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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흥왕리 황금들녘, 외포리 경유 순환버스 해안투어①

마니산 북쪽의 화도터미널,상방리 → 참성단 → 마니산남쪽 흥왕리까지
양기용 기자 | 2017/10/04 00:03

[탐사]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흥왕리 황금들녁, 외포리 경유 순환버스 해안투어①
마니산 북쪽의 화도터미날,상방리 → 참성단 → 마니산남쪽 흥왕리까지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 2017년 10월3일 개천절, 세번째 찾은 참성단. 강화도 마니산은 개인적 시각으로 최고의 풍광을 선물한 곳. 사진은 참성단 아래로 흥왕리 마을, 들판, 밀물과 작년 2월에 장봉도를 갔던 뱃길 - 멀리 영종도부터 신도,시도,모도 와 장봉도 가 펼쳐져 있다. ⓒ20171003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2012년 6월 25일 오른 참성단에서 흥왕리들판과 갯벌 ⓒ서울포스트자료
↑ 2012년 10월1일, 참성단 중간으로 지는 해 ⓒ서울포스트자료
↑ 2014년 2월, 북한산 백운대에서 한강 너머로 보이는 마니산(좌) 과 우측 진강산 ⓒ서울포스트자료
↑ 2016년 2월, 장봉도 가면서 마니산 뷰. 시도(우) 와 모도 사이쯤인가보다. ⓒ서울포스트자료

 

▲ 2017년 10월3일 개천절, 세번째 찾은 참성단. 강화도 마니산은 개인적 시각으로 최고의 풍광을 선물한 곳. 사진은 참성단 아래로 흥왕리 마을, 들판, 밀물과 작년 2월에 장봉도를 갔던 뱃길 - 멀리 영종도부터 신도,시도,모도  와 장봉도 가 펼쳐져 있다. 덧붙여, 2012년 사진과 비교해보면 최근 보수한 참성단 돌층에 하얀색 백시멘트 를 덕지덕지 붙여 놨다. 5천년 역사의 상징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회색 시멘트 라면 더 낫지.. 우리 문화재를 인식하는 관료의 대가리나 보는 눈구녁 수준이 개,돼지와 다를 게 없다.  ⓒ20171003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2012년 6월 25일 오른 참성단에서 흥왕리들판과 갯벌 ⓒ서울포스트자료 

↑ 2012년 10월1일, 참성단 중간으로 지는 해  ⓒ서울포스트자료 

↑ 2014년 2월, 북한산 백운대에서 한강 너머로 보이는 마니산(좌) 과 우측 진강산  ⓒ서울포스트자료 

↑ 2016년 2월, 장봉도 가면서 마니산 뷰. 시도(우) 와 모도 사이쯤인가보다.  ⓒ서울포스트자료 

 

↓ 양화대교를 넘어 강화도로.

↓ 강화대교를 넘으며. 뒤돌아본 김포 문수산성.

↓ 강화터미날에서 화도터니미날로 이동하며 택시에서 찍은 북쪽의 마니산 모습. 우측 참성단의 소사나무가 보인다. 좌측 능선으로 보이는 곳이 정상(469m).

↓ 참나무가 많은 걸보니 네 잠 잔 가을누에 크기의 사슴벌레(집게벌레)의 파란 애벌레인 모양이다.

↓ 개미허리를 거쳐 멀리 양도면 황금들판과 외포리,석모도 

↓ 돌로 쌓아 올린 참성단. 오전에 성화 채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성화채화식은 매년 강화여고생 7명이 칠선녀 역을 한다고 한다. 사진은 온통인천 예전자료

↓ 참성단을 깔고 건너 헬기장, 더 멀리 마니산 정상(469m). 마니산은 부채모양으로 동서로 길게 늘어져 남북벽은 깎아지른 절벽의 급경사를 이룬다. 쌍봉의 낙타등같거나 설악산 공룡능선(공뇽릉선) 모양을 하고 있다. (아래 항공사진 자료 참고)  

↓ 150년 된 소사나무,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되었다. 마니산 등 해안을 낀 경기도 섬에는 소사나무가 잘 자생한다. 그러나 최근 경인일보 보도에 따르면 1947년에 없는 사진자료가 나와 그 이후 옮겨져 심어진 것을 확일할 수 있다. 논란이 예상된다.

