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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일상] 1988년 전후 보성녹차밭에서 - 대한민국 최초(1호), 원조 '나는 자연인이다'.. 다원 골짜기,촛불아래의 벌거벗은 생활

양기용 기자 | 2022/05/08 19:12

[서울포스트일상] 1988년 전후 보성 녹차 밭에서 - 대한민국 최초(1호), 원조 '나는 자연인이다'.. 차밭 골짜기,촛불아래의 발가벗은 일상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 제1다원에서(오른쪽 멀리 일림산, 그 남쪽 아래 제2다원이 있다). 사진은 옛날 필름카메라 로 찍은 것이며 보관과 스캔에 한계가 있어 보정없이 그대로 올린다. 지금도 내 사진찍기 철학은 좋은 카메라의 색상이나 화소보다 '테마,프레임(구도주의)'이다. ⓒ서울포스트

 

한동안 tv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와 그 비슷한 것이 성행했다. 자연속에서 문명과 동떨어진 삶의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도시인이 잠깐 취할 수 있는 휴가같은 로망에 인기가 폭발했었다. 내가 최초,원조 자연인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으나, 본격적으로 자연속에 사는 '자연인'이란 개념은 imf이후 어떤 사연으로 속세를 떠나 자연에 묻힌 사람을 일컬을 것이고, 적어도 80년대(지금도) 시골 사는 삶은 모두가 '나는 자연인이다'. 

 

처음 친구와 함께한 나의 생활은, 휴식이 필요했던 때였고 책도 볼 겸 해서다. 무술이랄 것은 없지만 작대기로 봉술 연마, 책을 끼고 산너머 산책길에서 먼 바다를 아래로 내려다 보는 기쁨, 이맘때면 녹차잎을 따 용돈도 벌었었다. 뱀이나 개구리를 잡아 보양식으로, 꿩과 비둘기,약재로 쓴다며 황조가에 나오는 꾀꼬리를 사냥했던, 산중턱 벌지기가 오는 계절이면 꿀을 따고 가을엔 밥을 줍고, 봄엔 아랫마을에서 얻은 표교버섯에 회천쪽파,감자에 요리를 했던, 저수지에 내려가 낚시를 하거나 밤중에도 냅다 포구까지 걸었던, 기가 뻗히면 알몸으로 골짜기를 맘껏 누비고 다녔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있던 전후였으니, 녹차가 완전 침체기였지만 그제사 지역 차아가씨를 뽑는 미인대회를 곁들인 다향제가 생겨날 시기. 그럼에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곳에서, 친구는 녹차중흥을 위해 유통을 생각했고,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 곳 정도로만 생각한 채 추억들을 만들어 그곳을 떠났다. 서울에 올라와 10여년이 지난 2000년대 들어, 보성다향제는 지역행사로 유명세를 탔고, 관광객도 폭증했다. 친구는 보성녹차 브랜드에 힘입어 수 십억대 자산가가 되었고 나는 사진만 몇 장 남았다. 오늘 겸사겸사 이 자료를 모은 것은, 지금 한창 차 따는 시기고, 최근 옛 사진 한 장(부억에서 국 끓이는)을 발견한 기쁨이랄까.

 

imf때 필드로 나와 허드렛일로 향기장사를 하면서 상호를 그때를 추억해 '꽃을 던지고 싶다 - 다향(茶香)'으로 정했다. '꽃을 던지고 싶다'는 종로지점 근무할 때 자주 간 인사동 카페인데, 온통 마른 꽃으로 장식한 분위기가 이색적이어서 갖다 썼다. 사실은 동명의 소설이 있어 그 주인도 소설에서 따왔을지 싶고, 절판되어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영등포 시장에서 자란 소녀가 억압적으로 겪은, 시장 뒷골목의 성풍속과 (뇌피셜로) 영등포 사창가까지 상상이 가능한 성장소설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꽃'은 '성'을 뜻한 바로, 거추장스런 성을 던져 더 자유롭고 싶은 상상의 나래도 포함될지 싶다.         

 

보성군은 회천면 율포리 해수욕장에 녹차해수탕도 개발돼 있으나, 아마 해안을 접한 지역 중 섬이 하나도 없는 희한한 지역이기도 하다. 멀리 보이는 득량도는 고흥땅. 봇재를 기준으로 분지를 형성한 읍내쪽 다원은 삼나무가 무성한 대한다원, 재를 넘어 산능성의 제1다원과 멀리 회령 평지에 제2다원이 있다.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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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20대후반 애늙은이였지만, 추억의 회상으로 헤르만 헷세(Hermann Hesse) 소년시절(서문부)를 붙인다.

