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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난 발표 글 모음 3 ('사랑하는 나의 주홍글씨' 外)(11~15편)

양기용 기자 | 2005/12/26 00:34

15. [칼럼] 사랑하는 나의 주홍글씨
'전인권!' 은주가 망각의 강을 건널 때까지 주둥아리 닥쳐라
양기용 기자, 2005-06-22 오전 1:54:04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미국, N.호오돈, 1850)

영국에서 이주해 온 청교도의 근거지 보스턴에서 있었던 불륜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나이 지긋한 의사와 결혼한 젊은여자 '헤스터 프린'은 남편 먼저 미국으로 건너와 사는데 남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 사이에 '펄'이라는 사생아를 낳게 된다.

그 사실이 알려진 '헤스터 프린'은 죄의 댓가로 공개적으로 가슴에 'A(adultery)'자를 달고 일생을 살라는 형을 선고 받는다.

그 상대는 가까운 곳에 사는 목사 '아서 딤스데일'이었다. 딤스데일은 심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에게 죄에 대한 두려움을 설교하는 이중적인 생활을 계속한다. 그는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몸도 점점 쇠약해 진다.

한편, 헤스터의 남편은 이 사실을 알아내고 목사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사건이 발생한지 7년 후에 새로 부임한 지사의 취임식 날, 설교를 마친 목사는 처형대에 올라, '헤스터'와 '펄'을 가까이 불러 놓고, 그녀의 가슴을 헤쳐 보인다. 그녀의 가슴에 새겨진 'A'자를 보며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만다.

어둡고도 금욕적인 청교도인들을 중심으로 죄의식에 시달리는 고독한 인간의 심리를 잘 그려냈다. 프로이트 이전이었으니 소설적 심리주의가 창궐한 17세기 미국사회의 단면을 보는 걸작이다.

'사랑과 증오'의 열정은 근본적으로 하나다. 그 둘이 유기적으로 작용하면 친밀감과 이해심을 높이며 애정과 정신생활에 건전한 양식을 갈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증오도 목적을 상실하면 쓸쓸해 지는 것이다. 광채 속에서 빛날 때 사랑이요, 어둠에 내려 앉으면 증오인 것이다. 영적인 세계에 이르고서야 비로소 '증오와 반감'이 '사랑'으로 승화되는 것이다.(본문중)'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푸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면 시간의 '파괴작용'에 의한 인간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자신의 기억과 지성으로 그 시간을 유추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적만이 그 시간을 보상한다"고 썼다.

그는 덧붙인다. "공간의 기하학이 있듯 시간의 심리학이 있다. 시간은 흐르고 만물은 유전한다. 개인도 여러 경험을 쌓으면서 시간의 흐름과 그 잔인한 파괴작용을 느낀다. 인간은 시간에 조종되는 괴뢰이다. 여기엔 오직 기억력만이 대결한다"

크린턴은 르윈스키를 꺼낼 때, '노' '네버' '낫씽'으로 일관했다. 추문이었던 치부를 쉽게 드러낸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굴레를 벗느냐?, 벗지 못하느냐?'는 개인 양식의 문제이고 시대상일 것이다.

주홍글씨와 크린턴이 150년의 세간을 두고 미국사회의 일면을 조명 받았지만, 진행의 양태는 시대와는 무관하다고 본다. 다만 개인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우리의 전직 고위층들에게 '궁녀론'이 있었고, 한편에서는 '사생아 논쟁'이 공중파를 탔던 웃지 못할 현실도 있었음을 돌이켜 본다.

2004 주홍글씨(이은주 주연)

요즘, '나는 이은주를 사랑했다(본지 6. 16일자)' '나는 레옹이었다(연합뉴스 6월 15일)'는 등, '우정이다, 사랑이다'로 말 많은 한 가수를 본다. '레옹이냐? 딤스데일이냐?'를 놓고 자기 입으로 배설해 놓은 말 때문에, 하루아침에 공공의 적이 된 너저분한 모습( 그 본인 표현)의 가수가 아직 살아있는 듯한 이은주를 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은주의 죽음 앞에, "참으로 안됐다"는 정도로 요즘의 힘든 삶 때문에 애써 그의 죽음도 간과해야 했다. 전도가 유망한지, 무슨 영화로 데뷰했는지, 내가 알 꺼리가 아니었지만, '우울증'이란 사망원인 때문에 잠시 우울했을 뿐이었다.

