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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체험, 삶의 현장⑮ - 속초, 양양 거쳐 오색약수터.. 드디어 설악산 한계령 설경에서 히말라야 를 보며 옛 추억 여행

양기용 기자 | 2017/12/20 22:00

[일상] 체험, 삶의 현장⑮ - 속초, 양양 거쳐 오색약수터.. 드디어 설악산  한계령 설경에서 히말라야 를 보며 옛 여행추억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 생업으로 갔다 온 설악산 한계령 아래 오색리 오색약수. 골바람이 살을 떼는 느낌이었으나, 아름다운 강원도 겨울풍광에 시름을 놓기도 했다. ⓒ20171211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설산은 나와 별 인연이 없었다. 눈이 온 산을 일부러 구경간 적은 없고, 산에 가니 눈이 퍼부어 앞을 볼 수도, 아름다운 주변 풍광도 볼 수 없었다. 과거 설악산이 그랬고 한라산이 그랬다.  

 

2020년엔가? 오색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가 설치된다고 한다. 전엔 환경을 내세워 그런 것을 반대했다면, 지금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이 부분은 나중 논단으로 서 볼 예정). 매우 환영이란, 나의 팔다리 관절이 쑤신 나이 때문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은 지나치게 작은 것을 고집해서 큰 것을 놓친다, 소탐대실. 중국이나 미국 어느 나라든 명소는 개발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스위스 알프스 산악열차를 보라.

 

서울의 북한산도 케이블카 를 놔 동남아인 등에 패키지 관광코스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등반 중 단체 관광 온 동남아 학생들을 마주쳐선 든 생각인데, 바위산이 별로 없는 그들에게 북한산은 큰 매력일 것이다. 우리처럼 수도를 끼고 아름다운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룬 나라는 흔치 않다. '북한산과 한강'을 적극 개발하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어쨌든 설악산 케이블카 덕분에 나이 든 사람들도 정상부 관광 한 번 하겠고 나도 벌써 예약한 턱이다. 내년엔 한계령(해발 1000m쯤)에서 출발한 등산로를 따라 대청봉을 거쳐 공룡능선으로 내려 와 볼 참이다. 한동안 전국의 산야를 초토화했던 우리나라 4050 등산인구는 이제 노쇄해져 - 늙고 지쳐 낚시로 눈을 돌렸다. 자연스런 변화이자 흐름이다. 얼마전 영흥도 낚시배 침몰사고도 취미를 산에서 바다로 옮길 수밖에 없는 405060레져인구층일 수 있다.

 

설악산은 암산(岩山)이지만 먼 산세를 보면 암골미가 보이지 않는 육산(陸山) 같다. 실제로 정상부분은 흙으로 이뤄졌고 아래 부분에 바위군이 발달돼 있다. 그런가 하면 지리산은 거의가 흙의 형태를 유지해 숲이 울창하다. 그래서 설악산을 바위가 많은 남성산, 지리산을 물과 숲이 많은 여성산이라고 한다. 산의 기를 받고자한다면 여성은 설악산, 남성은 지리산을 가야한다는 게 음양의 이치다.

 

  
 
 

 

   
 

↑ 1978년(고3) 11월 중순쯤. 예비고사 볼 시기에 우리는 산에나 갈 운명이었다. 설악산 울산바위에서 눈덮힌 대청봉을 배경으로 신선놀음(포커)도 하고, 양폭산장에서 1박(사진 속 대구 계명대 산악동호회와), 양양 낙산사, 홍련암 들러 ⓒ서울포스트 양기용  

▲ 1994년 북한산 - 위문을 거쳐 정상부로 향하면서, 삼각대에 셀프 촬영한 인증사진. 멀리 정남쪽으로 보현봉과 문수봉 등이 보인다. 좌측 산성주능선과 우측으로 의상봉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바로 아래는 노적봉. 전체적인 산의 모양, 테마 등을 고려해 개인적인 시각으로 북한산은 한국에서 최고 명산이다. 세계에서도 이처럼 아름답고 야무진 산은 찾기 힘들다. ⓒ서울포스트  

↑ 북한산 동쪽 용마산에서의 모습 ⓒ서울포스트  

↑ 94년 직원 야유회 때. 간성 통일전망대에서 북한 해금강을 배경으로 ⓒ서울포스트   

↑ 95년 무박산행. 대청봉을 오른 후 엉덩이 눈썰매를 타고 죽음의 계곡으로 하산  ⓒ서울포스트  

↑ 95년 2월 설악산, 95년 5월 지리산, 96년 2월 한라산. 그러니까 30대 중반에 북한산부터 우연히 산에 눈을 두었었다. (장면이 특별히 좋거나 나와 다르게 찍힌 사진만 간추림) ⓒ서울포스트    

↑ 구글지도로 검색한 한계령 휴게소에서 오색 쪽. 왼쪽 멀리 점봉산 ⓒ자료

 

94년 10월, 그 시절 직원 야유회에서 미시령을 넘어 속초 콘도에서 숙식하고 간성 통일전망대까지 갔었다. 북한지역 해금강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한 장, 그 곳 설악산 입구를 들러 한계령을 넘어 온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갈 때 비가 쏟아지는 야간 미시령길에서 사고를 냈고 내가 열받아 아예 걸어가겠노라고 투정(?)을 부린 그 소풍에서 모종의 썸씽 이 생겼고, 귀경길  한계령휴게소에서 내려 본 동양 산수화같은 설악산의 한 편이 뚜렷하다. 꺼낸 옛 사진들이 40년전 내 모습, 20여년전 내 추억이라니...!

