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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난 발표 글 모음 1 ('징기스칸과 파블로 파카소' 外)(1~5편)

양기용 기자 | 2005/12/26 00:09

5. [칼럼] 마이너스 손에서 마이더스 손으로
장기적 경기침체=정치력 부재, 예측 가능한 건강한 사회로..
양기용 기자, 2005-06-01 오전 1:42:19

5월 말일자 조.석간 대부분 일간지의 톱기사는 '장기적인 경기침체 우려'에 정치력 부재를 양념으로 얹어 놓았다.

누구를 탓하고 있는가

참여정부 들어서 서민들의 허리띠는 한번도 넉넉치 않았다. 그때마다 이 정부는 '망가진 것은 내 탓이 아니다.' '살이 피둥피둥 찐 늑대가 오고 있다. 굶주린 국민들이여! 조금만 참다가 잡아 먹자.'는 식으로 웃지 못할 양치기소년 처럼..사실상 민초들을 기망해 온 것이 아니던가? 남의 탓으로만 돌리기에 급급한 참여정부..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 마다 서민들을 향하여 한단계 낮아질 삶의 형태를 미리 준비하라고 경고해 왔었다. 며칠전에는 친구랑 즐겨 찾은 '주경야돈(豚)'이라는 고기집이 문을 닫았고, 오늘은 '맥주(酒)날드'라는 호프집 셔터에도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펄럭인다. 수년 안에 '죄송합니다'라는 안내문이 곳곳에 만국기처럼 휘날리지는 않을런지..심히 염려스럽다.

올해 1/4분기 경제성장률이 1.6(미국 3.5, 일본 5.3)%라는 공식발표가 있었지만, 동 기간의 물가상승률은 3.3%로서 세계4위를 기록했다. 각종 지표를 단순 비교한다는 것이 약간의 왜곡 가능성도 있겠지만, 어쨋든 결론은 수익이 지출을 막아낼 수 없는 마이너스의 가계 구도가 북핵과 관련된 지정학적 리스크와 더불어, 각종 직.간접세에 대한 부담까지 겹쳐 미래를 예측 불가능한 사회로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회란 - 예측 가능해야..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열심히 일하여 저축을 하면 몇년 후에는 자그마한 집이라도 한채 장만할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었다. 그때의 호시절을 놓고 마치 '무인시대'로만 폄하 하려는가? 몰상식한 지식인들이 책상머리에서 앉아 주판으로 튕겨대는 경기지표 아래서 민초들의 가치는 혼돈으로 변질되 버렸고 상실된 밥상머리 교육은 이혼률 세계 1위라는 오명을 기록하진 않았는지..이혼률 세계1위도 군사정권 시절의 3S정책 탓이라고 말할 것인가?

국민은 비겁한 통수권자를 원하지 않는다. 너무 용감해서 무자비하게 동족을 향해 총질하는 통수권자도 원하지 않는다. 국민은 눈물을 찔끔거리는 지도자보다도 정확한 말로 당당하게 외치는 신념과 용기에 찬 지도자를 원한다.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 말한 노대통령의 TFT방식을 만담으로만 보아 넘겨야 할 것인지..실로 기가 찰 노릇이다. 많은 이들로 부터 조롱거리가 될바에는 차라리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물러나야 할 것이다.

마이너스의 손에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노무현 참여정부, 집권 2년을 넘기고 있음이다. 그동안 참여정부에서 손으로 저어댄 갖은 정책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음이다. " 많이만 거둬 들이면 된다 "는.. 땅짚고 헤엄치기식의 셈법이야 누구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이제라도 노무현 참여정부는 무작정 치고 박는 모습의 유아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장미의 계절인 6월이다. 노무현 참여정부, 시바(힌두교, 파괴의 신)의 손 보다는 마이더스(희랍, 부의 왕)의 손이 되기를 간절히 주문한다.

2005-06-01 오전 1:42:19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편집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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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칼럼] 줄기세포에는 줄기가 없다
인류 비보편적 적용 과학은 샤머니즘에 다름아니다
양기용 기자, 2005-05-30 오전 1:00:36

인간은 도대체 몇 살까지 살 수 있을 것인가!

창세기 기록을 보면, 인간의 수명은 7~800살이 보통이다. 노아가 777년을 살았고, 그가 500살때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그후 하나님은 죄악의 인간을 120세로 만들어 놓았다. 과학의 눈부신 발달과 생명연장의 꿈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창세기 시절 7~800살에 비한다면 125살이라는 현대과학의 한계는 당시와 비교해선 유년기에 해당하는 보잘것 없는 생명체라 할 것이다.

