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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일상탐방] 500년 혹은 600년을 잡수셔 용의 모습으로 현현한 충주 단호사(丹湖寺) 천연기념물급 황룡송(黃龍松 소나무), 대림산단애와 달천강변, 11월의 우박내린 날 풍경, 아침 전등 아래 노는 거미

양기용 기자 | 2021/11/17 21:04

[서울포스트일상탐방] 500세 혹은 600살을 잡수셔 룡의 모습으로 현현한 충주 단호사(丹湖寺) 천연기념물급 황용송(黃龍松 소나무), 대림산단애와 감천강변, 11월의 우박내린 날 충경, 아침 전등 아래 노니는 거미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 충주 단호사 경내의 소나무, 용트림을 마친듯한 노송의 위용. 황룡송(黃龍松)으로 존칭하고 싶다.
ⓒ20211117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충청북도공식블로그 자료사용 https://blog.naver.com/cbkb21/22121714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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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은 여러 사진은 저 아래

 

급히 (충주) 향산리현장으로 자재를 싣고 갈 일이 있어 카고 에 선탑하고 시내를 관통하는데, 대로변 언뜻 덩그런 대웅전이 보여 이상타 생각하며 바라보던 중 희한한 소나무가 눈에 스쳤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일부러 들러 길을 건너 들었다. 경내 금빛 입상부처님께 합장하고 '놀라운 소나무'를 핸드폰으로 담았다. 경이로운 노송으로 용송,황룡송으로 이름하기에 충분했다. 여러 천연기념물을 봤고, 이제는 관리소홀로 망가져 품위가 떨어진 속리산정이품송도 사진에 담았지만, 이만큼 귀한 소나무도 드물다. 몇 년 전엔 경기도 남양주 천마산 뒤에서 일하며 거기 도로에서 캐 옮겼을 값비싼 소나무도 담았었지만, 여기 적송의 기기묘묘한 형상에는 쨉이 안될 것이다.       

 

단호사 전체를 압도하는 생명체 한 분은 이제 막 용트림을 하고 있는 자태, 황룡이 마치 승천을 마친 상태같다. 이 적송은 나무 높이가 8m쯤, 둘레가 2m가 넘는다고 한다. 황룡송(황용송)이라고 명명해도 충분하고 천연기념물에 당장 등재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 500년,600살을 잡수셨다는 구전으로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보다 천년기념물(千年記念物)이라 해야할까 보다.    

 

달천강변으로 난 길은 수안보를 거쳐 조령산 이화령을 넘어 문경,상주,구미,대구로 가는 옛길, 지금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나 있다. 대림산 대림산성은 항몽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단호사 건너엔 충주 달천출신 장군으로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싸웠던 임경업장군의 임충민공충렬사 와 유학자들의 충주충렬사 가 한 곳에 있다.

 

달천(達川)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 일행이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중국 유명한 여산의 수렴약수보다 맛이 좋아 감천(甘川), 달래강이라고 해 남매에 관한 선정적인 설화가, 달천(達川), 물맛이 달다고 해 감천(甘川), 수달이 살아 달강(獺江,수달 달)이라는 달내강(단내강?)으로도 불리는 물맛은 예나 지금이나 조선 최고의 물로 꼽힌다고 한다. 조선시대 학자 허백당 성현의 용재총화 에, 우리나라 물맛은 충주 달천수가 으뜸, 오대산 우통수가 두번째, 속리산 삼파수가 세번째로 좋다,는 기록도 있단다.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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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천(達川, 감천甘川) - 아래 자료사용

 

길이 127.9㎞. 달천강(達川江)·달천천(達川川)·달내·달강(達江)·감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속리산의 비로봉(毘蘆峰:1,021m)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보은군 내북면, 괴산군 청천면·괴산읍, 충주시 달천동 일대를 지나 충주시 칠금동과 가금면 창동리 사이에서 남한강에 흘러든다.

 

구룡천과 화양천이 합류되는 청천면에서는 청천강(靑川江), 쌍천(雙川)과 음성천(陰城川)이 합류되는 괴산읍에서는 괴강이라 불리며 충주시 달천동에 이르러서는 달내강이 된다. 이 하천의 수계에는 괴산군 칠성면에 괴산댐이 건설되어 있으며, 충주시 서부의 하천연안을 따라서는 넓은 사과 과수원이 있다. 이 강은 과거 물맛이 좋아 '단냇물', '달냇물'로 불리웠으며 현재 충주시 달천동은 원래 달신(達新)과 단신(丹新), 이부, 송림리가 병합된 이름이며 부근에는 '달다'는 뜻의 단월동(丹月洞)과 단호사(丹湖寺)가 있다.

 

또한 이 강의 상류에는 단물을 뜻하는 감물면이 있다. 이 강에는 달래강설화(→ 달래고개설화)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어느 남매가 이 강을 건너다가 소낙비에 젖은 누이의 여체(女體)에 욕정을 느낀 동생이 자신을 저주하여 자결해버렸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누이가 "달래나 보지" 하고 슬퍼했으므로 '달래강'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이 강에 수달이 많아 '달강'이라 했다고 하는데, 현재에도 인근에 수달피고개가 있으며 달천리 서쪽 물가를 '물개달래'라고 부른다. 또 수달을 잡아 조정에 진상했다는 옛 기록도 있다. 이 강의 최상류인 속리산 문장대(文藏臺)는 남한의 3대 하천인 낙동강·한강·금강이 3갈래로 나누어지는 삼파수(三派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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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忠州丹湖寺鐵造如來坐像 단호사 철불좌상)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단호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철조여래좌상.

