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난 발표 글 모음 5 ('茶香이 숨쉴 때' 外)(21~25편 )
양기용 기자 | 2005/12/26 00:52
25. 茶香이 숨쉴 때
아! 계절의 쾌적한 아침은 하나의 환상이었다
양기용 기자, 2005-08-08 오전 1:38:19
남도가는 길
아마 좀더 삶이 나아지면 아들과 지치도록 세상을 누빌 것이다. 보고 배우고 느끼는 여행이 아니라, 번질한 곳보다 오지를 오르고 고꾸라지며 체득하고 극복하는 탐험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인디아나 존스 부자가 스릴 넘치는 유머를 주었듯...유머란 트래블이나 저니, 투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트레킹, 크라이시스나 어드벤쳐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언제나 삶의 난간에 서고 싶다. 그런 곳이라야 진정한 치열함과 불꽃이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이 가는 길이 아니라 '가지 않은 길'을 몸으로 걸을 것이다.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는 능력의 부재이기도 하지만 나의 삶은 차라리 흙먼지 둘러 쓰는 곳이 외려 편했었다. 어쩔때는 길모퉁이에서 질펀히 앉아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이제 보니 참으로 소중한 나의 결정체였다.
예전처럼 남도로 가는 길은 언제나 멀고 험하다. 올해는 호남평야를 덮어버린 황토색 폭우로 기차바퀴가 물속을 구르는 진풍경도 겪었다. 작년에는 또 '가장 두려운 것은 정든 사람과 헤어지는 짧은 의식'이라며 소개한 C선배가 얼마나 밉기도 했던가.
귀 향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기에 아름다운 독일의 시인 릴케는, 한 인간의 죽음은 그 인간과 함께 태어난다고 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자기다운 죽음이 생겨나고 또 사는 장소는 어디인가.
침대에 누워 죽든
소총에 맞아 죽든
가장 두려운 것은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짧은 의식(儀式)
무덤 파는 자들의 일 길고
그들의 근육 억세고 그들의 삽 예리해도
그들은 결국 묻힌 자를 다시
인간의 마음 속에 되묻는다.
- 예이츠〈 불벤山 아래> -
그렇다. 우리들이 죽어서 살 곳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인 것이다. 그 사람이 죽으면 또,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옮겨가 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 죽음들이 살고 있는가.]
여름의 반을 가르고, 삶의 반환점을 벌써 돌았다. 아직 정점으로 향하는 이들의 얼굴을 마주 보며... 뭔가를 묻고, 말할 기회도 없이 그렇게 시간은 야속하게 나의 곁을 스쳐가 버린다. 그러기에 적어도 여름이 나를 늘어진 플라타나스마냥 멍하게 쳐지게 하는 것이다. 매양은 아니었지만 이 계절의 영향으로 몇 번인가 심한 후휴증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예, 형...
아부지가...아부지가...
충분히 예견된 일인데도 그해 여름, 나는 덩그러니 천장만 올려다 보았다. 볼가가 촉촉함을 느끼고서야 떠날 채비를 했던 것이다. 터미널의 인파는 샌달에 카라풀한 핫팬티 일색이었다. 뿡짝 뿡짝..자..떠나자..아..동해바다로..오...
차표 있나요? 예?
두어 배의 요금을 주고 임시버스에 몸을 던졌었다. 삼지창이 그려진 휴게소를 거쳐 남도의 벌판을 질러 수직으로 내리 꽂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 냈던 14년전의 8월 3일. 꼭 그날이 8월 3일이다.
다향이 숨쉬는 곳
많이 변해 있는 고향동네지만 폐허를 앞둔 우리집은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수 십년을 자라온 동백나무와 밥티꽃나무가 턱 버티고 있는 것이다. 아름드리 동백의 꽃똥과 함께 밥티꽃은 금새 꽃망울을 머금는다. 이윽고 4월이 되면 저 아랫마을에서도 눈이 번쩍 띄이는 꽃다발의 향연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얀 꽃봉우리에 반사되어 부서지는 꽃의 긴 파장은 한밤을 훤히 밝혔다가 아침되어 본연의 자태로 돌아 온다. 청초한 봄의 하늘빛을 온통 순백으로 덮어버린 한그루의 밥티꽃 나무. 모든이가 탐내고 계절의 시샘도 한몸에 받고 있는 나무가 언제나 나를 먼저 맞곤 했었다.