메치니코프가 유산균을 발견해서 노벨의학생리학상을 받은지 97년 만에, 황우석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고통 받는 인류에게 희망의 빛을 선사하고 있다.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국가 위상도 레벨업 시킨 그의 연구업적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황교수의 연구업적이 하루라도 빨리 실용화되어 인간에게 주어진 생의 시간 안에서 건강한 삶을 누리다 영면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미국의 알코어사에는 100여명의 얼음인간이 미래의 의학발전을 꿈꾸며 잠자고 있다. 그들이 깨어나 과학의 혜택을 누리고 다시금 건강을 찾아 즐거운 생을 살때 쯤이면, 여든살된 손자가 그에게 솜사탕을 사달라고 재롱을 부릴 것이다. 그가 또 다른 병을 얻게 된다면, 영하 196도의 냉동창고로 들어가 버리면 될 것이다.

그러나, 도둑이 경찰의 수사시스템을 앞서 가듯이 병 또한 의학을 앞지른다. 한종의 병이 의학에 정복될 쯤이면, 과학적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듯이 신종 병인을 퍼뜨리는 것이다.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쫓아가도 병은 결코 정복될 수 없을 것이다.

탄생된 우주는 무질서를 향해 간다. 시간을 예견할 수 있는 '인류''만이 우주에서 유일한 질서유지자라고 자처하지만 식물의 광합성과 생장이 열역학 제2법칙을 따르는 예로 볼 때, 인간도 그 카테고리를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이다. 이 점에서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어떤 사람이 유전자 변형 농산물의 치명적 부작용을 예로 들면서 '나는 황교수의 연구혜택을 거부한다' '바벨탑을 쌓는 부박함을 관둬라'는 외침에 공감하는 것이다.

나는 황교수의 연구혜택을 거부한다.

과학이 권력과 돈을 앞세운 특수층의 전유물로 전락할 개연성이 있다면 이는 과학의 진보가 아니라 신무기의 개발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인류에 적용되지 못하는 과학은 결과론적으로 샤머니즘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황교수의 효과를 미래가치로 설정하여 천문학적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아직 선진국가에서조차 신중한 자세로 접근함인데, 굶어 쓰러져가는 노숙자는 안중에도 없이 잔뜩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여 있는 것 같아서 왠지 씁쓸하다.

칼의 양날을 충분히 검토해야 할 시기이며, 니트로글리세린의 조합으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의 고뇌까지 생각해 봐야 할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빈곤한 철학만을 세계만방에 휘날리고 있지는 않는지? 황교수의 연구물에서, 한 개인과 한 국가의 자부심에 앞서 인류에 미칠 비인간화의 개연성이 충분히 예견되고 있음이다. 정부차원의 대대적 홍보에도 불구하고 선뜻 눈가지 않음은, 어쩌면 하루 수십억명이 마셔대는 100원짜리 요구르트 보다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지속될 흥미꺼리

킹콩이나 고질라의 해프닝은 인류의 이완된 정신에 긴장을 주었다. 반드시 죽여야 하는 선행 생명체에 대한 연구 실험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미,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체세포복제행위를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으며 낙태를 반대하는 천주교 유관 단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산업혁명에 비견된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부시는 또 반대의 깃발을 들고 있다.

1952년 미국-개구리복제, 1978년 영국-시험관 아기 탄생, 1997 영국-복제양 돌리 탄생, 1998년 미국-수정란 인간배아 줄기세포 성공. 2005년 한국-인간체세포 배아줄기세포 성공...임상실험을 거쳐 10년 후 공식 치료 가능.

29일 AFP연합에 따르면 미국 연구팀이 난자없는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뉴사이언티스트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제 손가락을 잘라 땅에 묻으면 똑같은 사람이 생겨날 날이 코앞에 와 있는 것이다. 황교수 신드롬으로 우리가 윤리성이냐 ? 상업성이냐?로 논란하고 있는 사이에, 세계 곳곳의 과학자들은 또다른 흥미있는 연구들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2205년 설날, 내 나이 246살. 여든살 먹은 고손자가 에어로 새턴으로 도착해서 태극무늬 한복차림으로 세배를 할 것이다. 손주며느리는 지난 달에 냉동창고에 들어갔을 것이며, 모래가 자기 증조할아버지 100번째 맞는 기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이구! 머리야!

2005-05-30 오전 1:00:36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편집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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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칼럼] '징기스칸'과 '파블로 피카소'
'징기스칸'의 노래 속에는 세계의 중심이 함께..
양기용 기자, 2005-05-27 오후 12:27:01

1979년 독일에서 결성된 징기스칸은 스웨덴의 '아바'나 미국의 '보니엠'을 염두한 그룹으로,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 선을 보였지만 입상은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독특한 음악적인 성향과 고전을 통하여 비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그의 몇장 앨범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독일의 문예부흥을 외치듯 결성되어 일대기가 영화로도 만들어 진 바있는 '밴티드'나 '헬로윈' '스콜피언'등이 그렇듯이, 세계사의 뒷전으로 밀려난 전차의 나라 독일과 팍스아메리카의 창궐이 21세기들어 더욱더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들의 노래 속에는 '로마' '마추피추' 'YMCA' '파블로피카소' '모스크바' '우리는 사랑한다' '이스라엘' '피스토렐로' '징기스칸' '로렐라이'등.. 세계의 중심이 함께 한다.

