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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 여인의 꿈

박근하 기자 | 2008/04/02 02:14

"마담! 무엇이든지 좋습니다. 제발 저에게 일자리를 주세요."
고급 빵집 앞에서 내게 무릎을 꿇었던 청년의 행동은 급기야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거리 ⓒ박근하 서울포스트

"일어나세요. 난 여행자일 뿐, 여기서 일하지 않아요."
그는 며칠전부터 내가 다니는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를 몇이고, 컴퓨터 문서를 작성할 수 있으며, 몇몇 전기 장치를 만질 수가 있다고..
내가 가는 길을 나란히 걸으며 끊임없이 자기 소개를 했다.
그리고 일자리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그의 말을 "농" (안돼요)으로 일축해 버렸다. 하지만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EU직원으로 오해받고 있었음이 분명하리라.

EU(유럽연합)직원들과 외교관들이 살고 있어 베넹의 비버리힐즈라 불리는 코토누의 중심마을..
마을까지 들어올 용기는 없었던 건지 그는 날마다 마을의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손님이라는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린 채 며칠째 몇번이나 자기 소개를 반복하고 있었다.

▲ 노예의 문. 많은 노예들이 팔려나간 항구가 있어 그나마 후예들이 먹고 살수 있는 교통로가 가능하다. ⓒ박근하 서울포스트

내가 이곳에서 묵고 있었던 사연은 정말 간단하다.
며칠 전... 나는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이반을 비행기 공항에서 만났다.
그는 며칠간의 휴가동안 에티오피아에 놀러갔다가 베넹으로 돌아오는 EU직원이였고,
그의 눈에 적어도 나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단 한마디의 불어도 하지 못하는 어린 동양인 여대생이었다.

사실 고급 주택가인 그곳에서 로컬스텝(현지직원)인 이반은 가난한 편이었다.
그의 연봉은 16000ER(우리돈 약 2000만원) 정도라고 했었고,
EU직원들의 파티에 초대받아 놀러간- 2층에 실내 수영장까지 갖춰져있던- 월세 2000$(우리돈 200만원)짜리 집에 비하여
500$(50만원)이라는 이반의 집은 100평 남짓에, 그만한 크기의 잘 다듬어지지 않은 정원..
문지기와 정원사, 요리사.. 그리고 운전사 없이 스스로 모는 작은 승용차가 있을 뿐이였으니까..
어쨌든 이반은 얼마든지 자신의 집에 머물러도 좋다고 했었다.
하지만 나와 놀아주기에 그는 너무 바빴고 나는 그저 그집에서 숙식을 제공받았을 뿐.. 아침이 되면 주택가를 나와 평범한 여행객들처럼 마을을 거닐며 혼자 놀아야만 했다.
그래도 고급 주택가의 '무중구'(백인을 일컫는 현지어)들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으리라.
주택가에서 나와 마을을 돌아다닐 때마다 늘 사람들에게 둘러 싸이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내가 지나갈때마다 무작정 나를 따라왔던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아예 아침부터 내가 주택가를 나서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고, 내 주변을 맴돌다가 내가 가끔 수많은 어린아이들에게 둘려싸여 조금 거친 상황이 될때면 그때서야 나서서 아이들을 물리쳐 주었다.
그리고 저녁 늦은시간 집으로 돌아갈 때서야 내 옆을 나란히 걸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그를 모른척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끈질지게 날마다 자기소개를 반복했다.
그는 그날도 나를 따라오며 불어로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 마을과 마을을 잇는 강가.. 강 건너 넘어오는 악취가 너무 심하다. ⓒ박근하 서울포스트

그리고 나는 그날도 그를 외면한 채 이반과의 저녁식사거리를 사기위해 고급 빵집에 들렸다.
사실 고급 빵들의 가격은 배낭 여행족인 내게 만만치 가격이었다. 아마도 이정도 가격이면 유럽물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반의 집에서 며칠째 음식만 축내는 것도 너무 미안한 일이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큰 맘먹고 이반과 함께 식사할 고급 빵들과 함께 며칠간 내가 먹을 커다랑 빵을 두덩어리 샀다.

