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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는 일하고 또 일했다”

박정희 테마 에세이 中
김인만 작가 | 2008/02/21 19:14

“후손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일하고 또 일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1970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이 지금의 광화문 정부 중앙청사를 준공하고 벽면에 새겨넣은 글의 내용이다.

1970년 12월23일 정부 중앙청사 준공식 테이프 커팅 ⓒ김인만 서울포스트

중앙청사가 준공되던 그해 1970년엔 역사적인 새마을운동의 깃발이 오르고 영일만에 포항제철을 착공했다. 또 경부고속도로 전구간이 개통되어 전국을 1일생활권으로 좁히면서 국가성장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국내외에서 한결같이 불가능하다고 빈정거려 진정 꿈만 같았던 수출 10억달러를 달성, 관계 장관이 “각하, 지금 10억달러를 돌파했습니다”라고 감격의 보고를 올렸었다. 또 한글의 컴퓨터화가 이루어지고 대학입시 채점이 전산화되는 등 공공 부문의 현대화 작업들이 빠르게 진척되었으며, 국가 살림을 보면 재정과 국방비 자립도가 90% 안팎에 이르러 비로소 보릿고개를 넘어 ‘독립국’의 면모를 갖추는 등 일련의 획기적인 변화들이 그해에 이루어졌다.

그 중심에 중앙청사가 있었다. 중앙청사는 유류파동 때 전등을 형광등으로 바꾸어 절전을 하면서도 청와대와 더불어 대통령 이하 공직자들이 역사와 조국 앞에 아낌없는 열정을 쏟았던 국가건설 시대의 사령탑이었다.

그러던 것이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IMF 회견과 서명이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빛이 바래지더니 이번에는 화재로 수난을 겪고 있다. 숭례문을 화재로 잃은 지 얼마 안되어 더욱 충격적이다.

남대문로와 세종로 일대는 국가의 심장부다. 정권 교체기에 길조는 안 보이고 국가의 심장부가 시커먼 상흔으로 얼룩지니 자꾸 불길해지는 느낌이다. 북악산 산신령이 노했는가. 고사라도 지내야 하는 건가.

모든 세상일이 이치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과학적인 사고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비합리적인 믿음으로 해석하려 한다. 숭례문에 이은 중앙청사 화재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든 대상을 향한 경고일 것이다. 더 무서운 재앙이 오기 전에 정신 차리라고.

중앙청사 화재가 30분만에 진화되고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이라지만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숭례문과 중앙청사의 화재는 국가관리의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공직사회의 보이지 않는 직무유기는 국가적 범죄다. 최고권력자는 곧 최고의 책임을 지게 되어 있지만, 시시콜콜한 정치문제까지 왈가왈부하면서 숭례문 화재에는 말 한마디 없는 대통령을 들먹이고 싶지도 않고 그저 물러가면 기억에서 지우고만 싶은데 왜 이리 끝끝내 흉흉한 사고를 꼬리에 달고 휘젓는지….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청사 벽면에 새겨진 글을 보고 있다. ⓒ김인만 서울포스트

학교에 무서운 선생이 있듯이 대통령도 때로는 무서워야 한다. 원칙과 책임에 엄격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공직사회의 기강에 잘잘못을 분명히 따지는 긴장의 짜임새가 없으면 국가관리에 삐걱 소리가 나게 되어 있다. 공직사회가 이 모양이니 국민이 생업 팽개치고 공공기관에 보초를 서야 하는 게 아닌지….

국가 체면이 말이 아니다. 숭례문과 중앙청사 화재는 볼썽사납게 추락한 국가 품격을 말해주고 있다. 국가의 심장부가 자꾸 음울하게 보이는 것은 새로운 대통령과 그 언저리에서도 국가 품격의 회복을 기대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권력이나 새 권력 모두 억세게 재수가 없다.

광화문 중앙청사 화재는 그것이 세워진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도록 우리 정치와 국가관리 시스템 등이 얼마나 진화했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진화는커녕 지금의 정치인들이 갈라파고스섬의 원시동물들을 보는 것 같다면 지나친 말일까.

겪어봐야 할 일이지만, 새 대통령이 살아온 역정과 처세, 심각한 도덕적 결함을 보면 새 정권도 싹수가 보이지 않는다. 좌파정권 동안 헝클어지고 흩어지고 꼬여버린 경제적 사회적 현안을 뒤치닥거리하기조차 벅찰 노릇인데, 새 정권의 장관 내정자들이 재테크에 능한 부동산 부자들이라니 어쩌면 그렇게 ‘이명박과(科)’들만 불러 모았는지…. 또 5년의 과도기 정권밖에 안되는 푼수에 국가경영과 통치철학의 진정성을 어찌 바랄 것인가.

경제만 외친다고 국가가 발전하는 게 아니다. 경제성장은 지난날의 키워드였다. 지금 이 시대가 미래를 향해 추구해야 할 것은 단순한 경제가 아니라 품위있는 국가성장이다. 그것이 선진화로 가는 길이다. 문화마인드가 없고 국가관, 역사관이 빈곤한 대통령이 경제만을 외치는 선진화는 속임수에 불과할 뿐이다.
‘개구리’니 ‘땅바기’니 대통령을 비방하고 조롱거리로 희화(戱畵)하는 것은 불행이지만, 천박한 정치판의 블랙코미디가 먼저 종식되지 않는 한 비뚤어진 세태만을 탓할 노릇은 못된다.

중앙청사가 있는 광화문 앞은 역사의 숨결이 흐르는 곳이다.
“후손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일하고 또 일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자화자찬의 미사여구가 없다. 지도자의 진솔한 고백을 듣는 것 같다.
지난날의 자긍심과 사명감의 공직사회, 그리고 역사를 이어가는 국가경영에 의한 일류국가의 꿈은 먼 그리움이고 기다림이다. (*)

▣ 출판편집인 동화작가 (김인만)
= 작가의 저작권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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