형네의 재촉에 마지못한듯 해수풀장을 찾았다. 십수 해 전, 해변의 카프카 흉내를 내었던 자리가 유명 관광지로 변했고 녹차로 누구는 수십억을 벌었다는 말에 낙담도 섞여 있었지만 나는 한갓 '인연의 스침'으로만 받아 들였다. 어쩜 형의 아쉬움 속에는 한때 가장 막역했다는 친구와 내가 판이한 길을 걷고 있어서라는 것이 충분히 녹아 있었다.
그러니까 그 시절. 다원(茶園)의 오두막에 친구와 동숙할 때도 녀석과는 달리 다도(茶道)와 차의 효능 등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차밭의 원만한 곡선과 푸르름이 가져다 주는 상쾌함에 훨씬 매료되었던 나는, 온종일 산등성을 걷고 다도해를 굽어보며 고함지르고 가파른 자갈길을 뛰어다니는 것을 더 즐겼었다. 가스통 바슐라르를 옆구리에 끼고...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에서 여드름처럼 쏙내민 꽃망울이 신기했으며 끈덕진 생명력을 과시하는 쑥포기, 질경이, 제비초와 함께 가사적인 관념의 명제를 벗을려고 버둥대었을 때다. 노을 보며 걸었던 산책로에서 선명한 취옥에 비견되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보았으며, 자연과 함께 맘껏 호흡하고 상념을 발산하는 나의 소우주로 그곳을 지켰었다.
잔치집의 이른 아침처럼 분주한 꿀벌의 비상, 하늘거리는 꽃대, 계절들의 쾌적한 아침은 하나의 환상같이 나는 순정을 만끽하기에 바빴졌었다. 이끼 끝에 매달려 수정처럼 빛나는 이슬방울들. 나는 지금 어쩜 그때의 게으름을 지독히도 보상 받고 있는 것이다. 오! 세상은 놀라워라,라는 관조로 인하여...
'나'라는 어중쩡한 미학주의자와 실용주의로서의 친구의 삶은, 10년을 앞서나간 나의 생각의 오류(?)가 검증받기도 전에...내가 모든것을 다 포기하고 싶었을 때 친구가 세상 정벌에 나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제 귀신과도 대작할 나이. 세상을 향해 용감하지 않으나 낯설음이 없고, 대단하지 않으나 무엇이 진정 소중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간다. 이것을 위하여 시골집의 시계가 수 년을 12시 27분에 봉인된 채 매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젖과 해변의 젖가슴
해변의 여인들은 죄다 미인들이다. 손대면 톡 터질 것 같은 빵빵함을 주체하지 못해 삐져 나올 것 같은 젖가슴은 수퍼컵도 의미없다. 간밤 젖을 만져보며 '엄니 내가 다섯살까지 이걸 먹었네?'했더니 '헤헤' 웃으셨던 어머니의 그것이 자양분이었다면 저들의 바스트는 비계덩어리이자 욕망 덩어리임이 분명하다.
몸매를 유지한다고 일찌기 소젖(우유)를 먹인 탓에 40대 아줌마도 풍성함은 처녀 같다지만 그거 싸들고 죽을 일 있나? 마누라도 그 몸뚱이 죽을 때 가져갈 건지 애 낳고 한달만에 분유값 걱정도 어지간히 하게 만들었었다.
아빠! 열 바퀴만 더... 벌써 초딩이 되어 있는 아들녀석은 두 시간 동안 물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막둥이의 아들 이름도 가물대신 어머니. 그 어머니도 옛적엔 세월을 휘어 잡겠다고 호령했지만 지금은 어느 순간의 시간에 맡겨져 계신다.
어쩜 일순간에 총총한 기억을 잊어야 하는 것보다 때론 노환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만약 지금도 정신이 총총해서 아들의 못난 면과 형편없는 모습을 뚜렷이 기억하신다면 오히려 내 마음이 더 아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평생을 사시며 아프고 어둡고 힘든 기억들을 서서히 잊고 돌아가실 때 즈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당신이 하나의 평화로운 꽃잎처럼 지시는 것이 더 다행일 것도 같았다. 형네와 함께한 세꼬시 회무침과 조갯국물이 껄끄럽게 느껴졌음은 몇해전 어머니가 맛있게 드신 그 식당이기 때문이었다.