↓ 아래 경인일보 기사 본문과 사진 - ['천연기념물 강화 마니산 참성단  소사나무가 150년을 참성단에서 자생한 게 아니란 점이 드러났다.  경인일보가 진행하고 있는 '실향민 이야기-꿈엔들 잊힐리야'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얻은 홍순주 할아버지의 해방직후인 1947년 수학여행 기념사진 속 뒤 어디에도 소사나무의 흔적을 볼 수 없다.'] - 서울포스트에서 인용(2017.10월) 

↓ 성화채화식은 매년 강화여고생 7명이 칠선녀 역을 한다고 한다. 사진은 온통인천 예전자료

↓ 하늘재 라고 써진 고개로 내려왔다. 지도엔 큰뫼넘이고개, 강화도 홍보안내에는 매너미고개라고 표시돼 있다. 뫼(산)넘이-뫼너미 가 맞다.

↓ 흥왕리에서 파밭을 깔고 올려본 마니산. 우측 낮아 보이는 곳이 정상(469m)다.

↓ 마침내 흥왕리 앞 황금벌판

 

ⓒ자료
ⓒ자료
 
↑ 성화채화식은 매년 강화여고생 7명이 칠선녀 역을 한다고 한다. 사진은 온통인천 예전자료

 

나만 그렇게 생각할까, 강화도 마니산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한 산도 없다. 우리나라 구석구석, 세계 어딜 봐도 마니산 위에서의 오묘한 절경을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10월, 이 산 바위 높은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면, 발 밑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아직 푸르른 숲이 펼쳐져 있고 파랗고 노랗고 빨간 지붕의 마을이 잔잔하다. 마을앞 개천이 흐르고, 버스길이 난 삶의 터전과 들판을 이룬 농지, 저수지와 염전, 그 뚝방 너머 대양으로 맞닿는 바다가 펼쳐진다. 멀리 다도해같은 섬들, 어디론가 오가며 길게 물꼬리를 단 배들, 썰물때 드러난 너른 갯뻘, 멀리 인천공항을 드나드는 비행기들. 어느 것 하나 살짝 끼어 든 조연이 아니라 당당한 주연으로 자리하고 있다.      

 

9월을 지나 10월이 되면 강화도는 온통 노란색으로 변한다. 넓은 간척들녘에 벼논이 황금물결을 이룬 시기, 나는 수확과 추수, 풍요로운 의미로의 노란색이 아니라, 풍광에 조화를 이뤄 준 경치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먼 발치 모자이크, 양탄자같이 짜여 일체감을 갖고 마치 열병식을 하듯 조용히 변해가는 벌판과 마을을 내려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유토피아 라는 상상이 절로 든다.    

 

등산하기엔 개천절이라는 상징일 외엔 날씨는 최악이었다. 늦게 도착한 화도면 국민광광단지 입구에선 단기4350년 강화마니산개천대축제가 끝나고 있었다. 참성단에서는 충북도에서 열릴 제98회 전국체전 성화채화식이 있었다고 하나, 하늘을 덮은 구름에 하루종일 햇빛을 볼 수 없었고 대보름인 밤에 보름달도 언감생심.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어쩌고 저쩌고... 애국가 3절은 무색해야 했다.   

 

그러나 이 절경을 매년 그리워할 것이고, 다음번에는 화질 좋은 카메라 가지고, 눈덮히고 꽁꽁 언  임진강 적벽과 광활한 평원을 담았었듯 이 산을 또 오를 것이다.  역시 그렇지만, 사진을 찍다보면 좋은 시계가 아닌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상의 사진을 건질 때가 많다. 즉, 빛깔 좋을 때의 풍경만이 아닌 시간을 정지시키는 타이밍 의 문제이다. 오늘 날씨에도 그랬다.   

 

강화도는 역사기행을 겸해 차를 갖고 드라이브 하기엔 좋지만 그런 교통으로 나들이하면 진풍경의 절반도 못본다. 오르고 고생한 발품이라야 좀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다. 인생도 단맛만 있는 삶보다 약간은 쌉쓰름하고 질곡된 데에 진 맛이 있는 법이다.    

 

강도(江島)라고 했던 강화도는 고려시대 때 항몽의 격전지, 조선시대 때는 인조가 청나라의 1차 침공(1627년 정묘호란, 당시는 후금=금나라)을 피해 피신한 장소. 인조는 2차 침략(1636년 병자호란)을 맞아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가 치욕적 항복, 패배로 한강 삼전도에서 청태종 앞에 무릎 꿇고 땅에 머리를 아홉번 찍었다는 역사적 기록이 삼전도비에 남아 있다. 이후 개화기 때는 과거 중국대륙의 침략을 교훈 삼아 나라 중요사료들을 강화도에 보관해왔으나, 이번에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 가 해상으로 함대를 몰고와 총포로 쑥대밭을 만들고 조선의 금은보화까지 약탈한 곳이다. 이런 돈으로 프랑스 는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어 주었다.