전인권이는 입 닥쳐라!

전인권이라는 한 가수가 그의 자서전 판매시기에 맞춰 뻔뻔스럽게 이은주를 회자하는 모양이다. 아직도 土化하지 못한 앳띤 소녀로 하여금 무엇을 말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귀둘리면 딸의 숨결이 느껴져 마르지 못한 눈물을 훔쳐내고 있을 그녀의 부모에게 어떤 동의를 얻고자 함인지?

이번 네티즌들의 '전인권 멍석말이'를 두고서 그와 가까이 했던 몇몇 지인들만 두둔했지 아무도 그의 언동을 질타하지 않는 것 같다. 마이클 잭슨을 구하고자 수많은 동료가수가 참여했던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이는, 망자를 끝까지 예우해 주지 못한 살아있는 새끼들의 병적인 잡담일 뿐.. 진실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반증함이 아닌가!. "은주가 망각의 강을 건널 때까지 주둥아리 닥쳐라!.. 전인권!!!"

나의 주홍글씨

학점에 F가 주렁주렁했는데도 죄에 대한 내 가슴 속 'A'는 트리플이 아니라 더블 트리플'A'를 새겨도 한없이 부족하다. 부모앞에, 여성앞에, 동료앞에, 사회앞에..아무리 스스로를 징계하고 하늘의 죄사함을 받는다고 해도, 내 스스로 내 가슴에 새겨 놓은 'A'자는 오늘도 선명하다.

죄는 자신의 가슴속에서 자라고 시간의 파괴작용과 함께 소멸한다. '나는 죄가 없다'고 한들 그 외침 자체로서 나는 이미 죄를 지은 것이다. '얼마나 슬기롭게 소멸하는냐'가 언제나 나의 몫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005-06-22 오전 1:54:04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편집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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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포커스] 양계장의 씨암탉, '박근혜'
설문조사, 인공부화가 種의 운명을 바꾸었다?
양기용 기자, 2005-06-20 오후 1:14:54

계장 유감

내가 전에 다녔던 회사에는 대리, 차장, 부장(지점장)이라는 직제만이 존재했다. 소령, 중령, 대령만큼이나 간단하고 권위있는 체제여서 의사소통은 급행열차였고 결재라인도 간단한 만큼 책임소재가 확실했다.

그런데 구성원이 늘고 인사가 적체되다 보니 실용적인 호칭을 두게 되었다. 대리 밑에 계장, 차장 밑에 과장, 지점장 밑에 부지점장이라는 것. 대리시험에 몇 차례 떨어진 내가 평사원 노총각으로 ACS운영팀을 맡게 된 적이 있었다.

여직원만 15명으로 구성되어서 "좋겠네!"라며 직원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 팀은 당시 사내에서 뭇 남성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썩 달갑지 않은 곳이었다. 우선, 여성군단을 일사분란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나로하여금 극한의 평정심을 요구하였다.

실적만을 강조하다가는 "우리가 닭인가요?"라는 여직원들의 이유있는 반란에 몹시 당혹해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한바탕 웃음으로 넘기곤 하였다. 왜냐고? 내 직책은 양계장의 '장'이었으니까.

양계장 닭과 씨암탉

달걀반찬이 그렇게도 부러웠던 시절. 암닭이 알을 품고 싶어서 "골골" 소리를 낼 때면 아버지는 선반에 모아 두었던 달걀을 스무개쯤 둥지안에 넣어 두셨다. 씨암탉은 모이도 먹지않고 1주일이건 2주일이건 체온과 발놀림으로 알을 품는다.

21여일 쯤 되면 어미가 쪼아 준 알껍질을 깨고 병아리들이 나온다. 따스한 봄날 청명한 하늘가엔 노고지리가 울고, 병아리가 삐약거리는 시골 마당과 텃밭은 온통 신기함으로 가득했다.

