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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자료] 중일전쟁 시작으로 제2차세계대전이라고 불리는 미국-일본 간 태평양 전쟁

양기용 기자 | 2017/10/29 16:28

[서울포스트 량기룡 기자=] 전에, 독일이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시작된 '독소전쟁(독일-소련간 전쟁)이  전무후무할 인류 최악의 참화'라고 기록 바가 있다. 먼저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중국-일본간 전쟁)으로 말미암은 미국-일본간 간 태평양전쟁도 참화인 건 마찬가지다.  세계는 이를 통틀어 제2차세계대전이라고 부른다.

 

필자 생각으로, 지금 보니 전선이 동서양으로 갈라져 있고, 먼저 다른 나라를 침공한 일본이나 독일이 협정을 맺은 것은 사실이나, 동 전쟁기간 중 그들 나라의 군사적 교류가 전혀 없는 즉, 동맹군을 한번도 만들지 않았기에 독소전쟁과 일중전쟁-미일전쟁을 묶어 세계대전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전쟁은 비극이라는 말 외에 설명할  수 없다. 침략국이든 피침국이든 원인이 어땠든 전쟁이 계속되다가 종전이 될 때는 최종 승자가 사실은 침략국 지위를 얻는다. 평화는 순전한 사기에 불과하다. 또 정의를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은 힘과 군사력만이 그것을 증명한다. 극악무도한 천황과 히틀러가 총포를 든 것은 그들 기준으로 국익을 앞세워 사악한 무리를 제압하기 위함이다. 종교전쟁을 포함한 역사적 전쟁 모두가 그랬다. 그 극악무도한 행위를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미국과 소련이 제압했다. 미국과 소련을 현대사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었고 그것을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의로운 두 나라가 지금까지 대립하고 있어 세상에 도대체 무엇이 정의이고 누가 정의롭다는 것이냐.

 

미국,영국이 주축이 된 연합군의 공습은 (다른 자료에 독일 드레스텐 등의 공습과 일본에 대한 도쿄공습과 투하한 핵폭탄은 별도로 다루겠지만), 사상 최대의 작전으로 불리며 2차대전을 종식시켰고 이젠 승전국으로서 더 이상 그런 행태의 전쟁을 억지하자고 유엔 이 정했다. 지구상에 미국을 군사력으로 침공하여 승리할 나라는 영원히 없다. 즉, 미국은 영원히 지구상 어느 나라든 군사력으로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의 소리가 지구의 평화를 담보한 정의라는 얘기가 아니다. 독일이 스페인내전 중 게르니카 에 퍼부은 대공습,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평양 대공습도 있다.   

 

인류에 전쟁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 다행히 대규모 인명이 살상되는 대규모전쟁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 모르나, 핵폭발보다 더 무서운 인구폭발로 인한 분쟁,갈등,국지전은 훨씬 많아질 것이 뻔한 현실과 위기앞에 인류는 서 있다. 풍전등화 다. 

 

참고 자료 = 아래, 미일 간 태평양전쟁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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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i-stay/HRpt/3  다음 카페 물물다 간 시간들 '대나무'님 글 품

 

이오지마에서 미군에 항복하는 일본군

 

전쟁은 국민들의 뜻이 아니라 국가 권력가들의 야욕과 오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전쟁과 더불어 국민은 하루살이 목숨이 되고 맙니다.

 

1937년 7월 7일 일본 제국이 중화민국을 침략한 이후 1941년에 미국은 일본 제국에 경제 제재와 석유 금수 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반발한 일본 제국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미국이 참전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기까지 태평양과 아시아의 영역에서 벌어진 전쟁을 태평양 전쟁(太平洋戰爭, 영어: Pacific War) 이라 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에 격침된 일본 항모 히류의 생존자 포로 - 1942년 6월
과달카날에서 미군에 항복하여 옷가지를 지급받은 일본군
타라와섬에서 미군 해병대에게 항복한 일본군 - 1944년
사이판섬에서 미군에게 사살된 일본군
일본군들의 시체를 묻기 위하여 불도우저로 땅을 파는 사이판섬의 미군 - 1944년
항복한 일본군 포로들을 이동시키는 미군 - 1945년
종전 후의 일본군 포로 - 1945년 9월
미군에 의해 방면되어 기차편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본군 포로들 - 1945년 9월
미군 헌병의 감시하에 점심식사를 하는 일본의 전쟁 범죄자들 - 1948년 9월
1942년 8월 솔로몬 군도에서 일본군 전사자들

 

[참고]

 

1.일본과 중국의 충돌

 

19세기 말 중국의 혼란과 일본 제국의 제국주의화로 일본 제국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1910년) 만주를 제국의 영향권에 넣는 동안 중국은 군벌의 난립으로 그 영향력이 약해져 있었다.