내일분 일은 전화로 오더를 받아놨다. 다시 서울이라는 삶의 전장으로 나갈 쯤, 무겁게 맞딱뜨려질지 모를 일상의 현장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각인될 것인지 새삼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래도 이번 귀향이 가장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그것은 막둥이가 젖을 더듬는 것을 어머니가 뚜렷히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살아 계신 모습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바리바리 싸아준 먹거리와 오래 간직해야 할 기억의 편린들을 꼭꼭 챙겨 나는 판소리의 고장을 서서히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년아! 가슴을 칼로 저미는 恨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뱁이여...! - 서편제 중 -)
2005-08-08 오전 1:38:19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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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삼순, 삼식, 삼손, " 네 성이 뭐냐? "
士農工商, 장사는 쌍놈들이나 하는 것이다
양기용 기자, 2005-07-28 오후 1:51:07
'성일흠'이라는 소년
옛날에 임금이 승차하다가 똘망한 소년을 만났단다.
" 네 성이 뭐냐? "
" 예, 성입니다 "
" 그러면 네 이름이 뭐냐? "
" 예, 일흠입니다."
임금이 맹랑한 놈으로 봤다는 일화가 있다. 새삼 이름 석 자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대목이다. 어느 통계자가 뽑은 희귀이름 자료를 보니 '강아지'가 5명, '이십년'이 1명, '임금님'이 4명, '도레미'가 1명, '현상범'이 7명, '이천원'이 30명, 역대 대통령으로는 박정희가 2,554명으로 1등이다.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로 자칫 놀림거리가 되거나 운을 말하기도 한다는 것이 작명가들의 성명학인데, 생년월일시에 따라 물, 불, 흙, 쇠...한글, 한문 획수에서부터 복잡하게 밑도 끝도 없는 경우의 예를 들어 인생운을 짜주는 것이다. 이제 영어 운자도 따져야 할 판이다. 결론에서는 다 필요없고 부르기 쉽고, 기억되기 쉽고, 쓰기 쉬운 이름이 최고다,는 것이다.
'성기학'이라는 이름
(특정 성씨에 대한 편견이 아님을 밝힌다.) 성씨 성에는 '기'자 항렬이 있다. '성기'에 따라오는 단어에 따라서 묘한 뉘앙스를 가져다 준다. (성기를 연구한다)성기학, (성기가 문이다)성기문, (성기가 철로 돼있다)성기철, (성기도 아니다)성기노, (성기를 사랑한다)성기애, (성기에 병이있다)성기병, (성기가 나와있다)성기출, (성기만 있다)성기만, 그런데 '성기'돌림자에 출중한 인물이 엄청 많은 것도 사실이다. (성씨분들 화나시면 진정하세요. 성기가 좆도 아니다는 ㅇ성기도 있으니까요)
'김삼순'이라는 이름
삼류인생을 삼쾌(유쾌, 통쾌, 상쾌)하게 표현해서 공전의 히트를 친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이다. '삼순이가 향토색 진한 이름이고 서민의 악착같은 삶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이름이었다. 넋빠진 생업의 현장에서 신음하는 다수의 대한민국백성을 대리만족 시켜주었다는데서 김삼순이가 히트를 쳤다.'
동네 이발소에 가서 위와 같이 말을 했더니 이발소장 하는 말 "별 거지 같은 새끼들이 백성들 배고픈지나 알간?" 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어서 "한달에 한 번 오던 이발을 두 달에 한 번 오는 시대다. 정치한다는 놈들은 허구한 날 개 풀 뜯는 소리나하고 자빠졌고...켁..." 이발 내내 나는 긴장을 해야 했다. 괜한 테레비 홍보멘트를 읊었다가 쥔장 성질 돋궈 놨으니 머리 잘 나오기는 틀렸군. 더군다니 내가 한 달 한번하는 이발을 두 달만에 간 날이기도 해서다.
'삼'자라는 이미지가 국어에서는 가장 촌스러운 이미지다. 적어도 대한민국 땅에서 '삼'자가 들어가면 바로 '삼류'로 직결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삼순이와 그 애인 삼식이는 얼마나 팔푼이 같은 이미지의 집합인가! 그런데 결과에서는 신드롬을 넘어 '삼순 홀릭'을 탄생시켰다고 하니 뭐에 홀려도 단단히 홀린 여름날의 드라마였다.
'삼손'이라는 공화국
대한민국 안에 거대한 공화국이 하나 더 있다. 모 기업이 박정희 정권 때 사카린도 밀수했다는 소문이 남아 있는데 지금 이 그룹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첨단 전자부품에서부터 비니루 푸대까지 만들어 내다 판다. 일본 소니사가 전략적 제휴로 활로를 모색하고, 그들이 지향하는 모델로 삼는 대한민국 일류기업이다.