내가 빵집에 들어설 때 그는 따라오던 발걸음을 멈추고 문밖에서 나를 기다렸다.
아무리 현지인들의 존재를 무시하려고 노력해도 이럴 땐 내심 가슴이 아프다.
도대체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데 현지인들은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상가들이 즐비한단 말인가.
물론 상가 문지기들이 구분하는 것은 국적이 아니라 빈자와 부자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빵을 사고 빵집앞을 나섰을때 그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또 다시 못본 척 고개를 돌려던 순간 그는 내 앞을 가로 막은채 무릎을 꿇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담! 제게 일자리를 주세요!"
나는 당황해서 그를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도와줄 힘이 없다는 것을 설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의 절실함 앞에서 어떠한 목소리도 나올 수가 없었다. 경비병이 다가와 그를 억지로 일으키며 나를 보호하려고 했지만 그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나도, 그도 경비병도 모두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마주하고 앉았다.
"(미안해요. 나는 불어를 할 줄 몰라요). Can you speak English? (영어 할줄 알아요?)"
그는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Yes. (네)"
그가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안도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의 불어식 영어는 상당히 서투를 것이 분명하였고, 그런 그에게 영국 식민지식 영어로 그를 설득시킬 자신은 없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 커다란 빵 두덩어리를 건넸다.
" I'm just tourist. I'm not working here. I'm sorry I can not help you.
(나는 이곳에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을 도와줄 수가 없어요.)"

▲ 단조롭고... 아무것도 없었던 베넹 '코토누'마을의 바닷가.. ⓒ박근하 서울포스트

그가 과연 알아들었을까..?
그는 말없이 빵을 건네 받았다.
나는 다시 그를 외면하고 다시 거리를 걸었다.
한참을 걷다 뒤를 돌아보니 그는 두세걸음 떨어진 곳에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지만 그는 목적을 잃은 채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반은 오늘도 너무 바빴다. 저녁에 돌아와 요리사가 음식을 가져올 때까지 그는 컴퓨터만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그제서야 나의 일과를 묻는 이반에게 나는 그의 얘기를 할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사실 동네에서 나와 길을 걸으면 구걸하거나 일자리 찾아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이 많을것이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무전취식객인 내가 누군가의 일자리 얘기까지 꺼내는 것은 너무 뻔뻔한 일인 것 같았다.

하긴.. 내가 단순여행객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 청년은 더 이상 나를 기다리지 않으리라.


이틀후..
나는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단조로은 바닷가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오랫동안 바닷가를 거닐면서 사실 나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금바람이 가득한 후덥지근한 이곳을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 같았다.

해변가의 끝에서 청년과, 아이의 손을 잡은 여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여는 여인들처럼 그녀 역시 앙상했지만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빵을 감사하게 받았어요. 덕분에 어제는 아이가 빵을 먹을 수가 있었어요. 마담. 감사의 뜻으로 제가 마담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어요? 요리나 청소도 할 수 있고, 빨래나 옷수선을 해다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현지어로 말했고, 청년이 서툰 영어로 통역했다.

▲ 차타고 지나는 길에 보았던 작은 풍경.. 아프리카 모든 여인들이 저들 만큼만 행복했으면 좋겠다. ⓒ박근하 서울포스트

나는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불어 단어를 나열했다.
"(저는 오늘밤 떠납니다. 그리고 지금 저를 도와주실 일은 아무것도 없네요.)"
순간 그녀의 눈동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

나는 그녀에게 부탁할 것이 없다는 것이 한없이 미안해졌다.
그래서 주머니를 뒤져 1000CF(우리돈 2000원)을 내밀었다.
애써 인사하러 온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마음의 표현은 그것 뿐이였으리라...
순간 청년의 표정은 묘해졌다. 여인은 순간적으로 망설였지만 내가 내어준 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내가 그녀에게 인사했다. "멱시. (고마워요)"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아이의 얼굴은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뒤돌아 서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갔다.
청년과 여인.. 그리고 아이는 내가 해변가를 거닐고 있는 동안 멀리서 나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내가 집에 도착 할때까지 여러 걸음 뒤에서 나를 배웅했다.


내일 떠날 것이라는 말에 이반은 마지막 만찬을 준비햇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지금 이 순간 여행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굳이 억지로 대답해야 한다면 여행을 통해 진정 내 꿈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 만난 그 여인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빵 두조각의 호의에도 보답하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
사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빵이나 인사치례가 아니다.
그 날 여인에게서 느낄수 있었던 마음과 품위..
사람에게도 품격이 있다면 그녀가 내뿜는 향기는 결코 나 따위가 비교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으리라.

같은 시대에 살아도, 훌륭한 향기를 갖고 있어도 단지 태어난 곳이 다르다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와 나- 우리의 현실은 이렇게나 달랐다. (박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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