며칠 늦게 부화된 새끼오리들은 비오는 날에도 연신 물속에서 첨벙대며 신나게 논다. 이를 본 어미닭은 위험신호를 보내지만 아랑곳 없이 잘도 노닌다. " 꽥! 꽥!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세월이 지나, 양계장의 닭들이 시골 5일장터에 차떼기로 쏟아짐을 끝으로 씨암탉도 아득한 전설이 되고야 만다. '인공적으로 부화된 양계장' 그러한 양계장의 닭이 "골골"거리며 알을 품어도 알이 그 품에서 부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미없이 태어난 닭은 새끼를 만들지 못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한 동물의 종의 운명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씨암탉

요즘 서울뉴스에서 차기 대권자를 점치는 판을 벌여 놓았다. 아직 여러 경우의 수를 빼고 시행하지만 그래도 흥미를 끄는 것이 한나라당 박근혜대표가 1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야 비극적인 가족사를 안고 있는 그녀를 한없는'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지만 뒤돌아보면 '독재자의 딸'이라는 일부의 험담 또한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박혁거세'같지는 않더라도 "처녀로서의 박대표가 과연 알을 품어 병아리를 생산해낼 수 있겠는가?"가 관심의 요체일 것이다. 이탈리아의 포르노배우 '치치올라'가 국회에만 입성하였던 예와는 달리, 수녀와도 같은 박대표는 국회를 넘어 대권까지를 계산한 걸음마를 걷는 것 같다.

몇차례 호남을 방문한 것을 두고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뻔뻔함과 계산 속'으로 치부하려드는 시각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원만한 그녀의 이미지를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동안 '모' 아니면 '도'식의 호남인의 선택에 고민을 던져 준 측면에서는 한국의 정치사적 발전을 보아서도 다행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철의 여인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들은 영국의 前 수상 '대처'만큼의 지지를 누리진 못한다 손 치더라도, '에비타'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한다 손 치더라도, 가냘픈 몸으로 거대 야당을 이끈 그의 수완에서 현정부의 절반이 지난 것처럼, 이미 그녀도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것으로 보인다.

향후, 우리들은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구를 선택하든지 온전하게만 평가하면 될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만큼이나 그녀에게 따라다니는 수많은 말들을 일시적인 '붐'이나 '깜짝쇼'에 묻어버리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지나온 역사 속에서 그러한 것들이 정작 우리 서민들의 삶속에서 "얼마나 큰 패악질의 누를 확대재생산시켰는가?" 는 신물나게 체득한 바 있음이다.

우리들의 부끄러운 짓. 이제는 그와같은 일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또다시 후세에 유전되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본다. 본사의 설문조사가 참으로 흥미진진 함의 연속이다.

2005-06-20 오후 1:14:54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편집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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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포커스] '빌리 오션'과 함께 한 우주여행
우주속 나는 외롭다. 컴퓨터라도 가져올 걸..


어제밤

나는 일에 지쳐 잠시 우주여행을 했다.




달에서 본 지구와 태양계를 구경하고 성운을 거쳐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계를 바라 보았다. 너무 아름다운 우리의 은하계...

소위 나의 '자유로운 멍~상법'인데, 그 멍상이라면 난 '티티카카 호수'도 가고 '이스터 섬'도 곧잘 간다. '타히티'도 멀지 않으며 남극도 지척에 있는 것이다.

우선 아홉개가 들어 있는 은하계를 담았다. 우주에는 이런 은하계가 수 천억개가 있다고 한다.




지구가 속한 은하계

달에서 본 지구와 태양계를 구경하고 성운을 거쳐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계를 바라 보았다. 너무나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우리 은하계.

많은 사진들을 마음에 담고 내일의 스케쥴(전쟁기념관 가는 것) 때문에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어 부산을 떨면서 나는 'Billy Ocean'의 LP판에 카트리지를 올렸다. 'Get outta my dreams, get into my car'가 시작된다. 자동차 키를 트는 소리 - 끼리리리릭..., 시동켜서 액셀 밟는 소리 - 부릉부릉..., 짠 짠 짠...리드미컬한 산소펌프질 소리...프로그레시브한 록...