 

소년시절 - 헤르만 헤세

 

이,삼일 전부터 우거져 보이는 숲은 아름다운 윤기를 내기 시작했다. 진흙으로 된 샛길에 나풀거리는 들꽃을 나는 오늘 처음 보았다.
맑게 개인 하늘에는 부드러운 사월의 꿈이 서려있다. 방금 갈아제친 넓은 들판은 빛나는 다황색을 하고 포근한 대기를 향해 가슴을 펴고 있다. 그것은 마치 씨를 뿌리고 길러내는 무성한 푸른 곡식으로, 대지의 위대한 힘을 시험하고 과시하며 어떤 동경에 사로잡혀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기다리고 원하며 또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성장과정에서 묵묵히 싹뜨고 있다.

 

싹은 태양을 향하고 구름은 밭을 향하며, 어린 풀잎은 훈훈한 바람을 향해 너울거린다.
나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이 무렵이면 초조와 그리움으로 마음이 뿌듯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어느 신비로운 순간에 만물이 소생된 기적을 입증하는 것처럼, 순간마다 힘과 美가 계시되는 모습을 눈으로 뚜렷이 보고 생명이 눈웃음치며 대지에서 솟아나와 창연한 빛을 향해 눈 뜨는 체험을 자신도 함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심정이다.
해마다 이 기적은 소리를 내고 향기를 풍기며 내 곁을 스쳐간다.

 

나는 사랑을 받고 숭배를 받을지 모른다. 거기에도 기적은 있고 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눈으로 본 적이 있다.  새싹이 움트는 순간이나 샘물이 햇볕을 받아 넘쳐 흐르는 장면을 보지는 못하였다. 꽃은 어느새 사방에 피어 있다.
그 꽃나무들은 잎사귀가 싱싱하고 물방울같은 흰 꽃이 햇살에 빛나고, 새들은 기쁜듯이 지저귀며 아름다운 커브를 그린다.

 

숲은 푸른 지붕을 이루고 먼 산봉우리들이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어느새 장화며, 륙색,낚시대,노 등을 마련하여 올해도 봄을 즐길 때가 되었다.
봄은 해마다 더욱 아름다와지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옛 소년시절에는 봄이 얼마나 길었던가. 그리하여 얼마나 흡족하게 즐길 수 있었던가.
지금도 그 시절로 돌아가 기분이 명랑할 때면 오랫동안 푹신하고 싱싱한 풀위에 누워 있거나 근처의 나무에 올라가 커다란 가지 사이에서 몸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꽃봉오리의 향취며, 수풀 내음을 맡으며, 머리 위에 그물처럼 펼쳐진 나무가지를 이고 그 초록빛이 하늘색에 조화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한다.

 

어느새 행복한 소년시절의 꿈 속에 몽유병자처럼 드나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꽃동산으로 뛰어 들어가 어린시절의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神이 손수 만드신 그대로의 이 세계를 순간이나마 바라보고 힘과 미의 신비로 충만하던 자연 그대로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시절에는 나무들이 기쁜듯이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뜰에 핀 수선화며 히야신스가 눈 부시도록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고 낯선 사람들 까지도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미쳐 의식하지 못했지, 사람들은 우리의 윤기있는 이마 위에 어떤 엄숙한 호흡의 존재를 느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엄숙한 존재는 우리가 억세게 자라는 동안에 원치도 않았건만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얼마니 난폭한 개구장이었던가. 아버지는 나 때문에 얼마나 걱정하시고, 또 어머니는 얼마나 애타하셨는가. 그러나 그 무렵에는 내 이마에도 신의 광채가 서려 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아름답고 생기가 넘쳐 있었다.  생각이나 꿈 속에서는 천사가 드나들고 기적이 일어나 얼마나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를 만들었던가.

 

그 무렵에 방금 갈아제친 밭의 냄새며, 움트는 파릇파릇한 새싹은 언제나 추억의 밑천이 되어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거의 잊어버린 그 무렵의 일들이 으례 몇 시간씩 회상되곤 한다.


지금도 나는 그 때의 일을 회상하고 있다...

 


▲ 제2다원에서 내려보이는 득량만과 득량도 ⓒ서울포스트
▲ 한참 뒤 찾았던 율포해변 ⓒ서울포스트
▲ 산속 생활공간에서 본 천포 앞바다와 고흥반도 일출 ⓒ서울포스트

 

↑ 황조(黃鳥)라고 불리는 꾀꼬리 ⓒ자료사진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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