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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달과 청계천

박정희 테마 에세이 中
김인만 작가 | 2007/12/24 17:13

미국 우주과학의 심장부인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로켓 발사하는 것을 지켜본 최초의 외국 국가원수는 한국 대통령 박정희였다.

1965년 5월 미국을 방문해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에 있는 케네디 우주센터를 시찰하면서 NASA 당국자의 브리핑을 들은 다음 때마침 아폴로계획의 일환으로 애틀라스 D형 로켓이 발사되는 것을 실제 육안으로 본 것이다.

그는 로켓 발사대로부터 약 4리 떨어진 중앙 통제탑의 좌석에 앉아 망원경을 통해 카운트다운부터 점화 광경을 지켜보았다. 지축을 흔드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육중한 로켓이 하늘로 치솟아오르자 탄성이 터졌고, 박정희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로켓이 사라진 창공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 1965년 5월22일 케네디 우주센터를 시찰하는 박대통령 내외. 미국의 우주과학 기술에 감탄하기에는 우리 국력이 너무 초라해 대통령의 표정이 밝지 않다. ⓒ김인만 서울포스트

그 자리에 동석한 주한 미국대사 브라운이 소감을 물었다.
“위성발사를 직접 목격한 국가원수는 각하가 처음입니다. 감상을 간단히 한 말씀…….”
그러자 박정희는 브라운의 요청을 묵살하고 우리말을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남의 나라에서 위성을 발사하건 말건 내가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있어?”
뜻밖의 반응에 주변의 수행원과 기자들이 당황했다.

로켓 발사를 지켜본 한국 대통령의 담화는 나중에 청와대 대변인의 작문으로 나왔다.
“오늘 아폴로계획의 일부인 애틀라스 D형 로켓의 발사를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무한한 기쁨이다. 미국 과학자들이 진지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모든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훌륭한 노력에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한다. 특히 월세계 여행, 새턴 5계획 등에는 놀라운 감동을 금할 수 없으며 이러한 계획이 하루속히 실현, 성공할 것을 모든 자유세계 국민들과 더불어 소원해 마지않는다.”

이런 외교적 담화와는 달리 실제의 박정희는 아주 싸늘해서 주변에서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미국의 우주산업에 감탄만 하기에는 국내의 산업 현실이 너무 처량해 울화가 치밀었을 것이다. 비가 오면 너무 와서, 안오면 너무 가물어 하늘을 원망하면서 농기계도 제대로 만들지 못해 기계공업이란 게 아예 없던 시기였으니, 자존심 강하고 민족의식이 불덩어리 같은 그는 자신이 더욱 독해져야 한다고 마음먹었는지 모른다.

이후 미국은 1969년 최초로 달에 인간을 보냄으로써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었다. 아폴로11호 유인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 것이 그해 7월20일이었고, 암스트롱, 올드린, 콜린즈 3명의 우주인들은 세계일주 중에 11월3일 한국에 왔다.

이들을 접견한 박정희가 암스트롱에게 물었다.
”첫발을 달에 딛기 전에 다리를 여러번 굽혔다 폈다 하던데 왜 그런 거요?”
“두꺼운 먼지층에 몸이 빠질지도 모른다는 일부 학설 때문에 먼지층의 유무를 시험하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올드린도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암스트롱이 먼지에 빠지면 건지려고 저는 그의 허리에 동여맨 줄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그때 혼자 모선(母船)에서 달 궤도를 돈 콜린즈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암스트롱의 달착륙을 못보았습니다.”
억울해 보이는 콜린즈에게 박정희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지상에서도 TV로 보았는데 달까지 가서 그것을 못보았소?”
그 바람에 모두 웃었다.
거기서 육영수는 우주인의 부인들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물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 남자에겐 큰 보람이 있겠지만 집에서 TV를 통해 이를 지켜보는 부인들은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어요.”
“그러기에 와이프를 동반하고 세계일주를 하고 있습니다.”
암스트롱이 웃으면서 말했다.

△ 1969년 11월3일 아폴로11호 우주인을 접견하고 있다. ⓒ김인만 서울포스트

이들 미국의 우주인이 달에 착륙할 때 우리는 집중 폭우로 경상도 지역이 극심한 수해를 입었다. 박정희는 열차 편으로 수해지역을 시찰하러 가다가 경북 청도군 청도읍 철로변 마을이 잘 단장된 것을 보고 새마을운동을 구상하게 되고, 김학렬 경제부총리를 축으로 하는 종합제철 전담반은 포항제철 건설을 위한 연구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야근하다가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아폴로11호의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하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보며 기운을 차렸다고 한다.

1969년 그해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백60달러. 5.16혁명으로 집권한 후 국민소득을 2배로 키웠지만 박정희의 국가건설 야망은 다급했다.

청와대의 우주인 접견이 있던 그 시간에도 서울공대생 6백명이 3선개헌 반대 데모를 하고 있었지만,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인 경부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었고, 또 전자공업이 막 태동하고 있었다.
미국의 우주개발 열기가 뜨거울 때 우리는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등이 시기상조라고 반대 여론이 비등했다. 박정희는 반대 여론을 뚝심으로 물리치면서 숨가쁘게 달려갔고, 반대자들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박정희의 국가건설에 대한 선견지명을 깨닫게 되었다.

2005년 10월 중국이 선저우(神舟) 6호 유인 우주선의 발사와 귀환으로 환호할 때 한국은 청계천에 수백만이 모여들어 감탄사를 연발했다. 세계 3위의 우주과학기술 보유국이 된 중국은 2017년에 달에 사람을 보낸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한국은 고작 청계천 복원에 흥분하는 것이었다.

꿈은 이상(理想)에 날개를 다는 것이다.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하고, 오늘이 아닌 내일을 내다보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개개인에게도 꿈은 소중하고, 국가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게는 꿈을 향한 야망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그래야 나라가 상승동력을 타고 솟아오른다.

지금 달에는 한국 대통령 박정희가 보낸 2백93자의 한글 메시지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아폴로11호를 보낼 때 각국 원수들에게 달에 남길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었다.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은 인류의 오랜 꿈을 실현시키고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장식하는 빛나는 업적이다. 우리는 영원한 자비의 상징이며 우리 마음의 참다운 거울인 달에 도달한 이날을 인간의 정의와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단결하여 살 수 있는 문명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신을 가다듬는 일로써 기념하여야 할 것이다.

달에 남긴 이 메시지를 한국 우주인이 가서 확인하는 날은 언제쯤일까.

국가산업 전반을 탈바꿈시키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것이 우주과학이다. 달여행의 우주선은커녕 항공기 제작도 꿈꾸지 못하는 건 전적으로 지도자를 못만난 탓이다. 일본이 과거에 트랜지스터 팔아서 재미보았듯이 지금 우리가 휴대폰이나 반도체 제품을 외국에 파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비전이 없다.

“먹고 살게 경제나 살려달라.”
“취직이나 시켜 달라.”

민생의 하소연은 한국이 이미 상승동력을 상실한 지 오래임을 말하고 있다.
비전 없는 잔챙이 지도자들의 권력 행진이 한국의 상승동력을 앗아갔다.
청계천 물놀이에 젖어서는 여전히 달은 계수나무와 토끼가 있는 꿈나라일 뿐이다.
개천에서 용났다고 환호하는 오, 대한민국, 지지리 복도 없다. (*) (김인만)

▣ 출판편집인 동화작가 김 인 만
= 작가의 저작권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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