밥을 먹다가 나는 그 리듬을 타고 달리기 시작한다. 100m를 10초에 주파한다. 한 술을 더뜨고 1000m를 10초에 가버렸다. 반 그릇을 먹고 1km을 10초에 뛰었다. 이제 날기 시작한다. 10km를 10초에, 10km를 1초에 돌파한다. 임계속도 11km에 이르러 마침내 지구 대기권을 돌파했다.




편의상 N328KF가 내 이니셜이다. N328KFSMS 지구에 남겨 놓고 온 이웃들을 생각한다

이 시각부터는 지구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나는 아무데로나 우주유영이 가능해 졌다. 개구리헤엄을 쳐도, 나비수영을 해도, 가고 싶으면 다 간다. 금새 달을 스쳐지나 가고 있다.




에게? 저게 지구인가?

작게만 보이는 지구라는 나의 고향을 등으로 하고 비상했다. 간 김에 가는 데까지 가보자. 도대체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한번 봐 보자.




어라? 토성이네? 저 아래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고 토성 옆의 콩만한 것이 지구만 하다네

이제 태양계를 벗어 나는가 보다. 외롭다. 지구에서 컴퓨터라도 가져올 걸...'서울뉴스'라도 보게. 나의 이웃들은 이 시간에 잠을 잘까?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까? 아님 사랑을 하고 있을까?ㅋㅋ 이웃과 다투고 있을까? 이 우주에서는 다툴꺼리도 없다. 너무 심심하다. 한번 싸워보고 싶다. 새삼 저 지구에서 죽어라 살리라 쌈박질 했던 사람들도 보고 싶다. 지금 되돌아 보니 그 다툼도 소중하고 즐거웠다. 다시금 만나면 잘해 줘야지....




안드로메다 성운은 아직 멀었고 '장미성운'이란다

지나는 여정에서 강렬한 섬광도 함께 보았다. 별의 충돌인데, 두 별의 소멸이자 새로운 별의 탄생작용이다. 이른바 초신성이 만들어지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지구인이 명명해 준 '유령 성운'도 본다. 유령? 무섭다

아무리 무서워도 예서 멈출수 없다. 우리의 은하계와 가장 유사성이 있다는, 그리고 처음으로 다른 은하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 '안드로메다'를 찾아 나서야 했다.




안드로메다 은하 : 우리 은하계와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 은하는 질량과 크기 뿐 아니라 생성 시기도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마침내, '안드로메다 은하계'를 찾아냈다. 순간, 나의 질량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다시 칠흑같은 며칠의 여행에서 마침내 아홉개의 은하를 볼 수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해야겠다. 수 천억개나 되는 것을 전부다 구경해야 하는가? 아니면 여기서 눌러 앉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고향을 찾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도 할 겸..

벌써 10만 광년(1광년 = 빛의 속도로 1년간 간 거리)을 왔다. 내 사랑하는 부모형제들, 가족과 이웃들은 안녕하신지? 그 분들의 삶은 보다 윤택해졌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왔던 길을 잃고 다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쩔까나?

내가 왜 그 시절에 얼굴이 못생겼다고 안만나고 예쁜 얼굴만 찾았는지? 까지껏 공부 좀 못하면 어떠했으며 가난뱅이면 또 어땠었냐? 절름발이든 애꾸든 도대체 그들이 어쨌다고 내 맘껏 재단했는가! 남루한 차림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내가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들을 끌어 안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흔한 사랑을 말하지 못한 죄로 한량없는 용서를 구해야 할 것같다.

몇 억년을 살아 온 눈앞의 별들. 고작 100년도 함께하지 못한 우리들.. 그래, 남아 있는 시간이라도 열심히 살아가자.

밤새 우주여행을 하면서 여기까지 생각해 둔 것이다.

FREEDOM IS NOT FREE

일요일 예배를 끝내고 용산의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6.25를 떠나서 지나 온 길에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과거 중앙청(조선총독부 건물)을 김영삼 정부 때 뜯어버림에, 일제 강점기하의 잔재청산보다는 훌륭한 건축물이 하나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했다.

