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철인데 분위기가 한심하다. 뉴스만 요란을 떨 뿐, 투표를 할 사람들은 심드렁하고 시쁘듬한 표정들이다.
어쨌거나 한표가 아쉬운 후보들에게 이럴 때 집안 부인이라도 남에게 잘 보여서 표를 몰아준다면 그만한 내조도 없을 터이다. 대통령이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후보들에 대한 평가에 그 부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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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1년 4월10일 대전 유세에 갔다가 어느 힘겨운 서민의 손을 잡고……. ⓒ김인만 서울포스트 |
이번에 나선 어떤 후보는 부인이 1천만원짜리 핸드백을 들고 다닌다고 해서 빈축을 샀다. 1천만원은 고액 봉급자의 한달 봉급이기도 하지만, 어둡고 힘들고 외로운 저소득층의 전셋값이다. 어려운 서민의 전셋값을 핸드백으로 들고 다니는 그 부인에 그 남편을 어떻게 볼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런 부부의 일심동체는 공직 자격 미달이다.
그런데 여론조사는 1등이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선거의 격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졌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되었나.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사람들. 상한 영혼의 갈대들이다.
“1천만원 핸드백이면 어떠냐. 나도 당신처럼 돈 좀 벌게 해달라”는 배파적, 파괴적 이기주의가 대통령 선거를 조롱, 비하하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이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만 보는 게 아니다. 그 부인을 본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처럼 “대통령도 부인하기 나름”이라 할 때 떠오르는 사람이 육영수이다.
국민이 역대 대통령 부인들 중에 육영수를 으뜸으로 평가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고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간단히 육영수 스케치를 보노라면―.
1967년 4월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대통령 선거 유세가 벌어지고 있었다. 공화당 후보 박정희가 연설을 시작해 반시간쯤 지났을 때 운동장 뒤편이 술렁거렸다. 뒤편에 있던 사람들이 박정희 후보의 연설에는 아랑곳없이 한 곳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소요를 일으키고 있었다. 연설은 중단되었고, 본부석에서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적지 않게 당황했다.
알고 보니 거기 박정희 후보의 부인 육영수가 있었다. 육영수의 손을 잡아 보려고 앞을 다투어 몰려들고 사인을 해달라는 아우성이 난리도 아니었다. 주최측은 육영수가 유세장에 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남편에게 알리지도 않고 대전에 와 남몰래 청중 속에 들어가 연설을 듣고 민심을 알아보려다가 눈에 띄고 만 것이었다.
연설은 5분 가량 중단되었다. 연설 중단이 미안한지라 할 수 없이 본부석으로 올라가는 육영수에게 청중은 박수를 보냈고, 박정희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1971년에는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청와대에서 문교부 관련 인사들의 모임이 있었다. 우연히 대통령 선거로 화제가 옮겨가 참석자 한 사람이 대통령 부인 이야기를 꺼냈다.
“각하께서는 사모님 덕을 많이 보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육영수 인기가 매우 높더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얻은 표의 30퍼센트는 우리 내자가 얻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보고를 받은 일이 있었다면서 박정희는 껄껄 웃었다.
그해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야당의 김대중이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한 일이 있었다. 김대중의 비서들은 그때 육영수가 김대중 부인 이희호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위로하고 쾌유를 빌어 주었다고 말했다.
육영수는 공식행사에 참석할 때 항상 두어 걸음 떨어져 남편을 앞세웠으며, 남편이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면 그 자신은 의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어디서나 자리에 앉을 때는 허리를 곧게 펴고 등받이에 기대지를 않았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대통령 부인의 공식 업무를 담당했던 청와대 제2부속실을 통하여 전해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 때면 후보들이 구미 박정희 생가를 찾아가는 것이 아예 관례처럼 되어 버렸다.
금년에도 마찬가지다. 구미 생가와 또 KIST나 산업현장 같은 곳을 배경으로 ‘경제’를 외쳐야 약빨이 먹히게 되어 있다.
너도 나도 박정희처럼 경제를 살리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므로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들이 모의토론회를 벌인 적이 있다.
모의토론회에서 학생들이 대통령 후보 대역을 맡아 한마디씩 하는데, 얼굴이 박정희를 닮았다는 후보가 “나는 키가 박대통령과 1센티도 틀리지 않는다”고 하자, 다른 후보가 이에 맞서 “나는 집사람을 육영수 여사와 똑같이 성형수술시키겠다. 내가 박대통령의 계승자답지 않은가?”라고 해서 폭소를 자아냈다.
요즘 대통령 후보들의 말을 들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만병통치 약장수가 따로 없다. 하긴 개울도 없는 곳에 다리를 지어주겠다는 것이 정치인들의 공약이다. 그들은 도깨비 방망이라도 두드려 온 국민을 소원성취시켜 대한민국을 천국으로 만들 판이다. 물론 국민은 그걸 곧이 곧대로 믿는 바보가 아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헛소리를 치는 것을 보면 삼겹살 얼굴을 가져야 정치를 하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모양이다.
박정희 시대가 국민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대통령 박정희의 사심없는 국가경영과 그 공적 때문이지만, 장기집권에 대한 정치적 저항과 부정적 평가를 상쇄하는 가치가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부인 육영수의 존재다. 육영수의 음덕이 작용하고 있다.
박정희는 욕을 먹어도 육영수를 욕하는 사람은 없다.
대통령 부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사람들이 꼭 육영수와 비교해 이러쿵 저러쿵 한마디씩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아예 ‘방콕’이 상책이라는 소리가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육영수처럼 성형수술을 하든 말든, 그런 식으로 국민의 환심을 사는 것은 자유지만, 육영수 때문에 대통령 부인들의 처신이 어렵다고 해서 그것까지 육영수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퍼스트레이디 육영수의 이미지는 여여(如如)하게 흐르고 있다. (*)
▣ 출판편집인 동화작가 김 인 만
= 작가의 저작권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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