 

한국전쟁때는 북한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사상적으로 혼란과 피의 숙청이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지도자가 외교 로선(노선)을 무지한 고집으로 일관하면 어떤 결과가 나온자는 것을 잘 알려준 보물창고같은 강화도는 곳곳이 역사다. 지금의 남한북한의 대립, 미국,중국,일본,러시아 의 대립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계속된 것도 2000여년동안 1800여년이 평화롭지 못했던 한반도 정세를 말해주고 있다. 문재인정부 말고도 이전 몇몇정권도 분단국가와 전쟁(휴전)상태에 있는 나라의 지도자였을 뿐이다.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塹星壇,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산 42-1 소재, 1964년 사적 제136호로 지정)은 *조선 왕조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곳. 대한민국 국조인 제1대 단군의 이름은 '왕검'이며, 단군은 약 40대 가 이어진 직위(지금의 대통령 같은) 명이다. 왕검 은 환웅과 웅녀 의 아들로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세운 사람. 흔히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고 하나, 왕검단군이라고해야 맞다.

 

[* 조선: 우리 역사의 시초는 '조선(朝鮮)'이다. 조선은 단군조선,기자조선(후조선,기씨조선),위만조선(위씨조선,한씨조선)으로 나뉘기도 한다. 이를 고조선이라고 한 것은 이성계의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옛조선이란 뜻으로, 편의상 표기한 것임.  고구려 는 구려(句麗)라는 지명에서 출발하여 한사군의 현도군 인 고구려현(高句麗縣)에 유래가 있고 주몽(고주몽高朱蒙 = 동명성왕東明聖王)이 나라명으로 세웠다. 그러나 중원고구려비 라는 데 고려대왕(高麗大王 고려태왕 고려太王)라고 명시돼 있는 것을 보면, 학계에서는 고구려,고려를 당시 국내외적으로 혼용하거나 발해가 '고려'라고 사용하다가, 삼국유사부터 왕씨 왕건 이 세운 고려 와 구별하기 위해 고씨 고주몽 의 고려 는 고구려 라고 쓴다(다음백과 국호자료 등 참고).

아이러니 하게도 북한은 '조선'의 국호를 이어 북조선을 쓰고, 남한은 '고려'의 국호를 이어 코리아KOREA 라고 쓴다.]   

 

마니산(摩尼山)은 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태종실록 등에 머리, 우두머리라는 뜻의 마리산(摩利山) 또는 두악(頭嶽)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摩利는 머리의 중세 동형어인 마리의 취음표기(자료). 산 정상은 천제단(제천단天祭壇 祭天壇)인 참성단이 있는 곳이 아니며, 참성단 바로 동쪽 봉(헬기장)이 아닌, 전체 능선 중앙부 쯤 암릉구간 봉우리가 469m 정상이다. 참성단이 육안으로 더 높으나 인위적을 축조로 인한 높이는 인정하지 않는 게 지질학 원칙.  

 

오늘은 마니산 북쪽 화도면 상방리에서 계단로를 타고 개미허리를 거쳐 바로 참성단 북쪽을 보고 올랐다. 교통상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지만 가장 가파른 길이다. 2012년 노동일로 처음 갔을 때 이 길로 올랐다가 내렸고, 두번째는 남들이 쉽게 가지 않은 길 인 분오리돈대에서 정상능선을 거쳐 단군로 중간 샛길로 내렸다. 그때 사실은 마니산을 종주하고 황금들녘 흥왕리로 내려오는 코스 를 생각했으나, 정상에서 해가 떨어지는 바람에 중도 포기했던 길을 오늘에야 걸었다. 오늘 역시 남들이 쉽게 생각하지 않는 그때 못간 길을 걸었고, 나중엔 흥왕리 평야를 걸을 것이다.

 

서울에서 강화도 가는 대중교통(버스) : 2호선 이대전철역과 신촌역 사이 CGV앞에서 3000번(강화터미널, 15~20분 간격 배차), 2000번(화도면, 마니산, 1~2시간 간격 배차). 영등포역 88번, 800번 등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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