좌우대칭을 이룬 대리석조에 넓이와 높이 비율과 뒤에 남산을 지고 있는 터가 따뜻해 보였다. 西門의 '형제의 상'에서, 낡은 항공기 옆에 아들을 세우고 찰칵찰칵, 正門의 청동상 앞, 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내부도 둘러 보았다.

6.25때 152,279명의 우리 국군이 죽었고, UN군 37,645명 사망에 미군이 33,642명이었다. 미군 사망자 수에서 미국과 우리나라의 군사적인 이해관계를 일면 수긍하기도 했다.

'FREEDOM IS NOT FREE'
석판에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음각돼 있는 것이 보였다. 다분히 'NOT GIVEN FREE'라는 말에서 'GIVEN'을 빼버린 말 같은데 저절로 주어짐이 아님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밤의 공상과 일치한 낮의 현실?

놀라운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우주체험'이라는 돔이 두 군데 있었는데 온 김에 구경하자고 표를 끊었다. 각종 우주장비, 로켓과 운석, 은하 슬라이드를 구경하고 20분짜리 영상물을 보면서 어젯밤 상상속으로만 생각해 둔 것들이 라이브형태로 판박아 체험된 것이다.

기대서 천정을 쳐다보면 우리는 우주를 유영하는 비행사가 되었다. 가상의 블랙홀에서 어지러움도 느끼면서 상대성이란 것이 별것 아님을 체험한다. 아들녀석은 좋아서 연신 박수를 쳐댔다.

나오면서 우리 이웃님들께 어제밤 우주에서의 생각처럼 "ㅇㅇ님! 사랑해요!!" " 앞으론 싸우지 말고 잘 지네요!"라고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아들이 시야에서 사라짐을 알았다. "이 눔 자식 찾기만 해라. 혼내 줘야지!"

아빠를 놀릴려고 잠시 숨었다고 하였지만 하마터면 아들과 대판 싸울 뻔 했던 일요일이었다. 휴!

2005-06-20 오후 12: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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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부조리한, 너무나 부조리한
폭동이 정말 일어날 일은 없다. 그러나...
양기용 기자, 2005-06-17 오후 3:57:36

부조리를 요약해 놓은 것을 보면 : [원래는 '조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논리적 의미만을 표시하는 말이었으나 반합리주의적인 철학이나 문학, 특히 실존주의 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용어가 되었다.

J.P.사르트르 소설 '구토'(1928)에서는 마로니에 나무의 뿌리와 같은 ‘사물 그 자체’를 직시할 때에 그 우연한 사실성-그것이 부조리이며, 그런 때에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 이것은 M.하이데거나 S.A.키에르케고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A.카뮈는 그것을 다시 일보 전진시켜 '시지프의 신화'(1942)에서 “부조리란 본질적인 관념이고 제1의 진리이다”라고 하여 세계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태도를 부조리라고 규정하였다.

원래 부조리한 세계에 대하여 좌절을 각오하고 인간적인 노력을 거듭하여 가치를 복권하는 것이 카뮈의 부조리에 대한 주장이었다. 따라서 카뮈의 경우 부조리는 당연히 ‘반항적 인간’을 낳는 것이다. 이리하여 부조리의 사상은 F.W.니체 등과도 유연성을 갖게 된다.

어떻든간에 R.데카르트 이래의 근대합리주의적 가치관에 대결하여 그것과는 다른 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을 때 부조리는 비로소 그 본래의 문제성을 나타내는 말이 된다.]

부조리를 댓가성이 있는 '뇌물'로 쉽게 알아듯는 한국사회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은 너무나 쉽다. '합리적이지 못한 것' '조리가 없는 것'을 체험하기는 지리적인 요건을 보면 쉽게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극동에 아주 작게 매달린 토끼하체를 보면 안다.