그러니까 소니사가 일찌기 컴퓨터를 만들지 않아서, 브라자와 빤쓰를 생산하지 않아서, 복사용지를 만들지 않아서, 자동차를 안 만들어서, 비니루 푸대를 생각치 않아서, 오늘날 우리 기업에 셋방을 차리겠다는 것이다. 소니사는 명품만 고집하다가 이 꼴이 났다. 내가 안다.
문어발식으로 사업 다각화를 하지 않았으며, 혈연중심도 없고, 도도하게 투명하게 장인정신만 내세우다가 굶어죽기 일보 직전이다. (나에겐 20년을 컷터날 한 번 갈지 않고 멀쩡하게 쓰고 있는 일제 면도기가 있다. 디자인도 예쁘다.) 장사의 기본은 우리한테 배워라. 장사란 돈되는 것은 체면없이 안면까고 하는 것이다. 돈이 된다면 마누라도 팔아먹는 것이 장사다. 그래서 장사는 옛날부터 쌍놈들이 하는 것이다. 알았제?
장사는 쌍놈들이 하는 것이다
士農工商 조상들이 매겨준 서열로 내가 장사를 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폄훼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러나 분명히 저런 쌍놈근성으로 장사를 시작해서, 엄연한 공돌이 공순이들이 올챙이시절 모르고 귀족이 되어 있는 현실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근자에 눈만 뜨면 원래 삼류로 되찾아 갈지도 모를 일류 기업이 화두다. (누가 죽인다고 하지도 않았는데)대한민국 다 망해도 그 기업하나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외국 언론에서는 킬킬거리며 "느그 하는 짓이 뻔하지" 하는 투로 분석하기도 한다.
나도 한때는 엔지니어(사실은 쇠깎는 공돌이)출신에다 은행원이라는 특이한 이력도 가지고 있고 지금은 막노동 같은 장사치다. 내가 만약 다시 공돌이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자세로 그 자리에 있을까,를 가끔 생각해 본다. 아마 나는 굶어 죽는 길을 택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도 든다.
2005-07-28 오후 1:51:07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편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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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포토] [여름특집] 난, 심연으로 피서간다~ㅇ
'뉴스로 여름나기', 바다밑에도 블랙홀이 있다
양기용 기자, 2005-07-23 오전 3:20:24
내 여친 이름은 '슈퍼땅콩'이다. 체격으로는 내가 우위를 점하지만 주먹파워에서는 내가 핀급에 속하고 앤은 무제한급이랄까? 늘 그랬듯이 해변에서의 싸움도 따져보면 치사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내가 한눈을 판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주먹다툼으로 이어졌다.
▲ 앤 주먹 한방에 우주까지 튕겨나간 티티카카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여기까지 쫒아오겠다는 수퍼땅콩의 핸폰 메시지를 받고 망설였다. 생각같아서는 다른 은하계인들 못갔겠는가! 그렇지만 거칠어서 그렇지 땅콩만큼 나를 아껴준 사람도 없는 것같다.
속으로는 연락오기를 바랬다. 일단 귀환하자. 갈라파고스와 발리 사이 태평양의 폴로네시아를 목표로 하고 방향을 틀었다.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모선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 멀리 보이는 섬이 다윈의 근거지 갈라파고스군도다
10,9,8,7,6,5,4,3,2,1,0. 풍덩. 낙하산을 폈지만 윌리윌리의 중심이라 충격이 예상보다 컸다. 한참 후, 정신이 들어 창밖을 보니 언눔이 몹시 화난 표정으로 째려보고 있다.
▲ 나를 째려보는 날치같은 물고기다. 개 폼을 잡는군..ㅋㅋ
'여기는 티티카카다. 땅콩 나와라...오바'
'띠...띠...띠...'
충격에 안테나가 파손된 모양이다. 긴꼬리 가오리가 병치를 타고 지나간다.
▲ 티티카카는 저꼬리를 짤라 안테나로 쓸 연구를 했다
그러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Life is short, art is long, opportunity fleeting, experiment uncertain, and judgement difficult". 기회는 싹 지나고 실험은 불확실하며 판단에 어려움을 느낀다.
