에 머리가 멍했다.
바람을 안고 걷느라 취객마냥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담고싶은데 두터운 장갑때문에 셔터가 잘 눌러지지 않아 장갑을 벗었더니 손 마디가 떨어져 나갈것 같다. 블로그 본능 때문에? 아니.
여기가 좋다.
너무 좋다.
거친 칼바람이 죽일듯이 달겨드는 이런 산록의 개활지나 말갈귀를 휘날리며 야생마처럼 달려오는 태풍경보가 내린 동해바다 단애위에 설땐 가슴속에 갖혀있던 늑대 한마리 뛰쳐나와 포효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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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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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 |
미쳣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려가기 싫었다.
이미 가슴을 비운 이상 그 늑대와 함께 여기 바위위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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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업령으로 향하는 덕유산 카라반 |
그러나 자꾸 점점 멀어지는 일행들을 뒤쫓아가야 한다고 또 다른 의식이 채근한다.
체념하고 언덕을 달려 내려왔다.
멈칫 뒤 돌아보니 검은 바위위에선 흰 늑대가 외친다.
독허게 살어라 그리고 설원의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가거라
가거라
너의 그 시원을 향해 떠나 가거라.
그놈은 절대 놓아주고 싶지 않았던 마지막 한마리의 청춘이었다.
뒤쳐진 일행들과 거리를 좁히려 잰걸음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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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업령 가는길에서 살짝 열린 하늘을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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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아래가 동업령. 온산에 설화 .... 봄이오면 저산에 진달래도 피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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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업령에서 안성가는길 |
설산에서 내려서야 했다.
그래서 등업령에서 안성으로 빠졌다.
속세의 인연들이 피안(彼岸)에 머물고 있던 우리를 끌어내렸던 것이다.
맞다. 우린 잠시 설산을 건너왔을 따름이지.
언제 시간의 굴레를 떨쳐내기나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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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으로 내려가는 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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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유는 가장 아름다운 설화로 산을 떠나는 나그네를 배웅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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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
설산을 내려와 뉘라도 걸 을 수 있는 편한 숲길에서 걸음을 멈칫했다.
길 끝즈음까지 마중나온 세속의 번뇌가 늑대가 떠나 텅빈 자리를 잽싸게 차고 앉는다.
일년에 한번뿐인 딸내미 연주회를 나몰라라 하고 산으로 떠난 남편이라는 작자에게 쏟아대는 남성 호르몬이 펄펄 넘치는 마눌에게 원성들을 일 부터 시작하여 금새 머리속에 한 가득 차오른다.
그렇게 돌아왔다. 세상속으로...
꿈이었던가?
저 피안의 덕유설산이...
안녕
덕유산.
그리고 설원을 건너 시원(時原)으로 떠난 청춘
너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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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포스트 |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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