우리나라는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불경기가 지속된다, 폭동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이다,는 경기비관론자들를 접했고 서울시의 청계천관련 뇌물사건을 유전게이트와 물타기하려는 의도와 행남도 사건 등등이 소용돌이차럼 휘감겨 당췌 국민들 정신은 어디다 빼먹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주가가 1000포인트를 간다한들 거지나 다름없는 개인투자자들은 김밥 한 롤의 점심도 못먹고 시세판을 쳐다보며 쓰린 배를 움켜잡는다. 전처럼 '압구정 미꾸라지'니 '목포 세발낙지'같은 수퍼 왕개미들도 종적을 감췄다.

경기비관론이 나온 현실을 들여다보면 아엠에프를 거친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결국 대기업의 전횡을 인가해 주는 결과를 낳았고, 공적자금이라는 눈먼 돈을 갖다 쓰는 이를 임자로 만들어 주었던 터다. 김우중 대우 전회장의 체포? 귀국이 도대체 기형적으로 변해있는 경제구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대기업은 하청업체의 골육을 쥐어 짜내 보너스잔치로 날마다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으며 그들의 자녀들은 이중국적을 갖거나 조기유학, 해외여행 등으로 국부를 유출한다. 그 기업에 종사자들은 어떻게 돈을 즐겁게 쓸까 고민하는 것을 강남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비단 강남 뿐만은 아니다. 겨울을 넌닝과 핫팬티차림으로 나니까 말이다. 예측이 빗나간 탁상의 연금문제만도 멜더스의 인구론이 적용되지 않는 21세기라는 것을 생각이나 해 보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청계천변을 걸어보면 서울시가 대사기극을 벌였다는 것은 조금만 사려있는 사람이면 알 것이다. 보행기하나 지날 수 없어 두 사람이 비킬 수 없는 좁은 폭의 천변로에 나무를 꽂아두었다. 10월에 완공한다고 한다. 가로지르는 다리 몇 개는 전통을 재현하기는 커녕, 조악하기 조차해 복원이라는 의미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오솔길보다 못한 그 길이 어찌 시민의 휴식터가 될 수 있으며, 쫙퍼진 활엽수가 아니고서야 어찌 도시의 황량함을 대신해 줄 것인가. 천변 재개발로 임대료가 폭등하고 자영업자만 또 허리가 꺽이는 현실이다.

이제 기업의 지배구조규제에 걸려서 명의만 하청이지 사실상 대기업에 예속돼 노예와 같은 박봉에 시달리는 중소업체가 늘어났고 그들의 삶의 근거가 얇아진마큼 사회 저변은 허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기에 펜대 놀리는 이들을 부럽게 쳐다봐야하는 이 사회 구조는 나를 여름날에도 19세기식 외투를 걸치게 하는 것이다.

2005-06-17 오후 3:57:36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편집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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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칼럼] 나는 똥똥한 여자가 좋다
아프리카는 지금 살찌기와의 전쟁중
양기용 기자, 2005-06-15 오후 12:23:08

*비만의 위험과 공포를 조장하기로는 대한민국보다 더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비만이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니 빨리 살빼지 않으면 죽는다'는 식으로 멀쩡한 사람을 반쯤 죽음의 문턱에 갖다 놓는다. 매스컴마다 떠드니 정상체중을 가진사람도 거울에 자신을 홀딱 벗겨보게 해 아노미 상태를 유도한다. 나무젓가락같은 사람조차 비만공포증으로 몰고가는 와중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부류는 살빼는 의사, 약장사 등등이 아닐까?*


▲ '발팽송의 浴女(1808)'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

아프리카는 난리중

너도나도 살찌기. 살이 없어 말라 보이면 AIDS환자로 오인받기 쉽기 때문이란다. 에이즈환자 대부분이 말라깽이 모습이니 그도 그럴만 하다. 똥똥한 사람 가운데 에이즈 보균자는 필요조건이나 마른 사람은 에이즈의 충분조건인 셈이다.

처음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환자의 보도를 '77년도로 기억한다. 미국 어린아이 사진이 실린 신문에서였는데 의학계에서도 최초로 별견한 병인을 화제거리 정도로 보고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그로부터 십 수년 후, 그 병의 공포는 세상에 만연한다.

