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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옥류에서 귀를 씻고 은류에서 마음을 씻다

나종화 객원기자 | 2012/05/14 16:41

[수락산] 옥류에서 귀를 씻고 은류에서 마음을 씻다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 수락산 청학동 ⓒ20120502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신선의 골짜기 수락산 청학동

수락산의 동쪽 청학동 계곡은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마당바위가 있는 초입부터 옥류폭포까지를 음식점들이 점령하고 그 본연의 경관을 훼손하고 있어 이곳을 지날때 마다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막 녹음이 시작되어 부드러운 연두빛을 자아내는 숲이 우거진 사이로 흐르는 계류를 따라 상류로 올라간다.
마치 심산유곡에 들어선 듯 골짜기엔 신선한 바람이 불고 물가엔 복숭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여기가 바로 신선의 세계가 아닌가 싶다.

요란한 물소리를 쫓아 있는 듯 없는 듯한 희미한 자취가 있는 오솔길을 따라가면 한폭 두폭 세폭 새하얀 비단폭을 걸쳐 놓은 듯한 은류폭포다.

폭포 정수리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좌정하니 세상사 온갖 근심걱정 사라지고 편편한 바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어 흰 구름 흘러가는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신선이 뭐 별거있냐. 내가 바로 신선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방랑자 김시습이 은거한 청학동

훗날 사람들은 김시습을 일러 생육신이라 일컫지만 그가 수양대군의 극악무도한 왕위찬탈에 비분강개 했을지라도 성삼문처럼 격렬하게 저항한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핑계로 속세를 떠나 운수납자로 천하를 주유했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실제 한때 김시습은 불가에 귀의했지만 그의 저술과 행적으로 볼땐 선가(仙家)에 훨씬 더 가까운 인물로 보인다.
실제 그는 유불선(儒佛仙)에 통달한 조선시대에서도 손꼽히는 천재로 알려져있다. 선가(仙家)에서는 수행처를 매우 중시하는데 김시습은 무려 10년간을 청학동 내원암 인근에 초막을 틀고 은거했다고 전한다.

수락산 청학동은 김시습같은 살아있는 신선이 깃들 만한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다는 의미다.


수락의 혼이 깃든 청학동 골짜기

수락산의 진수는 스릴 만점의 수락 대슬랩이나 기차 바위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살아 숨쉬는 청학동 계곡이나 시인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석림사 계곡이 아닐까 싶다. 그곳으로 안내해준 링컨님 덕분에 지금까지는 늘 무심코 지나쳤던 은류폭포를 만난 감격을 누렸다. 그런 의미에서 링컨님의 산행 내공은 나보다는 분명히 한 수 위인 것 같다.

은류폭포에선 꽉 막힌 코가 뚫릴 때 처럼 답답했던 가슴이 툭하고 열리는 것 처럼 후련했다.
수락산에 혼이 있다면 아마 거기에 깃들어 있을 것이다.


▲ 등산로에서 살짝 벗어나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은류폭포 ! 보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 은류폭포 상부 널찍한 너럭바위는 신선놀음하기엔 더할나위 없다. 산행 중단하고 아예 눌러앉고 싶었다.
▲ 소리바위가 있는 능선으로 가기위해 약간의 알바감행! 그러나 알고보니 쉽게 갈 수 있는 오솔길도 있었다.
▲ 소리바위 직전의 바위지대! 전망이 좋은 곳이다.
▲ 거기서 내려다본 은류폭포
▲ 그리고 내원사 아래 금류폭포
▲ 두고 온 은류폭포에 대한 진한 미련
▲ 소리바위 아래에 수락 대슬랩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링컨산도사라는 닉네임은 허투로 단것이 아닌 듯
▲ 풍류가 가득한 청학동 계곡을 굽어보며 소리바위가 내지르는 소리는 샤우팅이 아니라 song이었던 것이다.
▲ 세상으로 부터 몸과 마음을 숨기기에 딱 좋았을 내원사! 저곳에 내월당 김시습의 은거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막 피어오르는 저 신록을 바라보노라면 꿈이 피어나는 것 같아 힘이 솟는다.
▲ 칠성바위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우리도 가본다.
▲ 오늘 산행은 틈만나면 쉬어가는 신선놀음이다.
▲ 놀며 쉬며 석림사 계곡으로 하산하는 중! 상류엔 수량이 많아 귀가 즐거웠는데 하류로 내려갈 수 록 물길이 자취를 감춘다.
▲ 그리고 다시 드러나는 물길! 몸을 담그고 싶었지만 발부터 담궈보았다. 헉 완전히 얼음이 녹은물이다. 올해 계절은 미쳤다. 기온은 여름인데 계곡엔 아직 겨울의 흔적이 차디차게 남아있으니...


이번 수락산 산행은 여유 그 자체를 즐긴 풍류산행이었다.
무언가를 부산하게 쫓아다닐때 보다 오히려 더 많이 만나고 얻었다.
널찍한 마음을 지닌 강쥐님과 링컨님같은 풍류남아들과 함께한 산행이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예외없이 각 일병으로 산행을 마무리했다.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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