▲ 내생각을 알았는지 쏜살같이 도망간다. 이라크를 초토화한 스텔스기 같다
답답하다. 창을 깨고 밖으로 나가야겠다. 오호라...마치 야구방망이같은 물건이 지나간다. 잠시 그 물건을 빌어서 창을 깨는데 성공했다.
▲ 미안하다. 니 머리가 아프제? 누가 그리 생기라 했냐?
우주복이 이럴 때는 잠수복이 된다. NASA 빠진 애들이 전번 챌린저호를 잘못 만들어 우리 동료들을 수초 후에 산화시키더니 옷 하나는 잘 만들었군. 007식으로...바다속에도 버섯들이 많다. 돼지고기와 볶아 먹으면 맛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심연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산호군락과 티티카카+그림자
별 것이 다 보인다. 헬리혜성이다. 엊그제 딥임팩트를 실험하지 않았던가! 마치 그 장면 같다. 만약 저것들이 해저 맨틀을 들이받으면 쓰나미가 일어나 또 지구인 수십만명이 아비규환일 거다. 참, 땅콩은 지금 발리에 있지 않는가? 큰일이다!
▲ 쥐취와 공생하는 해파리, 옥포항에서 노가다 할 때 손으로 잡아봤다
발리에 있는 땅콩은 한창 물놀이를 즐길 것이다. "어머! 저 물고기 좀 봐. 넘 예뻐, 덧버선 같이 생겼어.." 하며.
▲ 버터플라이피쉬 일가족. 나는 저것을 먹을 수 있나 없나를 생각한다
덧버선과 횟감. 여기서 땅콩과 나의 생각에 차이가 남을 알았다. 얼마전 동호회 모임 때 교회수집 말을.. "왜, 멍청하게 하느냐, 너 생각없는 놈이지?"라고 화를 냈다.
나는 메일을 읽었다는 표식으로 그 말을 썼을 뿐이다. 쓰기전에 개인적 대화를 오프에서 해도 괜찮은가에 고민했다. 적어도...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왜? 남들이 개인 내용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또한 땅콩이 우려한 '곤혹스럽게 만든다'는 의도도 추호도 없었기에..그래도 그에게 미안하다.
그가 무릎도 아프고 치과치료도 한다고 했다. 무릎은 온전해질거라고 확신한다. 나처럼 물속에서 노는게 관절에는 효과가 있다고 어디서 보았다. 난 물이 편하고 따뜻하다.
이건 어머니 뱃속의 양수에서 내가 자유롭게 헤엄치다가 세상에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물을 그리워하는 것은 태초의 고향을 동경하는 향수가 아닐까?
땅콩의 아픈 이가 사랑니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을 앓으면, 사랑을 할 나이면 아프다는 사랑니 말이다.
와! 저 고철 덩어리...틀림없이 타이타닉일 것이다. 전설적인 호화 유람선의 침몰. 그 선상의 사랑. 불꽃같은...캬...! 그 영화...! 땅콩과 화해하면 그 영화 다시한번 꼭 보고잡다. 꼭 껴안고...푸히히...!
▲ 잔해속에서 사람유골을 보았다. 조상들의 갈비뼈 사이에서 사랑을 나누는 엔젤피쉬, 입과 콧구멍 사이를 넘나들며 숨바꼭질하는 엔젤 새끼들..흐미..!
타이타닉 우측을 돌아 해구를 향했다. 물반 고기반의 진풍경이 펼쳐진다. 인간이란 참 어리석다. 기껏 훑어낸 저인망어선에 걸리는 것이 비닐봉다리, 폐그물, 타이어, 커피깡통이라니...고기가 이렇게 많은데 어디서 낚시질인가! 헐~
▲ 바다밑에도 블랙홀이 있다. 저 안으로 빨려들면 나는 새 우주로 나가는 것이다. 나선형...두 물체가 충돌할 때 인력과 장력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맞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정으로의 나선형태. 호박, 나팔꽃 등의 넝쿨손은 지구의 자전과 관계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지구가 도는데 그것들은 안돌려고 하다보니 밸밸 꼬여버린 것이라고...???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녀석도 보인다.
▲ 녀석도 어릴적 알 속에서 느낀 엄마의 체온을 생각하나 보다
작업중인 돌고래도 보인다.
▲ 느그들이 부럽다. 좋은 시간 보내라. 무리하지 말고...ㅎㅎㅎ
허걱!...야!!... 이놈아!!!... 사람 놀래키지 마라... 사람 첨 보냐?