 

시대: 고려 

문화재 지정: 보물 제512호 

크기: 전체 높이 130㎝, 무릎 폭 97.5㎝ 

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충원대로 201(단월동) 단호사 


개설

보물 제512호. 원래 이 불상은 단호사 노천에 방치되었던 것이었지만, 대웅전을 새롭게 건립한 후 이안하여 봉안하였다. 단호사에 대한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때 중건하여 약사(藥寺)라 하였고, 1954년에 단호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철조여래좌상은 인근 대원사(大圓寺)에 봉안되어 있는 보물 제98호 충주 철조여래좌상(忠州鐵造如來坐像)과 약간의 크기 차이만 있을 뿐, 형식이나 양식, 조각기법, 그리고 착의(着衣) 등에서 거의 일치하고 있어 동일한 작가 또는 공방(工房)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및 특징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은 머리에 나발(螺髮)이 촘촘하며, 육계(肉髻)에는 정상과 중앙에 커다란 반달모양의 계주(髻珠)가 있으나, 그 경계가 확실치는 않다. 얼굴은 긴 타원형이며, 좁은 이마의 중앙에는 작은 구슬모양의 백호(白毫)가 도드라지게 표현되었다. 이목구비는 개성적으로 표현되었다. 즉, 물결치듯 내려보는 버들잎 모양의 눈매, 돌출한 광대뼈, 눈썹에서 날카롭게 이어진 삼각형의 콧날, 앙다문 입술과 움푹 파낸 입 주변, 힘을 주어 당긴 턱 등에서 풍기는 인상은 과장되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귓불을 뚫은 양 귀는 목 부분까지 길게 늘어졌으며, 링을 감은 듯 목에는 삼도가 굵게 돌려져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 착의법이며, 불신에 표현된 옷주름은 철저히 좌우 대칭을 이룬다. 양어깨에는 평판적인 층단 주름이 사용되었고, 팔뚝에는 곡률의 변화가 있는 융기선들로, 복부에는 날 선 요철 주름으로, 넓은 다리에는 단순한 수평의 융기선 주름을 반복하여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였다. 양 어깨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다소 두꺼운 옷깃 사이로 리본 매듭으로 묶어 멋을 낸 내의(內衣)가 표현되었다. 다리 사이로는 석굴암 본존불상 이래 고려시대 불상까지 흔히 볼 수 있는 부채꼴 주름을 표현하였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것과 비교해 너무 형식적이고 도식화되어 시대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양 무릎에는 손가락으로 쿡 찍어 누른 듯한 3줄의 수직단선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이런 모양의 주름은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상이나 불국사 금동불상 등 통일신라 9세기 중·후반부터 등장하는 주름으로써, 이 불상도 이러한 9세기 불상의 전통을 부분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은 얼굴 부분의 세부 표현기법, 머리에 표현된 반달 모양의 계주, 무릎 앞에 내려오는 부채꼴 주름 등에서 고려 불상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좁고 둥근 어깨, 볼륨감이 사라진 평평한 가슴, 상체가 전체적으로 각진 모습, 과장된 얼굴표현에서 오는 부자연스러움 등에서 형식화와 도식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바로 인근 대원사에 소장되어 있는 충주 철조여래좌상과 같은 작가나 공방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보이므로 불상 유파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한편 지리적으로 인접한 원주지역에서 출토된 철불과도 유사한 양식적 특징을 보이고 있어 당시 철불 제작의 양상과 이 시기 이들이 추구했던 미의식을 파악하는 데에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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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단호사삼층석탑(忠州丹湖寺三層石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 현존 높이는 2.14m이며, 본래는 5층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대: 고려 (충청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69호,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455 단호사 ) 

 

내용

약사전(藥師殿) 앞에 세워진 이 탑은 하층 기단부는 현재 시멘트로 덮여 있으나 3층까지의 탑신과 옥개석은 완전하며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까지 잘 남아 있다.

 

단층기단의 면석은 높이 43㎝인데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표현되었고, 갑석(甲石)은 높이 16㎝로 윗면에 1단의 탑신 괴임이 조각되어 초층 탑신을 받치도록 되어 있다. 초층 탑신은 40㎝의 높이에 양 우주를 나타냈으나 서북쪽의 일부분이 파손되어 시멘트로 약간 보수한 흔적이 보인다. 초층 옥개석은 높이 25.5㎝로 하단부에 2단의 옥개받침과 상부에 1단의 탑신괴임이 조각되었고, 옥개석 하면에 낙수홈이 파여 있다. 2·3층의 탑신 및 옥개석은 초층과 유사하며 노반은 방형으로 높이가 6.5㎝로서 윗부분 중앙에 찰주공(擦柱孔)이 만들어져 있다.

 

이 탑은 부분적인 파손은 있으나 우주와 탱주의 모각 수법과 옥개석의 층급받침, 옥개석 낙수면의 원만함과 낙수홈 등으로 미루어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조선고적조사보고서(朝鮮古蹟調査報告書)』에 ‘읍남약사전 삼층석탑 신라(邑南藥師殿三層石塔新羅)’라는 기록이 있어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최근 이루어진 정밀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원래 5층석탑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 탑을 3층으로 보고 3층 옥개 위에는 노반(露盤)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으나 이것은 노반이 아니라 3층 옥개에서 4층 탑신면의 우주가 각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기단면석에 돋을새김을 한 우주와 탱주의 표현 수법이 일정하지 않지만, 각층 탑신에는 우주의 표현이 정연하다. 탑의 체감비율로 볼 때 상당히 경쾌한 탑신부를 형성했으리라 짐작된다.

 

 

의의와 평가

충주지방의 탑들이 대개 산 위에 위치하나 이 탑은 평지에 세워졌고 그 본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탑으로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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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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