그들이 로마를 부를때 나는 오드레이헵번과 함께 했었고, 그들이 징기스칸을 노래할 때 나는 그와 함께 말을 타고 몽고의 광활한 초원을 달렸다. 잃어버린 문명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덧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서 있는 것이다. 지친 여정에서 내 안의 피카소를 꺼내 본 때도 있었다.

처음엔, 피카소가 초현실주의를 완성한 대작<게르니카>로 유명한 줄로만 알았다. <아비뇽의 아가씨들><꿈>에서 "과연 천재란? '이렇다'"는 일성으로 그를 마무리 했다. 아들을 기르면서 (설령 고슴도치 새끼일지라도) 너무나 잘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보아도 '이 놈은 참 잘 생겼다'. 6-7세를 거치면서 아들의 모습을 어떤 그림에서 꼭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지난 가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갔을 때 수십년 전의 그 기억과 작가가 비로소 매치된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바로 피카소와 그의 그림이었다.

그렇다. 내 젊은날, 피카소의 인물화에서 난 아주 사실적으로 예쁜 소년의 얼굴을 보았던 것이다. 분명하다. 초기 피카소가 그린 '말(馬)'의 그림에서 화폭을 찢고 나올 듯한 사실감을, <목탁 위의 정물>에서 먹음직한 사과가, <올가의 초상>에서 관능을 보았던 것이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피카소가 더욱 피카소다운 것은 게르니카 가 아닌 '정물'이었던 것이다.

군주란? 백성에 대한 사랑을 숨길 수 없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Can't Hide My Love'처럼, '칸'그룹이 아직도 노래한다면 좀더 책임있는 인류애를 노래 불러야 한다. 피카소가 진정한 천재라면, <한국의 학살>만 그릴 것이 아니라 물장사 보다 기름장사가 훨씬 낫다는 노무현정부 아래서 이유도 모른채 쓰러져 가는 죄없는 빈민도 그려내야 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대한민국의 비정한 현실을 노래하지 못했고 그려내지도 못하고 박제 되었기에, 나에게 있어서 그들은 한낱 '보헤미안'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2005-05-27 오후 12:27:01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편집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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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칼럼] 공평한 것이 불공평한 것인가?
눈의 자(尺)로는 사물을 과대.과소 평가하기 마련..
양기용 기자, 2005-05-23 오후 1:55:16

일생을 살아가면서 사람이란 직업에서 오는 신분이나 사회가 공감하는 직책에 의해 '자격'이라는 것이 주어진다. 권리와는 사뭇 다르지만 그 획득된 자격에 의해 의무감도 따른다. 바꿔 말하자면 의무를 얼마만큼 수행할 능력이 있느냐에 따라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하면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총을 쏠 능력이 있느냐에 따라 군대갈 자격이 주어지고 세금을 낼 능력의 여부에 따라 사업을 벌일 자격을 국가로부터 부여 받는 것이다. 돈이 필요하지만 이자 낼 능력이 없으면 은행을 강탈하는 수 밖에 없다.

80년대부터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신용카드 사업이 시작되었다. 개인의 신용에 따라 물건의 외상구매도 가능하고 어느정도의 현금도 일정기간 빌어 쓸 수 있는 만능 플라스틱판이었다. 맥가이버 같다기에 산속에서 수염을 기르고 생활하는 나에게는 별반 필요가 없었으나 효험을 체험하고 싶어서 읍내 은행창구의 친구를 찾아간 적이 있다.

대출의 담당하고 있었던 그였지만 동창들 사이에선 그 대학 나와서 출세한 녀석들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다. 학창시절만 생각하고 그 녀석에 가서 "그 좋은 거 하나 만들어 달라"고 꼿꼿이 말했다. 당연히 들어가서 차 한잔 얻어먹고 목적도 달성할 줄 알았는데 녀석에세서 돌아오는 한마디는 "너는 자격이 없다"였다.

30줄에 나도 은행에 공채되었다. 사실은 경기 팽차기 덕분에 직장은 주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요 영업점포를 거쳐 본사 기획부서로 전보될 때까지 그 요술카드가 자그만치 15개나 되었다. 안쓰는 카드를 자르면서 문득 오래전 친구로부터 들었던 한마디가 떠올리며 콧날이 시큰둥했던 적이 있다.