▲ 자라같은 거북이. 물 길잃은 사람을 등에 태우고 데려다 준다는 전설도 있다. 거북아! 만약 내가 길을 잃으면 부탁한데이...ㅠㅠ
여기도 별이 있다. 어릴적 딱지치기하던 그 별. 지구에서 바라다 본 6,000여개의 별이 바다속에도 있다니...하긴 어떤 이는 가슴에 별은 안고 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가슴속의 그별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 불가사리. 요걸 보면 난 항상 '불가사의'란 단어를 떠 올린다
산호초의 일종이라 한다. 말미잘의 변이 같기도 하다.
▲ 우리 혈관도 저런 모양이다. 현미경을 더 당겨보면 DNA구조를 본다.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우주도, 인간도, 바다속의 단세포 생명체도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생명의 기본, 그리고 생성과 소멸이다
해구로 가는 초입에 뭍의 계곡같은 곳을 걸어 보았다. 낙엽이 떨어지고 산새들이 떼지어 난다. 낙원으로 가는 길같다.
▲ 지리산의 계곡을 연상케 하는 산호 군락
나와 내 그림자는 마리아나해구를 지난다.
▲ 북마리아나 제도의 동쪽을 따라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는 해구
마침내 해구의 끝에서 심연의 동굴을 보았다. 지구 핵에 가장 가까운 곳. 세상의 끝이자 새로운 세상의 시작일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다. 저기 생명체는 진정한 외로움을 아는가! 모르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이기에 오늘도 기꺼이 즐거워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나의 소망을 하나하나 들어 줄 요술구슬이 백개쯤 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의 여정에서 다 써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개의 도움없이도 여기까지 와 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고난이 있어도 나의 삶을 살아갈 희망이 있는 것이다.
▲ 세계에서 가장 깊은 비티아스 해연 : 11,304m. 저 물고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뭍으로 오를 시간이다. 산소탱크압은 아직 남아 있다. 이제 손만 뻗으면 아무 해안이든 다다를 수 있다. 어둠을 뚫고 어느곳에서 대지의 공기를 마시려 마스크를 벗어 던질 때, 방긋 웃는 얼굴이 눈 앞에 펼쳐지기만 바랄 뿐이다. 그가 땅콩이라면 참 좋겠다. 그런 그라면 난 분명하게 물을 것이다.
왜? 별들이 반짝이는지...
왜? 담쟁이 넝쿨은 꼬이는지...
"네가 그 대답을 못하면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라고...
갑자기 온몸이 설레임으로 전율한다. 나는 심연을 힘있게 박차 오르기 시작했다.
2005-07-23 오전 3:20:24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편집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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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칼럼] 말 바꾸기라는 직업
나는 월남서 스키부대에 근무했다?
양기용 기자, 2005-07-19 오전 1:18:03
*살아있다는 징표로 사람은 직업을 가지고 산다. 실직을 당한 사람조차도 살아있는 한 무직이 곧 직업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생명의 신비가 내재되어 있다. 먹이를 구하여 양분을 섭취하는 일이 제 아무리 힘겹다 하더라도 결코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은 '삶이라는 고달픈 직업'은 하늘이 내리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결코 해고 당하는 일이 없는, 아름답고도 처절한 선물로 하느님은 우리에게 삶이라는 직업을 주셨다.*
작가 조광호는 세상의 모든 실직자들을 도모해 준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이에게 직업을 선물하는 것이다. 조광호의 가슴으로는 제 아무리 거렁뱅이라고 해도 세상 갑부들 재산의 반을 가질 수 있는 셈법을 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종교적인 계산이 아닌 생물학적 계산법임을 나는 부연하고 싶다. 생명체의 유한성을 볼 때 더더욱 그의 '직업론'이 힘을 얻게하고 힘을 내어 일어서게 하는 것이다. 삶의 무게에 찌든 실직자들은 불끈 일어나라! 계급에 짓밟혀 있는 하층민들은 슬퍼하지 말지어다...
말로 일어선 자는 말로 망한다
엊그제 노 대통령은 대학교육협의회 회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모든 것은 잘되고 있다. 앞으로 5년, 10년을 냅둬도 잘굴러 간다'라는 투의 발언을 했다. 꼭 이승만 정권의 부활을 보는 듯하다. 이승만 전대통령은 눈과 귀가 다막혀 막후에서 통치하다가 쫒겨난 불쌍한 군주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뭘믿고 장담하는지 당췌 알 수가 없다.