 

이 상황은 1920년대에 들어와 조금씩 바뀌게 된다. 1927년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이 북벌에 나섰고, 장제스는 군벌들에게 충성을 요구하게 된다. 위협을 느낀 장쉐량이 장제스 쪽으로 기울자, 일본은 만주 사변을 통해 푸이를 황제로 하여 만주국을 세우게 된다. 일본은 국제 연맹을 탈퇴한다.

 

2.중일전쟁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중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중일 전쟁부터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처음에는 일본군이 순식간에 베이징을 점령하고 더 나아가 중화민국 수도였던 남경을 점령한다. 거기서 일본군은 남경 대학살을 저질러 지금까지도 이슈가 되고있다.

 

하지만 중화민국도 수도를 내륙도시인 충칭(중경)으로 이전하고 영국령 버마와 연결되는 루트로 미국과 영국에 무기지원을 받았으며 곳곳에서 중국 게릴라들이 나타나 일본군을 괴롭혔다. 결국 중일전쟁은 장기적으로 봉착하게 된다.

 

3.전쟁의 확전

 

일본은 중일 전쟁이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전쟁을 위한 지하자원 및 원료의 부족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게다가 미국이 중일 전쟁을 치르던 일본 정부에게 중국 등,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 군대의 완전 철수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온갖 노력을 기울여 일으킨 전쟁이기에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1939년 미일 통상 조약은 파기되어 양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으며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철광 등 지하자원 수출을 완전히 중단한다. 일본은 전쟁에 필요한 철·석유·고무 등 전쟁 공업품이 부족해졌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조선이나 만주 등에서 나오는 지하자원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일본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한다. 그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프랑스 식민지 인도차이나 침공이었다. 석유·고무·철광 등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이 선택한 방법이다. 그 당시에 유럽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독일군이 네덜란드, 벨기에, 폴란드 등을 모두 무너뜨리고 파죽지세로 서진, 프랑스를 정복하여 페탱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괴뢰 정부를 세우게 된다.

 

그리하여 이때 영국에서 망명 정부를 세우고 독일에 항전 중이던 드골로서는 인도차이나를 도저히 사수할 수 없었다. 결국 인도차이나에 있던 프랑스 세력은 일본군의 공격에 밀려 철수하게 된다. 인도차이나 점령이 성공한 후에도 일본은 더욱 많은 곳을 침공하길 원했다.

 

그리고 1941년 군인 출신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수상으로 한 군부 내각이 들어섰다. 이들은 군부의 여러 인사 중에서도 매우 강경파로서 미국과 전쟁도 불사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진주만 공격(1941년 12월)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사건으로 만 4년 8개월 동안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일본군 사령관들은 애초부터 운으로 승전을 희망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4.미국 참전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말미암아 국내 여론이 비등하자, 아시아-태평양에서의 일본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참전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세계 1차대전 이후로 기술의 발달, 군부대의 양적 발전에 비해 전선의 전술적으로 발전이 없던 미국은 유럽과 태평양에서 연이은 전투에서 후퇴를 반복해면서 전세는 미국에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는 듯하였으나, 전쟁을 거듭할수록 전술적 교리가 급속도로 발전한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1942년 6월 5일), 과달카날 전역(1942년 8월~1943년 2월) 등의 국지적 승리를 기반으로 미국은 역습을 계속하여 전황은 이후 일본에 결코 유리하지만은 않게 전개되었다.

 

이후 1944년의 사이판 상륙, 이오지마 점령(1945년 2월~3월) 등으로 태평양에 항공 기지를 확보한 미국은 B-29 등의 고고도 폭격기를 동원한 일본 내 대도시에 대한 전략 폭격을 개시하게 되고 급기야 1945년 8월 6일 및 8월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기에 이른다. 일본 천황은 더 이상의 전쟁 지속은 전 국토의 황폐화는 물론이며,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울수 있다고 판단, 전쟁을 종결하기로 마음먹는다.

 

1945년 8월 14일에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 의사를 전달한 뒤, 이튿날인 8월 15일에 항복을 선언하여 일본이 패망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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