 

이번엔 양양읍내와 오색리를 오가며 보니 구룡령이란 곳도 있다. 백두대간 주를 이룬 태백산백 좌우로 영동과 영서로 나뉘고, 거길 넘는 고개길은 진부령,미시령,한계령(오색령),구룡령,진고개,대관령,백복령 등이 있다. 얼마전 개통한 서울-춘천-인제양양고속도로는 백두대간 밑은 뚫어 터널길이만 12km가 넘는다. 

 

1978년 고등학교 3학년 11월 초, 8명이서 4인 2개 조로 나눠 양양 낙산사와 설악산을 여행했었다. 통크게 정상 대청봉 정복을 목표로 움직였으나, 설악동에서 비가 내렸고 오를수록 눈으로 변해 정상등정 불가라는 통제를 당했다. 양폭산장에서 숙식하고 나중을 기약했던 시절.

 

마침내 95년 2월, 한 겨울 무박산행을 감행했다. 혼자가 머쓱해 직원을 꼬득여 간 산행은 전문 산악회, 깜깜한 새벽 오색약수터에서 대청봉을 올랐다. 오색-대청봉 코스 는 급경사로 정상에 가는 최단거리다. 눈보라와 허리까지 빠졌던 대청봉과 죽음의 계곡, 천불동계곡의 눈세상.

 

2017년 12월엔 생업으로 오색약수터 민박집 보수공사. 거기서 먹고자며 예전에 못 본 남설악과 오색약수터, 눈덮힌 한계령의 진수를 만끽했다. 그 시절 한계령과  그러나 오늘 일로 찾은 오색약수터는 여러가지 점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철분이 많아 갈색으로 변해 꽁꽁 언 얼음 사이로 흐르는 약수도 기어이 엎드려 마셔 보았다.

 

약수터에서 보이는 곳 제일 높은 봉우리가 1150m를 넘는다. 거기부터 흘림골,주전골,주전바위,여심폭포,등선폭포,등선대,주전폭포,십이폭포,용소폭포,만상대,금강문,만경대(망경대) 등이 있고, 돌고돌아 흘러내린 물줄기는 선녀탕과 오색약수와 오색천을 만들고 동해바다로 빠진다.

 

일하며 쳐다 본 한계령과 점봉산능선,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마을 뒤 아름드리 나무숲 - 생전 이렇게 큰 둘레 2m쯤의 밤나무 또 같은 크기의 참나무 또 같은 크기의 소나무 - 은 천연기념물급.   

 

일 때문에 갔지만 일단은 너무 아름다운 여행이 되었고, 일과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인내와 새로움을 또 배웠다. 솔직히 영하 10도,12도 강원도 한계령 산간 골로 내리치는 바람은 상상 이상으로 매서웠다. 올 들어 최강 한파였다. 더군다나 전날 많은 눈이 내린 전국적인 기상으로 인한 추위는 잠깐사이 손이 얼어 연장을 잡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오지체험에서 혹한기훈련이자 극기훈련이 되었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의 숙식과 사람들 사이에서 일이란 매양 생각해도 수행의 연속이라는 개인적 지론이다. 일과 사람들 사이에선 도 를 닦는다는 생각이 절로 들 때가 많다. 나는 일을 다니는 게 아니고 도를 닦으러 다닌다고.

 

요 며칠 전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 가 직업으로 렌즈깎는 기술에서 그 유명한 스피노자렌즈 가 탄생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가 안경 닦는 기술을 가져 먹고살기 위해 그 일을 했다나? 안경알을 거즈 로 닦는 것은 아니기에 어떤 특별한 기술 일 것이다. 그나 니체 나 특히 모짜르트(모차르트) 등의 위인들은 교수직이나 궁정음악장 자리를 사양하거나 걷어 차버렸다. 공통된 이유가 '자유의지'를 최우선으로 둔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피폐하고 곤고하기 짝없는 그들 개인 삶이었지만 자유에서 피어낸 '결과'는 인류에게 커다란 자양분을 선사했다. 결국, 그들은 영혼의 자유를 찾기 위해 철저히 인간과 인습과의 단절, 고립을 택했고 볼 수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는 그의 저서 '즐거운 지식(Die fröhliche Wissenschaft, 1887)에 Amor fati: das sei von nun an meine Liebe! (운명애: 이것이 나의 사랑이 되게 하라!)라는 말을 적시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運命愛), 영 : Love of Fate]는 니체 의 운명관으로, 삶의 필연성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태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는 또 같은 책 서문에, '추구하는 것이 지쳐버린 후 난 비로소 얻을 수 있음을 알았다. 바람에 방해받은 후에야 난 비로소 그 바람을 탈 수 있었다'고 적었다.]