표달라고 그토록 징징짜서 통치를 시작하더니 알아본 즉 천하에 피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판명되었다면 그 홍위병들은 어찌할 것인가. 탄핵 때는 졸뜨기들까지 징징대어 70%이상의 국민이 그를 도와 주었다. 그런 계산이라면 백수들 백명이 청와대 앞에가서 일자리 달라고 질질매면 70명은 취직한다. 명동가서 백명의 여성에게 젖달라고 징징짜면 70명은 젖을 내놔야 한다.
도대체가 국민이 정신 좀 차릴려면 헛갈리게 하는 전술은 어느 고전에 나온 것이냐. 이는 분명 법률가가 갖는 고무줄 잣대로 세상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송사를 원고냐 피고입장이냐에 따라 그들은 반대논리를 전개한다. 어느 편이 되어 승리하는가가 관건이다. 승(勝)에도 돈이 되며 부(負)도 책임없이 돈된다. 용역비라는 게임의 법칙이다.
여성들은 '논리'라는 말에 현혹되기 쉽다는 통계가 있다. 이를 본능적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데 이유가 있으며 이것이 다시 감성의 정치가, 포퓰리스트를 추종하는 파시즘을 낳고 그들은 다시 파시스트를 흠모한다. 중요한 법의학적 예가 적절할지 모르겠다 - 1. 물에 빠져 죽은 시체가 뜰 때 여성은 배가 하늘을 향하고, 남성은 반대다. 2. 총에 맞았을 때 남성은 앞으로 쓰러지고, 여성은 반대다.
나는 월남서 스키부대에 근무했다?
이는 전번 대선에서 야당 후보도 다를 바 없다. 스키타고 베트콩과 싸웠다는 그들의 법의 논리를 막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관점에서 S법대 수석, 사시 수석 2관왕을 하고 와서 우리들에게 '결과는 과정을 정당화 한다'고 격려했던 고향선배도 존경의 구석은 없는 것이다. 현란한 언어와 수없이 분화한 수사를 말로 당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차기에는 이런 스키부대류에 대권을 맡겨서는 않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세상의 금은보화도 쌓아두면 썩는다했고, 부평초(개구리밥)같은 권세에 세상의 지식은 새조차 길들이지 못한다고 하셨다. 내가 유물론자이며서 유신론자이기 때문인 까닭이다.
제헌 계절인 7월 초. 청와대 정책실장이 '헌법보다 바꾸기 어려운 부동산 관계법을 내놓겠다'고 했다(매경 7.4일). 또 본지 7.18일자는 '노무현 대통령은 17일 "하늘이 두쪽 나더라도 부동산만큼은 확실히 잡겠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드리고 싶다"면서 "부동산 정책에 더욱 다걸기(올인)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법 어지간히 좋아하신 분들이다.
그래. 하늘이 쪼개질 리 없지만 불알이 두쪽 나더라도 사내라면 말에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날마다 올라가고 오를대로 오르고 또 오르는 부동산값에다가 아파트수집가들까지 가세했다고 하니 이를 어쩔까나.
그래서, 그리고, 어떻든, 누가 뭐래도, 하여간, 그러하므로, 결국 그리되겠지만, 때론 나처럼 발로 벌어먹는 사람에게 있어서 말로 벌어먹는 직업이 별로 신통치 않게 보임은, 성질같아서 발로 말을 확 밟아버리고 싶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5-07-19 오전 1:18:03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편집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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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느리게 걸기
'악쓰는 거냐, 樂쓰는 거냐' 성대의 울림만큼 아름다운 악기는 없다
양기용 기자, 2005-07-16 오전 3:08:30
*영국 여왕은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제프 벡이 누구인지 몰랐다. 지난 화요일 버킹엄궁에서 열린 리셉션 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들 세명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는 영국의 군주가 그들의 직업을 물었을 때 당황해했다. 그것도 영국의 음악산업이 영국 문화에 기여한 것을 축하하는 행사에서였다.*
"오랫동안 음악을 해왔나요?" 여왕이 물었다.
"올해로 45년 됐습니다." 클랩튼은 웃으며 말했다.
"여왕이 우리가 누군지, 뭘 하는지 몰라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러길 기대하지도 않았고요."
'음악을 해왔느냐'는 여왕의 질문에 '45년 됐다'고 대답한 에릭 클랩튼의 여유가 돋보인다.
에릭클랩튼과 엘리자베스여왕이 악수하고 있다. 그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역시 한때 그룹Queen의 멤버였던 브라이언 메이.클랩튼에 가려진 사람이 지미페이지.