간청하는 것과 간청받는 것의 차이는 무한대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의 본질에는 하나의 차이가 없었음이 나를 슬프게 만든 것이다. 그 시절에도 나는 '나'요, 지금도 나는 '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어느날 새치를 보고 흠칫 놀란 시간을 겪었고 좀 더 낮아져 널리 세상을 보고자하는 마음이 새로 자리한 것 뿐이다.

우리들은 일상에서도 쉽게 누군가를 내몰고 무엇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단체도 많아졌고 소위 '빠'라는 정치적 팬클럽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념성까지 발전시키지 않드래도 세상이, 또 거기에 함몰된 우리가 친구를, 애인을, 이웃을 너무 쉽게 나눠버리지 않는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2005-05-23 오후 1:55:16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편집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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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럼] 철길, 철로, 기찻길에 서면
사람이든 이념이든 결국은 함께 가는 세상이기에...
양기용 기자, 2005-05-23 오후 1:37:11

봄이 되면 철길 위에 출렁이는 아지랭이가 현기증을 일으킨다. 오후의 나른한 시각일수록 더해가 어쩔 때는 눈부심으로 꼭 쓰러져 버릴 것만 같은 몽롱함까지 준다. 끝이 가물거리는 철길위에 눈을 대보면 저어기 어디선가 두 선이 만나 보인다.

거기까지 소나무를 나침반삼아 걸어가면, 팽야 그만큼 길을 더 걸어야 만날 걸로 보인다. 저녁 때가 되서야 너무 멀리 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서둘러 철길 옆 도로로 내려와 뛰기 시작한다. 마을 어귀에 당도하면 지붕위 굴뚝에서 연기가 뽁뽁 피어 오르고 이집 저집에서 우리들 이름 부르는 소리가 초저녘 하늘을 가른다.

기차길 가게 앞마당이 우리 놀이터다. 가끔식 그 철길을 다정하게 걷는 연인들을 목격하곤 한다. 데이트 코스로는 철길만큼 좋은 데가 없다. 가지런히 같은 간격으로 놓인 침목을 같은 발로 밟노라면 보폭이 틀릴 수 없고 호흡도 다를 리 없다. 해묵은'工'자 건네 뛰기라도 하다가 실수하면 꿀밤맞기로 스킨쉽이 자연스레 이루어 진다. 아이잉...소리가 필요없어지는 것이다.

늘 해오던 장난끼라 대장은 또 조를 짜 보낸다. '니들은 그 쪽 다리 밑, 느그들은 쩌그 산모퉁이, 오늘은 확실히 보고와라...' 철길에는 지름길이 있을 수 없지만 우리는 더 빨리 샛길을 달려 그 자리를 지킨다. 그들이 지나는대로 돌아오면, "오늘 거시기는 먼 색이더냐?" "예, 희칸색입디다" "음...쩝쩝...."
햇빛이 눈을 찔러 다리 위를 걷는 그들의 은밀한 곳을 보지 못했어도 우리는 입맞춰 맘껏 허풍선이가 되곤했다.

우리들도 검숭검숭 씨알이 굵어져서 동네 가시네들하고 그 길을 나란히 걸어보니 알겠더라. 뭐가 물컹거림을 느끼면 깜짝 놀라 얼굴이 화끈거리고 며칠을 끙끙 열병처럼 앓기도 했다. 그렇다. 하늘 아래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같이 디뎌 가고, 길 위에서 넘어지면 손 내밀고, 지치면 등 엎어주고, 함께 쉬엄쉬엄 같은 길을 이유도 모른 채, 알 수 없는 데로 가는 거다.

다투다가도 같이 가니까 가는 거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는 거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렇게 같이 갔기 때문에 가는 거다. 그 길을 타고 순천으로 하동 마산으로 삼랑진서 대구까지, 찐계란을 까먹고, 다시 김천으로 영동 대전으로 광주로 몇 해를 돌았다. 끈끈한 목소리가 차칸에 가득하면 고향에 다 오구나, 낯선 목소리가 차면 타향이구나....

그러나 가끔 회상해 보면 내가 헛돌았다는 생각 뿐, 저들은 까딱 없는데 나만 돌았다는 허탈. 아직도 남도는 호남의 목소리요, 쌍도는 영남 소린데 나만 어느곳에도 어울리지 못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따라 그 길이 그립다. 평행선이라고도 할 수 없는 - 나란한 두 길 가운데 서면 끝이 가물거리는 저 어디선가 사람이든, 이념이든 두 선이 꼭 닿아 보인다.

그 시절의 홍조 띤 얼굴은 사라지고, 치열하지도 못했고 깊은 성찰의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세상에 밟혀, 사람에 치여, 그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 느껴지는 즈음. 그때는 만날까 싶어 뛰어 갔던 그 길이지만 오늘 거기 서면 신기루를 보는 것처럼 그냥 고개 끄덕이고 싶다.

2005-05-23 오후 1:37:11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편집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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