 

나의 자유의식도 상당히 조숙했고 또 그렇게 살고있다고 하지만, 요즘엔 자기애, 에고(ego)는 무책임한 이기주의적 행위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시골중학생 때, 외국에 나가 외국여자랑 결혼해 살거라는 생각했고 고등학교 때 미국,일본,독일에 펜벗을 두었으나 결국 그것도 안되었고, 다른 뜻으로 대학중퇴하고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한 삶. 만약 고분고분 학교졸업했다면 좋은 가정 만들고 직장에서 직위갖고 살았을까,는 의문을 많이 갖는다. 통제되고 절제된 그리고 편안하게 보호된 조직생활은 하사관으로 군생활 5년, 금융인으로 10년 정도 뿐이지만 난 지금까지 (공)기업이나 국가 녹을 먹는 사람을 한번도 부러워 한 적이 없다. 자유가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자유스런 삶은 인습의 장벽도 허물어 버리는 저 위대한 선인들의 고고한 것과 달리 항상 소시민적일 뿐이었다. 가끔, 자유란 꼴리는 대로 사는 것만이 아니기에 고독한 고통이 따른다는 것에 공감하며! 

 

▲ 홍천휴게소에서, 설국까지는 아니드래도 그런 분위기가 상상된다. 멀리 공작산부터 아침이 물든다.
ⓒ20171211 서울포스트

 

서울에서 강원도 가는 새벽 길 -  터널 을 빠져 나오자 설국이 시작되었으나, 홍천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 하며 잠깐 든 소회는, 올해 유난히 빨리 다가온 추위와 눈이 달갑지 않았다. 전날 전국에 내린 폭설과 서울 영하 12도 라는 당혹감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업으로 접경을 넘어 강원도까지 원정해야하는 날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이 생각남은 다행인 일이다.

 

검색 -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그곳은 설국이였다. 밤의 밑자락이 하얗게 서려오고 있었다] 또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끝이 하얘졌다]로 시작되는 설국(雪國). 내 책엔 [접경의 긴 터널 을 빠져 나오면 바로 눈의 고장, 즉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환해졌다]로 번역돼 있다. 니가타 현(縣)이라는 설향(雪鄕)의 온천장을 배경으로 도회의 한량같은 시마무라 가 게이샤 고마꼬(고마코), 동네 처녀 요꼬(요코) 사이에서 심리적으로 느끼며 절망하는, 해야하는.. 시마무라 의 허무를 나도 이제 알 나이 다.

 

가와바따 야스나리 는  1968년 일본인 최초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으나 1970년 애제자가 쿠데타  미수로 할복자살하자 그에 충격을 받고 정신적 불안정 상태에서 1972년 가스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일본인으로서는 두번째가 1994년 오오에 겐자부로, 올해 세번째로는 일본인 영국인(일본계 영국인이 아니라 영국국민이 된 일본인 이라고해야 맞다) 가즈오 이시구로 다. 일본내부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를 매년 가장 유력 수상자로 봤는데, 가장 상심한 사람이 돼 버렸다. 꼭 노벨상 규정은 아니지만, 향후 20년 내에 동종의 상을 동종의 일본인이 받기 불가능해지지 않았을까.

 

내년엔 평창에서 2018세계동계올림픽이 열릴 예정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눈을 찾아 제일 많이 찾는 곳이 일본이란다. 시베리아,알래스카,북극,남극,히말라야.. 등에 눈이 더 많은데 일본이 인기있는 건, 눈 뿐인 황량함 보다 사람사는 동네와 온천의 아기자기함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눈도 수 m가 내린다. 홋가이도(북해도)도 돈 벌면 한 번 갈 예정이다. (龍)

 

↓양양IC에서 오색으로 가면서 본 한계령. 이국적 히말라야 를 보는 듯하다. ⓒ서울포스트

↓ 양양IC에서 고속도로를 타기전 설악산 먼 풍경. 대청봉이 솟아 있지만 동글동글한 육산으로 보인다. ⓒ서울포스트

↓ 백두대간 인제양양터널 ⓒ서울포스트

 


 



 
 

 

 


 

↑ 12월18일, 아침부터 쏟아지는 눈발에 평창을 거치는 경강선(서울-강릉) 막바지 망우역공사에서 고객대기실을 만드는 데 용접을 하고 있는 양기용 잡철용접기사. 19일 문재인대통령이 타고 지났기 때문에 그날은 휴무.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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