클랩튼의 음악의 특징은 무대 위에서 모두가 함께하는 페스티벌이다. 흔히 보컬이나 리드를 강조하기 위해 찬조출연하는 연주자가 아닌, 클랩튼의 기타와 무대의 그들은 항상 협연을 한다. 그의 모든 앨범이 클랩튼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함께 두드리며 내지르고 튕기면서 노는 것이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서의 클랩튼. 이순을 바라 본 나이에 31살 차이의 한국계 아내를 둔 그의 음악풍은 R&B계열이면서도 우울하지 않으며 끈적거림이 없어 경쾌하다. "~카더라'식으로 그의 음악을 알고 있지만 우연히 동영상으로 'Layla'을 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50대의 에릭 클랩튼
Layla(9분16초)를 언프러그드(일렉트릭처럼 음색을 변형하거나 증폭시키지 않음 : 어쿠스틱 연주)로 공연한 것을 봤는데 50대 중초반 작품이었다. 리프(riff) 부분의 완성도가 경지에 이른 것으로 들렸다. 여유있고 약간 묵직한 목소리는 가슴을 깊이 두드리기에 충분했다.
386 聲帶
그런데 우연하게 30대 때의 같은 곡을 보게 되었다. 아마 Layla(비틀즈의 멤버 죠지 해리슨의 부인)에게 구애할 때거나 그와 결혼 초쯤의 연주로 보였다. 덥수룩한 구렛나루와 시커먼 얼굴로 불러대는 Layla는 전에 대작이라고 생각한 그 곡이 아니었다.
▲ 더 젊었을 때의 에릭 클랩튼
쉼없이 건들거리는 모습, 노래를 한다기보다 악을 써대는 목소리에서 패기는 커녕, 억지스러움을 보았다. 어떻게 저것이 명시타리스트의 연주와 노래인지 이해조차 가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 얻어가는 원숙미라지만 세상에 이렇게 차이가 있나? (50대와 비교해서)
그러고 보면 목소리만큼 훌륭한 악기도 없다. 아르페지오(첼로처럼 생긴 옛 현악기. 또는 분산화음을 일컽는 말)도 전설의 악기처럼 된 마당에 당대를 평정한 악기라해도 새로운 사운드를 갈망하는 대중의 욕구에 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원히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성대의 울림'이다.
악쓰는 거냐, 樂쓰는 거냐
지금 각종 방송과 넷상에서 상위순위를 유지하는 국민가수라 칭되는 락커가 있다. 개인적으로 내 암기력에 문제가 있지만(리듬 감각과 무관하게) 그의 노래 한구절도 외지 못한다. 또한 섹시한 엉덩이를 무기로 긴 허리(숏다리)를 팍팍 돌려대는 폰광고 여가수도 무슨 노래를 부른지 모른다.
그들이 작사, 작곡, 편곡, 연주까지 한다해도 노래부르는 가수일 뿐 아티스트로 불리기는 아직 멀었다. 싸이키한 일렉트릭 사운드가 주름잡은 20세기의 후예인지라 개인과 이력만을 상품화하기에 급급해 보인다. 함께하는 무대매너도 없을 뿐더러 다듬어지지 않는 급한 목소리로 악을 바락바락 써대는 것이다.
원숙한 클랩튼이 흑,백인과 함께 공연한 것을 페스티벌이라고 한다면 여기 싱어들이 아직 자기만의 노래자랑 문화를 넘지 못해 보임은 지나친 나의 거만인가. 아니면 독창이 아닌 오케스트라를 원하는 나의 경향 때문인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목소리라는 피조물 위에 존재하는 악기는 세상에 없다는 나의 신념 때문인가.
느리게 걸어 봐
도산공원 앞 '느리게 걷기'라는 펍레스토랑에 가보면 모든 사람들이 슬로비디오로 식사하고 이야기한다. 달나라에서처럼 걷고 느린만큼 웃음도 느리고 화도, 울화통도 느리게 내는 것이다. 악쓰는 386은 보이지 않고 모두가 575, 664..이런 식으로 되는 것을 보았다.
"때르르릉..."
"감사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저씨, 어딥니까?"
"네, 느리게 걷기 앞입니다."
"느리게요? 허허..한가한 양반이구먼..쇼걸인데..총알같이 오시오."
세상이 나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2005-07-16 오전 3:08:30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편집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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