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 조련사에서 여류 비행사까지
1902년 영국에서 태어난 베릴 마크햄은 4살 때 이혼한 아버지와 함께 아프리카의 케냐로 갔다. 여자이면서도 무서움이란 것을 몰랐던 마크햄은 대자연속에서 동물들과 같이 뛰어 놀며 자연속의 한 인간으로 성장했다.
마크햄이 17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케냐를 떠나 페루로 갔다. 사업에 실패했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남아메리카행을 결정한 것인데 이때 마크햄은 케냐에 주저앉았다. 대자연이 너무 좋아 아버지 혼자 페루로 가게 했다.
혼자 몸이 된 마크햄은 자연속에 널려있는 과일을 따먹으면서 아버지가 남기고 간 집에서 페가사스라는 이름이 붙여진 말과 함께 살았다. 페가사스는 영리하고 민첩한 말이었다. 마크햄으로부터 조련을 받은 페가사스는 1년 만에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벌어진 경마에 출전해서 거뜬히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마크햄이란 젊은 여인의 이름은 점차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으며 당시 세계 최고의 여자 영화배우였던 그레타 가르보와 흡사하게 생겼다 해서 “케냐의 가르보”라는 별명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어느날 마크햄은 아프리카 오지로 의약품을 실어나르는 비행기에 탔다. 이것이 계기가 돼서 마크햄은 여류 비행사가 되는 꿈을 갖기 시작했다. 경마용 말을 다루는 명조련사, 영화배우처럼 매혹적인 외모와 사교술, 그런 점 때문에 유명해진 마크햄은 나이로비에 자주 나타나는 어떤 재벌 기업 총수의 눈에 들어 경비행기 한 대를 선물로 받았다.
이번에는 비행술에 전심전력한 마크햄은 1936년 여름, 그러니까 그녀가 34살 되던 해에 대서양을 횡단해서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날따라 날씨는 악천후였다. 많은 사람들이 마크햄의 모험을 “무모한 짓”이라며 말렸다.
그러나 마크햄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용감하게 비행기에 올라탔으며 무전기도 없이 단독으로 대서양을 건넜다. 미국 중서부의 평원에 불시착한 마크햄의 얼굴에는 가벼운 상처가 났을뿐 큰 이상은 없었다.
미국 매스컴들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용감하고 아름다운 여류 비행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마크햄은 이때의 비행 경험을 토대로 “밤을 서쪽으로”란 책을 썼다. 이 책이 또한번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책을 읽은 세계적인 문호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섬세하고 수려한 문장은 작가인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고 극찬했다. 미국은 물론 유럽대륙까지 떠들썩한 가운데 “밤을 서쪽으로”는 대뜸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 가지 일에서 성공하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베릴 마크햄은 3가지 4가지 일에서 모두 성공하는 초인의 능력을 보여준 셈이다.
[이의재 논설위원 (전 서울신문 심의위원, 스포츠서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