영국 전설적인 록그룹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1991년 에이즈로 사망)가 가장 큰 화제였고, 다음은 80년대 미국프로농구(NBA)에서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친 매직 존슨(현 46세, 사업가-30개 버거킹점, 72개 스타벅스점, 6개 극장, 8개 피트니스클럽 소유, 브룩클린 최고층빌딩 매입)의 에이즈 감염과 은퇴다. 화려한 여성편력까지 고백했으니 '성문란=죽음'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남성들의 발기력을 제한한 적이 있다.

세기말의 페스트, 흑사병으로 불리우는 이 병인은 아프리카의 푸른 눈 원숭이에서 발견되었기에 전아프리카인을 묘한 시각으로 봐야하는 측면도 있었다. 걸리면 죽는다,는 에이즈바이러스 감염경로는 정액과 타액, 수혈 등이다. 세계적으로 2,500만명에 이르고 그중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남아공이 530만명을 비롯 아프리카가 전체 2/3을 차지한다. 이쯤되니 기아와 에이즈와의 이중전쟁을 치르는 아프리카에서의 살찌기 열풍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에이즈는 감기다

에이즈 환자는 면역체계만 이상이 있는 정상인이다. 감기를 앓고 있는 가족과 전혀 다를 바 없으며 그 보균자와 보호기구 없이 성관계시 감염확률은 0.1~1%정도이니 주의를 기울이면 큰 문제될 것 없다. 아직 매직 존슨같은 사람도 있지 않는가. 몇 년전 우리나라에서 에이즈女의 행로를 추적하는 소동이 벌어졌었다. 그러나 관계하면 죽는다,식의 마녀사냥에 그들이 설 자리마져 빼앗지나 않는지...

다시 똥똥함에 부쳐

아프리카 예를 들지 않더라도 과도하게 날씬하면 볼품없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정해 놓은 '맞며느리감'이란 두툼하며 후덕하게 생겼다. 둥글둥글하게 보이는 것이 때론 덕과 부를 상징하기도 하고 다산까지 상징한다. 무릇 일이나 인정사이에서도 그러하다는 것이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온 선험적인 진리다. 이 지혜로 비춰 맞며느리감으로 '똥똥함'이야말로 필요조건인 셈이다.

앵그르의 위 그림에서 갈비뼈가 기타현마냥 걸렸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 신윤복은 '혜원전신첩'에서 넉넉하고 풍만한 여성을 가감없이 그려냈다. 현대 여성들이 베트콩순이나 북한녀의 몰골로 변해가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다이어트하다 아예 거식증(拒食症)에 걸린 - 7,80년대 감미로운 목소리로 우리귀를 즐겁게 했던 팝가수 카렌 카펜터스를 아는가. '이 세상 끝까지'를 한참 따라 부를 시절에 그의 비보는 나의 낭만과 꿈을 움추러들게까지 했었다.

체력은 국력이다

마침 올 4월 강남의 한 이벤트 홀에서는 신체 사이즈 88이상만 참가하는 '빅 위민(Big Women)패션 쇼'가 열렸단다. 이 시대가 씨를 말려버린 맞며느리감 자리을 다시 찾아 오기 위한 몸부림이 눈물겹다. 세기초에 있는 '몸의 반란'이라는 둥, 풍자라는 둥의 비아냥과 단발성 퍼포먼스가 아닌 진정한 건강미가 제자리 매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는 결코 날씬녀를 조롱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진정한 휴머니즘을 찾아주는 계기가 되리라 확신한다.

미국의 맥도날드의 다이어트버거가 실패했다,는 가십을 보았다. 그들이 선호하는 것은 두툼한 햄이 두 장이나 들어간 더블버거가 여전하단다. 그들에게도 우리 속담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뜻이 있는 것일까?

체력은 국력이다. 내 눈에 우리나라 여성들은 너무 말라있다. 나의 길거리 조사에 의하면 비만여성은 1%에 지나지 않는다. 더 많이 먹고 살이 더 피둥피둥 찌기 바란다. 그래서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쿵쿵거리며 걷는 당당한 휴머니스트들이 넘쳐나는 풍성한 길거리가 되기를 손꼽는다.

2005-06-15 오후 12: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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