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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내 천연기념물 제8호 백송 과 몇몇 유적지 표지석.. 옛 중앙박물관(조선총독부,중앙청) 앞 내 사진

양기용 기자 | 2017/12/30 23:20

[탐방]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내 천연기념물 제8호 백송(수령 600년) 과 몇몇 유적지 표지석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 높이 14m, 밑동둘레 4.25m, 수령 600년 국내 최대의 백송(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내)
ⓒ20171230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1990년대 초, 경운동 본사영업부(종로지점)에 근무하면서 운현동(운니동),안국동,인사동,계동,가회동,재동 헌재 앞이나 종로 일대는 두루두루 다녔던 곳이다. 개인적으로 귀중하게 남은 사진은 한 때 중앙청으로 사용했던 조선총독부 건물 -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앞에서 찍은 사진(아래, 1993년 11월).

 

2017년 세밑에 헌법재판소를 찾은 것은 지난 3월 박근혜 파면이 선고된 기념비적인 장소여서도 아니고 천연기념물인 백송 때문도 아니다. 6월쯤 차로 앞을 지나다가 손병희선생집터 를 보았었기에 절두산천주교순교성지 를 탐방 후 동학과 서학의 차이가 궁금해 천도교회관과 함께 다시 찾고 싶었다. 옛 우리회사 본사는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선생의 호를 딴 수운회관 건물을 통째 얻어 쓰고 있었으나, 당시엔 정작 '인내천'이란 동학에 아무 관심도 없었고 증산도,천도교 등으로 변형된 지금도 그렇다. 서학과 함께 버무려진 천주교도 마찬가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 은 조계사 등에도 있다. 오늘 보니, 헌재 백송은 크기와 포스 로 우리나라 최고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헌법재판소는 한 때 박규수선생집터, 이상재집터, 제중원터(1887년 을지로-구리개 로 옮김), 창덕여자고등학교터 였다.

 

헌재가 있는 재동(齋洞)은 회동(灰洞)이라고도 해 거창한 뜻이 있는 게 아니고 타고남은 '재'라는 뜻의 동리다. 그러니까 계유정란으로 세조 가 조카 단종 을 죽이기 전, 김종서 의 측근 황보인 등을 유인 참살하여, 이들의 흘린 피가 내를 이루고 비린내가 남으로 마을 사람들이 집안에 있던 재를 가지고 나와 길을 덮었다고 전해지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바로 옆이 안국방이 있던 안국동(安國洞)이라니 참 아이러니 하다.

 

어쨌든 재동의 유래처럼 역사적인 박근혜파면이 선고된 곳.. 옛날로 말하자면, 민란의 성공이 박근혜를 피로 숙청하고 문재인 반정의 출발을 알린 헌재. 그러나 우리나 세계 역사에서 민란이 성공한 예는 없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는 '100만 촛불혁명'이라는 수식을 달았다. 그리고 적폐청산이라는 사회기조를 만들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2016년 4월, 한국 현대사에서 공공연히 내가 광화문에서 최초 외친 '혁명'을 시작으로 2017년 우리가 애써 '혁명'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고 적폐도 청산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한국사회에서 정의는 너무 모호해 정의하기 어렵고 그 나물에 그 밥이자, 2017년 진행된 대한민국은 전체가 '보통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적폐덩어리'이기 때문이다. 5.16군사혁명처럼 세상을 뒤엎는 혁명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헌재의 상징 동상(헌법의 수호자 상)이 서 있지만, 법원과 서양의 정의의 여신상에 비춰 다소 쌩뚱 맞아 보였다. 참고로, 이집트 에는 정의의 여신 마아트(Maat), 그리스 신화 속  정의의 여신은 디케(Dike) 또는 아스트라이아(Astraea), 로마신화 속에는 유스티치아(유스티티아 Justitia)가 있다. 

 

우리사회의 고질적 병리현상은 계속 문제발생의 불씨로 남아 있고 반복된다. 이 점에서 이웃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선진국이다. 일본에 살(았)거나 일본과 비지니스 를 한 기업인은 일본인의 질서와 시민의식을 극찬하곤 한다. 우리의 적폐가 청산되고 선진의식의 나라가 될려면 50년,100년을 내다보고, 지금 태아부터 새로운 교육이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난 본다. (龍)

 

 



 

 

 

↑ 천도교 중앙대교당 이 '개벽사터' 였다.

↑ 수운회관 위 운현궁 맞은편으로 '조선건국동맹터'가 새로 보였다.

↑ '손병희선생집터' 는 봄엔 헌재 아래쪽에 있었으나 지금은 위쪽 동사무소 옆 무슨 박물관으로 옮겼다.

↑ 1993년 10월, 당시 중앙박물관앞에서 ⓒ서울포스트 양기용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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